복이 있도다

누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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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1:39-45
“복이 있도다”
2023. 7. 12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복이 있도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자기 친족 엘리사벳을 만난 장면을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장면은 사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에요. 그냥 여자 두 명이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거든요. 이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그런데 성경에 기록됐다는 것은 반드시 기록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거든요.
누가는 이 장면을 반드시 기록해야만 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장면을 기록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을 오늘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본문을 보기에 앞서서, 오늘 본문 앞에 일어났던 사건을 살펴봐야 하는데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러 오기 전에 무슨 사건이 있었습니까?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온 사건이 있었죠.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서 대뜸 마리아에게 “네가 은혜를 받은 자”라고 말을 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 여러분, 마리아가 어떤 은혜를 받았어요? 메시야를 잉태하는 은혜를 받았죠. 그런데 마리아는 자기가 그런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가브리엘이 말을 해줘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나서 마리아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었습니다. 사실 처녀가 정식으로 결혼을 하기도 전에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캔들이거든요. 파혼을 당할 수 있고, 심지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그런 위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천사의 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믿음이죠. 그런데 천사가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해주는데요. 바로 마리아의 친족인 엘리사벳이 잉태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이었어요. 아마도 나이가 60세 이상 됐을 겁니다. 어쩌면 70세 가까이 됐을 수도 있어요. 이때 당시에 그 정도 나이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이때 무슨 시험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엘리사벳이 불가능을 극복하고 임신을 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사건이죠. 마리아가 그것을 듣고 나서 그 즉시 엘리사벳을 만나러 가요.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보고 기쁨으로 엘리사벳을 축하해주려고 그 즉시 떠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9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마리아가 이 때에 일어나서 갔다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이 때에. 이것은 천사가 떠난 후에 마리아가 지체하지 않고 일어났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의 동네에 가는데, 어떻게 갔어요? “빨리” 갔죠. 여기서 빨리, 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스푸데스” 라는 말인데요. “빨리, 부지런히, 서둘러”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뜻이 있는데요. 바로 “간절히” 이라는 뜻이에요. 간절히.
그래서 성경에 스푸데스가 “빨리, 부지런히” 라는 말로도 번역이 되지만 사실 “간절히”라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됐습니다. 신약에서 스푸데스가 총 12번 쓰였는데, 그 중에 여섯 번이 “간절히” 라는 말로 사용됐어요. 그만큼 이 단어가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이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가 빨리 산골로 갔다는 말도, “마리아가 간절히 산골로 갔다”는 말로 해석을 해볼 수가 있다는 것이죠. 간절한 마음으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러 갔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갔느냐? 그것은 기적적으로 임신을 한 엘리사벳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자기도 기적적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임신을 한 자로서, 함께 감격을 나누고 교제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간 겁니다.
그래서 밑에 40절을 보면 이제 마리아가 사가랴의 집에 도착을 해요. 그리고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합니다. 인사를 한 거죠.
그런데 인사를 한 그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 본문 41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요. 4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아이가 뛰놀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인사를 아니까 뱃속의 아이가 좋아서 뛰놀았다는 거예요. 지금 엘리사벳의 배에 누가 들었어요? 요한이 들었죠. 세례 요한. 요한이 막 좋아서 엄마 배를 발로 차고 꾸물꾸물 움직였어요.
그런데 이때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겠죠. 뱃속에서 애기가 우연히 타이밍 좋게 마리아가 왔을 때 발로 좀 찬 걸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애기가 그냥 태동을 좀 한 걸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좋아서 뛰논 거라고 하냐?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누가는 이것이 분명하게 요한이 “뛰논 것” 이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요한이 뛰놀았다는 거예요. 너무 좋아서, 기뻐서 뛰놀았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다음으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왜 요한이 좋아했을까? 엄마 뱃속에 있는 애기가 뭐가 그렇게 좋아서 뛰놀았을까?
단순히 마리아가 와서 좋아한 게 아니에요. 요한이 좋아한 이유는, 마리아의 뱃속에 들어있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좋아한 겁니다.
이제 겨우 뱃속에서 6개월 된 요한이 이제 막 뱃속에 잉태된 예수님을 만난 것이 좋아서 뛰놀았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뱃속에서 6개월 밖에 안 된 애기가 뭘 안다고 좋아서 뛰논다고 그래? 소설도 정도껏 써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게 소설이 아니에요.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일입니다.
아기들이 엄마 뱃속에 있다고 해서 아무 생각도 없는 미생물이 아니에요. 뱃속에 있어도 감정이 있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연구발표에 따르면, 엄마 뱃속에서 있었던 일을 나중에 태어나고 나서 다섯 살때까지 기억을 한다 그래요. 길게는 여섯 살때까지도 기억을 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뇌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기관이 “해마” 라는 기관인데 해마가 언제 생겨나는지 아십니까? 임신 1개월이면 생겨나요. 그러니까 임신 1개월이면 이미 아기는 기억을 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임신 5개월이 지나면 뇌의 80% 이상 형성이 되는데, 이때는 청각이 발달해서 소리도 들을 수가 있고요. 자기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어요. 기분이 좋으면 좋다, 슬프면 슬프다. 발로 차고 손으로 두드리면서 원초적인 감정표현을 하는 겁니다.
지금 요한이 임신 6개월차기 때문에 충분히 자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시기거든요. 그러니까 요한이 기분이 좋아서 뛰놀았다, 라고 하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메시야 예수님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는 거예요. 물론 이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기는 합니다. 마리아의 뱃속에 예수님을 잉태한지 이제 며칠밖에 안 됐는데 요한이 그것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이것은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나 성령께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을 성령께서 요한에게 알게 하신 거예요.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미암아, 요한이 예수님의 방문을 깨닫게 되고 기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41절을 다시 보면, 성령께서 요한에게만 역사하신 것이 아니에요.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에게도 역사하십니다. 41절 끝을 보면,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영접했는데, 이것이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예수님을 함께 영접한 거거든요. 예수님을 영접하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된 겁니다. 마리아를 영접하기 전까지는 마리아 뱃속에 예수님이 계신지 몰랐어요. 그런데 마리아가 찾아와서 영접하는 그 순간에, 뱃속에 계신 예수님을 함께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그 즉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까 엘리사벳도 그 순간 자기가 메시야를 영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 내 친족 마리아의 뱃속에 메시야가 계시구나!’ 이것을 성령이 깨닫게 한 거예요.
그때 얼마나 마음이 감동이 되고 감격이 되었던지, 그 감격을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하는데요. 오늘 본문 42절부터 45절까지가 엘리사벳이 외치는 말입니다. 먼저 42절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42절 시작,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아멘.
엘리사벳이 뭐라고 외쳤습니까? 마리아 네가 복이 있다. 그리고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다. 이렇게 외쳤어요. 그런데 여기서 “복이 있다” 라는 말이 헬라어로 “율로게오” 라는 말이거든요.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축복하다” 라는 뜻이에요. 축복하다. 그런데 이 말이 수동태로 쓰였어요. 그러니까 “축복을 받다” 라는 말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번역을 하면 보다 정확한 번역이 돼요. “여자 중에 네가 축복을 받았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축복을 받았도다.”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받았을까요? 하나님께 받은 거죠. 누가복음 1장 28절에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런 말을 하잖아요. “은혜를 받은 자여” 마리아가 이미 은혜를 받았다는 말인데, 은혜를 받았다는 말이나 축복을 받았다는 말이나 사용한 단어만 다르지 사실 같은 말이거든요. 중요한 것은 둘 다 이미 받았다는 것입니다.
태중에 메시야 왕을 잉태하는 축복, 그 은혜를 이미 받았다는 거예요. 지금 엘리사벳이 그것을 외치고 있어요. 마리아 네가 이미 축복을 받았도다.
여러분, 마리아가 축복을 받기 위해 공로를 세운 적이 있습니까? 마리아가 드보라처럼 전쟁에 나간 것도 아니고, 에스더처럼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건 것도 아니에요. 또 룻처럼 자기 시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처녑니다. 약혼을 해서 정식 결혼을 기다리고 있는 평범한 시골 처녀예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을 만한 아무런 공로가 없어요.
마리아가 축복을 받은 것은 마리아가 공로가 있어서도 아니고, 특별한 혈통을 타고나서도 아닙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요셉과 약혼했다는 것이 이유겠죠. 어쨌거나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인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시니까요. 요셉의 아내가 된 것이 메시야를 잉태하는 축복의 유일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을 해서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3장을 가서 보면, 예수님의 족보를 보게 될 텐데요. 거기서 주의깊게 살펴보면,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다 설명을 할 수는 없고,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애초부터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약혼을 하도록 만드신 거예요.
그러니까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을 해서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약혼을 하기 전부터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 마리아가 축복은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었다는 것이죠. 사람의 공로도 아니고, 혈통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계획하심으로 말미암아 마리아가 복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을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왜 하나님은 하필 마리아를 선택하셨을까? 왜 마리아를 메시야의 어머니로 선택하셨을까?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리아가 아무 공로가 없잖아요. 굳이 마리아가 아니더라도 더 예쁘고 마음씨 좋은 처녀들도 많이 있을 텐데, 왜 마리아를 선택을 하셨을까요?
이 질문의 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45절인데요. 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아멘.
여러분, 이것이 마리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유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어요. 이 믿음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똑같이 은혜를 받아도요 믿는 사람이 있고, 안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가랴가 안 믿은 사람이죠.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와서 사가랴 네가 아들을 얻을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안 믿었잖아요. 나도 나이가 많고 내 아내도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느냐고 의심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벙어리가 됐죠. 아들을 낳으리라는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못하도록 벙어리가 됐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가브리엘이 전해준 말씀을 믿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그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믿었어요. 어떻게 믿었습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이것은 어떠한 의심도 없이 온전히 믿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의심하지 않았어요. 말도 안되는 허황된 말씀이었지만, 정말로 온전히 믿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믿음이에요. 마리아가 온전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엘리사벳의 입술을 통하여 선포하신 겁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떠한 말씀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서두에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는 장면을 왜 굳이 기록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했는데요. 이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누가는 마리아의 믿음의 본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라고 하는 믿음의 본을 보여줌으로써 데오빌로를 비롯하여 이 편지를 보게 될 모든 사람들이 마리아를 본받아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 사람은 공로가 있는 사람도 아니요, 권세가 있는 사람도 아니요,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믿는 자에게 임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한번 믿은 것으로 끝나는 일회성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믿는 지속적인 믿음입니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준 말만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모든 율례의 말씀을 믿으며 살아온 것입니다. 45절에 “믿은” 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피스튜오” 라는 말인데요. “믿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피스튜오가 45절에서 과거 분사형으로 쓰였어요. 분사형은 어떤 행동이 계속 지속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과거 분사형이니까 과거에 발생된 행동이 지금까지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마리아의 믿음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다는 거예요. 마리아가 한 번만 믿고 만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갓난아기 시절부터 지금 처녀시절까지 믿음을 계속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을 계속 지키는 것. 그냥 은혜를 받을 때만 믿고 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에라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사업이 잘되거나 안 되거나, 몸이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상관없이 그 믿음을 계속해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어야 돼요.
지금 나에게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고 오늘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믿음을 지키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무런 공로도 없는 처녀 마리아가 믿음 하나로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들도 마리아의 본을 받아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반드시 믿음대로 응답되어지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그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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