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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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사무엘하 6:9-11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니라”
2022. 4. 20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가다가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웃사를 쳐서 죽이신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갔고, 그 집에 여호와의 궤가 머문 3개월 동안에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웃사를 치셨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6장 6절을 보면, 여호와의 궤를 실어놓은 수레를 끌고 가던 소들이 날뛰자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웃사를 치셨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궤 곁에서 웃사가 죽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다윗과 온 백성들이 그 장면을 목격했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들은 여호와의 궤가 함께하는 것이 즐거운 일인 줄만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우리에게 돌아왔으니, 이제 나라가 잘되고, 민족이 잘되고, 우리 모두가 복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즐거운 현장에서 웃사가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궤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거예요. 복을 주는 언약궤에서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언약궤로. 인식이 변화된 겁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이제 여호와의 궤를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조차도 어찌나 두려웠던지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9절과 10절을 보면 그것이 잘 나와 있어요. 사무엘하 6장 9절과 10절을 봐 볼까요?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이 기록된 말씀처럼, 다윗은 여호와의 궤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즐겨하지 않았다는 말의 본래 뜻은 “동의하지 않다”,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성으로 옮기는 것을 동의하지 않고 거절했다는 거예요. 자기 의지로 그것을 막은 겁니다.
왜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9절에 있는 것처럼, 그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여호와의 궤가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것이 두렵고, 여호와께서 벌을 주실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여호와의 궤가 가까이에 있으면 그 진노가 가까이 있는 자에게 또 임하지 않을까 하고 겁을 먹은 것이죠.
시편 18편 2절에서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라고 찬양하며 친근하게 고백하였던 것이 무색하게, 이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이 두려워서 성에 모시는 것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하였던 다윗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찬양하고 고백하였던 입으로 하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처럼, 입으로는 수없이 고백하여도 한순간에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입니다. 멀리 볼 것도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이에요. 믿음의 용사였던 다윗마저도 그럴진대 과연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우리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을 모신 한 인물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다시 보면,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드 사람 오벧에돔. 성경에 한 번도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이에요.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이름이 뿅 하고 튀어나와서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것처럼, 오늘 오벧에돔이라는 이름도 갑자기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역대상에서 다시 그 이름이 등장하는데, 역대상 26장의 기록에 의하면 오벧에돔은 레위지파 고핫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그를 “가드 사람” 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드는 블레셋의 가드 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레위인의 성읍 중 하나인 “가드림몬”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종합해 보면, 오벧에돔은 가드림몬 출신의 레위인이었고, 고핫의 자손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오벧에돔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여전히 하나의 의문이 남아요. 그것은 도대체 왜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벧에돔의 집이었는가?
그 때 당시 상황을 우리가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인데요. 크게 두 가지로 추측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레네 시몬의 경우처럼, 억지로 그 일을 떠맡게 되었을 경우입니다. 여호와의 궤를 집에 모시고 싶지 않았는데, 다윗이 억지로 오벧에돔의 집에 떠넘겼을 수가 있어요. 또 다른 추측으로는, 오벧에돔이 자원하여서 자기 집에 궤를 모셨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겠노라고 자원하였을 수가 있는 것이죠.
이 일은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여서 무엇이 맞는지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왕이 명령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여호와의 궤가 길바닥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없어 자원하는 심령으로 섬겼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무엇이 맞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갔다, 라는 사실입니다.
마땅히 가야 할 예루살렘 성으로 가지 못하고, 방향을 바꾸어서 오벧에돔이라고 하는 한 레위인의 집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벧에돔에게 일어난 이 사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와 같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하나님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미리 좀 하나님이 등기를 보내서 몇 월 며칠에 내가 오리라, 하시지 않아요.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오십니다.
성경에도 보면 항상 그래요. 베드로도 하루 종일 배 위에서 그물을 던지고 이제 철수하려고 그물을 정리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지 않습니까? 바울은 또 어떻습니까? 교회를 잔멸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바로 그 길 위에서 갑작스럽게 예수님의 빛을 만났어요.
이처럼 우리는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만남이 기쁨이 될 수도 있는 반면에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날 내가 주일에 말씀을 듣다가 괜히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뭐라도 교회를 위해서 섬기고 싶은 감동이 일어난다든지, 정말 미운 누군가를 향해서 불쌍한 생각이 든다든지, 그 전까지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감동이 될 수 있어요. 여러분, 이것이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마음을 만지신 거예요.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하게 되고,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했던 일을 하고싶어 지고, 그동안 예배드리러 나가기가 싫었는데,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지는 그 마음들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악한 본성이에요.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 안에 저절로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시궁창에서 어떻게 장미가 피어나고, 라일락이 피어나겠어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나 주님이 만지시면, 거기에 장미가 피어납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그곳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벧에돔에게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났던 겁니다. 하나님이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거예요. 저는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궤를 모시는 일에 자원하였다고 확신합니다. 여러 소리 할 것 없어요. 하나님이 그의 집에 복을 주신 것만으로도, 분명한 사실이죠. 오벧에돔의 그 자원하는 섬김을 보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벧에돔이 자원하여서 하나님의 궤를 모셨지만, 그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아마 오벧에돔도 웃사가 죽는 그 현장에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웃사가 죽는 그 모습을 목격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궤 곁에 있다가는, 까딱하다 잘못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거예요.
그도 사람인 이상 왜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두려움이 있죠. 내가 이 궤를 우리 집으로 메어 갔다가, 혹시라도 내 자녀, 내 가족이 잘못해서 웃사처럼 죽임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두려움이 있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오벧에돔은 그 두려움을 이기고 여호와의 궤를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자 하는 그 마음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지금 이 오벧에돔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윗처럼 거절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오벧에돔처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바라건대, 기쁨으로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의 궤, 즉 여호와 하나님을 맞이하는 것은 기쁜 일이요 즐거운 일입니다. 비록 그 맞이하는 사건이 두렵고 떨리는 사건이라 할지라도, 외면하지 않고 담대히 맞이하여 하나님과 함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여호와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습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한다면, 여호와의 궤를 두려워하여 그 집에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은 지가 석 달이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석 달이라는 기간. 이 기간 동안 여호와의 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 아무도 오벧에돔의 집을 찾지 않았어요. 다윗조차도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오늘날 코로나에 확진되어서 자가격리를 하는 것처럼, 누구의 방문도 없이 3개월 동안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3개월 동안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여호와의 궤를 모신 그 3개월 동안에, 그 집에, 그 가문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복이 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그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인데요. 11절 말씀을 우리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아멘.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어요. 다윗이나 제사장이나 다른 누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궤를 맞이하고 가까이 한 이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6장 22절에서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복을 주시느냐? 그렇지 않죠. 하나님은 누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본문에 비추어본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두려워서 아무도 나서지 않고, 아무도 감당하려 하지 않을 때에. 본인도 너무나 두렵고 떨리지마는, 주신 감동을 거절하지 않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그 궤를 집에 모시고 석 달 동안이나 묵묵히 그 일을 감당했던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입으로만 고백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고 두려움 가운데 나아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고 기쁨으로 맞이하여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을 풍성하게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오벧에돔이 복을 받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오벧에돔이 받은 복은 무엇이었을까요? 궁금하잖아요. 무슨 복을 받았을까?
먼저 성경이 아니라 역사서를 살펴보면요. 1세기의 이스라엘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역사서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벧에돔이 이전에는 가난했으나, 그 석달 동안 갑자기 부자가 되어, 온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가 되었다”
이것이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오벧에돔의 복입니다. 물질의 복을 받았어요. 이전에는 가난했었지만, 불과 석 달 만에 동네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 만큼 큰 재물을 얻게 된 겁니다.
오늘 본문 아래 사무엘하 6장 12절을 보게 되면,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큰 복을 주셨는지 온 동네에 소문이 퍼지고, 심지어 다윗에게까지 소식이 갈 정도로 오벧에돔과 그의 집에 어마어마한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은 단지 재물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대상 26장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복이 나오는데, 그것은 자녀의 복이었습니다. 역대상 26장 4절과 5절에 보니까, “오벧에돔의 아들들은 맏아들 스마야와 둘째 여호사밧과 셋째 요아와 넷째 사갈과 다섯째 느다넬과 여섯째 암미엘과 일곱째 잇사갈과 여덟째 브울래대이니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셔서 그가 여덟 명의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전에는 아들이 없었던 모양이죠? 그러나 하나님이 복을 주시니까 그가 많은 아들을 낳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여기서 복이 그치지 않아요. 또 어떤 복을 주셨느냐 하면, 그의 자손들에게 출중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역대상 26장 8절을 봐 볼까요?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 아멘.
오벧에돔이 낳은 아들과 그 손자들이 다해서 육십이 명이었는데, 그들이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들이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맡은 직무는 성전 문지기였는데, 성전 문지기는 성전 문을 지키면서 출입을 통제하고, 성전을 지키고, 또 성전의 성물을 관리하는 여러 일들을 수행하는 직분이었습니다. 이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레위 자손 중에서도 특별히 구별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이 일을 오벧에돔의 자손들이 맡아서 능력 있게 잘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막대한 물질의 복에 더불어 출중한 자녀의 복까지 오벧에돔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것들입니다. 물질의 복과 자녀의 복. 생각만 해도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일이죠.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기름진 복이 아니겠습니까.
재물이 늘어나고, 자녀가 잘 되고, 범사에 형통하는 이러한 땅의 기름진 복. 이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복에 앞서서 더 근본적인 복이 있습니다. 오벧에돔이 받은 진정한 복. 모든 복에 앞서는 참된 복. 여러분, 그것은요. 오벧에돔이 그의 집에 하나님을 모셨다는, 그 자체가 진정한 복인 줄로 믿습니다.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모신다는 것,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시편 73편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아멘.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세상의 어떤 복도 이것과 비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망하는 가장 큰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천국이 무엇입니까? 천국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곳이 바로 천국인 줄로 믿습니다. 찬송가 438장의 가사를 보면, 이렇게 고백을 해요. 한번 가사 자막을 띄워주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가사를 깊이 묵상하면서 찬찬히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그곳이 바로 천국인 줄로 믿습니다.
오벧에돔이 그 복을 누린 거예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을 누린 것입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무려 석 달 동안이나. 그와 온 집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에게 재물이 많아졌습니다. 자녀가 잘되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 만한 큰 가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그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오벧에돔이 받은 진정한 복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였다는 동행의 복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오벧에돔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떨리고, 내가 손해를 봐야 하고, 피해를 입을 지도 모르는 그러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기꺼이 자원하여서 오벧에돔과 같이,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있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번 여름에 단기선교가 있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자원하는 심령으로, 지금 여러분 마음에 감동이 있습니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어떤 사역이든지, 어떤 섬김이든지, 혹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어느날 문득 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날 때, 먼저 주님께 뜻을 묻고,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두려움을 떨치고 그 일에 뛰어드는 결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복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각자의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삶의 자리에서, 생업의 현장에서. 우리가 있는 그 어디에서나 주님과 동행하는 참된 복을 누리며 그 참된 복 안에서 또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모든 복을 받아 누리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결단찬양
이 시간에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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