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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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마가복음 3:7-12
“무엇을 구하는가?”
2022. 8. 17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무엇을 구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있었던 일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또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는데. 그 일들이 온 유대 땅에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찾아왔습니다. 소문으로 들은 예수님, 그 예수님을 내가 만나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찾아왔어요. 그들은 말 그대로 전국 각지에서 찾아왔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7절과 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아멘.
지금 이 말씀을 보면, 정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먼저 이스라엘 본토에서 몰려왔습니다. 갈릴리, 유대, 예루살렘. 이것은 이스라엘 본토에 있는 성읍들이죠.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이방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예루살렘 뒤에 이두매라는 지역이 나오는데, 이두매는 에돔의 헬라식 명칭입니다. 그러니까 이두매가 곧 에돔이에요. 에돔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스라엘 바로 밑에 있어요. 남쪽에 있는 큰 나라죠. 여기서 사람들이 몰려온 겁니다.
또 요단 강 건너편에서도 왔죠. 이스라엘의 동쪽, 요단 강 건너편은 암몬 족속의 땅입니다. 그리고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왔는데,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 위에 있어요. 저 북쪽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이스라엘 본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남쪽, 동쪽, 북쪽에 사는 이방인들까지 몰려왔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죠. 우리가 마가복음의 기록을 따른다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한 뒤로 이 지역들을 방문한 적이 없으시거든요. 에돔이며, 요단 강 건너편이며, 두로와 시돈이며. 이 지역들을 가신 적이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가본 적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문만을 듣고 몰려왔다는 겁니다.
예수님 한번 만나보겠다고 남쪽과 동쪽과 북쪽에서 그 먼 길을 걸어온 겁니다. 몇 날 며칠을 걸려서. 확실히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온 거예요.
여러분, 그렇다면 과연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모하게 먼 길을 왔을까요? 소문만 듣고 확실치도 않은 길을 왜 왔을까요? 그 이유는, 그만큼 그들에게 어떤 간절함이 있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소문을 들어보니까,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병을 고쳤다더라.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고, 앞 못 보는 자를 보게 하고, 귀신 들린 자를 고쳤다더라. 그런 소문이 들려오니까, 나도 고침을 받고 싶은 간절함이 생긴 겁니다. 나도 병 고침을 받고 싶고, 몸의 장애를 치유받고 싶은 간절함. 육신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그런데 육신의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까지 있어요. 도대체 이 사람은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그런 병을 얻었냐는 사람들의 핍박과 손가락질을 받는 정신적 고통까지 받으면서 살아가던 중에, 예수라고 하는 한 줄기 희망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먼 길을 걸어온 거예요. 간절함이 그들을 움직인 겁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죠. 소문만 듣고 사방 각지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몰려오잖아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어디 갈 필요도 없어요. 그냥 앉은 자리에서 저 사람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면, 그 사람들이 고스란히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 고향에 돌아가면 무슨 말을 하겠어요? 자기가 병 고침 받은 간증을 얘기하고, 예수를 얘기하겠죠. 한방에 그냥 복음이 이방 땅에까지 전파되는 그런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에요. 이 기회를 우리 예수님이 잡으셔야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부흥성회 아니겠어요? 홍보도 안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서 와요. 수천 명이 막 와. 얼마나 좋은 기횝니까?
그런데. 정말 좋은 기회인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반응이 이상해요. 당연히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해야 할 예수님이 이상하게도,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봐 볼까요? 9절을 우리가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아멘.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을 하셨습니까?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시키셔요. 그 배를 타고 떠나시려고. 이상하죠.
사람들이 나를 만나려고 이렇게 많이 몰려 왔는데, 그 현장을 그냥 떠나려고 하시는 겁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이해가 안 돼요. 왜 여기를 떠나려고 하실까?
우리나라 연예계를 보면, 일 년에도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데요. 그들을 보면, 돈을 수 억을 들여서 훈련을 시키고, 홍보를 합니다. 음악프로그램에 출연을 시키고, 유튜브에도 내보내면서 홍보를 하고 마케팅을 해요. 그런데 그렇게 노력을 해도 뜨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이 사라집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통계를 보니까 일 년에 약 50개에서 60개의 아이돌 그룹이 생겨난다고 그래요. 정말 많은 숫자죠. 그렇게 많은 팀이 매년 새로 생겨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성공적으로 활동을 하는 팀은 약 다섯 팀밖에 없다고 합니다. 10퍼센트도 못 살아남는 거죠. 그만큼 명성을 얻고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보세요. 마케팅이 필요 없이, 그냥 자기 사역에 열중하셨던 것뿐인데, 알아서 소문이 퍼지고, 알아서 명성이 생겼어요.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어요? 제자들 앞에서 체면도 서고, 어깨에 힘도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세상적으로 본다면 정말 기쁜 일입니다. 아이돌그룹이 그렇게 인기를 얻었다면, 기획사 사장부터 해서 이사들, 주주들 다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출 일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싫어하셔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여서 콘서트 현장이 만들어졌는데, 거기를 그냥 떠나버리시잖아요.
왜 예수님이 떠나려고 하실까요? 그 좋은 기회의 자리를 왜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려고 배를 준비하실까요?
오늘 본문 9절을 다시 보면,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또 밑에 10절에도 보면,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기록들만 보면, 사람이 너무 많고 예수님을 막 만지려고 하니까 안전사고가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 피신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 현장이 얼마나 시끄럽고 어수선했겠어요. 서로 예수님을 만지려고 하니까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배를 준비하라고 하신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요.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해서 예수님이 위험에 처하시겠습니까? 풍랑도 잠잠케 하시는 분이신데, 사람 좀 몰려왔다고 뭐가 위험하겠어요?
그러니까 결국에 예수님이 배를 준비하라고 하신 데는 그 내면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배를 준비하라고 하신 진짜 이유.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 열광적인 인기가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에는요. 인기가 필요가 없어요. 사람이 얼마나 모이는지, 인지도가 얼마나 큰지, 그런 것은 아무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연예인이라면 그런 게 중요하겠죠. 하지만 예수님은 연예인이 아니잖아요. 예수님은 아이돌이 아니잖아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셔요. 전능하신 하나님, 그 분 앞에 세상적인 인기는 필요가 없는 겁니다.
많은 무리가 몰려와서 환호하고, 열광하고, 그의 이름을 외칠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을 팬(fan)이라고 부릅니다. 팬. 팬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운동 경기나 선수 또는 연예인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이라고 그래요.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무언가에 미쳐서 거기에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아무리 멀리 있어도 찾아가는 열성분자들. 이것이 팬입니다.
연예인들은 이 팬의 많고 적음이 인기의 척도가 됩니다. 팬이 많으면 인기가 많은 것이고, 팬이 적으면 인기가 적은 거예요. 뿐만 아니라 팬이 많으면 돈도 많이 벌고, 명성도 높아지고, 사회적인 지위도 올라가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팬들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을 하죠. 팬싸인회도 하고, 팬미팅도 하고, 여러가지 홍보를 합니다.
그러다가 콘서트를 열었는데, 사람이 많이 오면 성공한 것이고, 사람이 적게 오면 실패한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연예인이 아니죠. 콘서트에 백 명이 오나 천 명이 오나 상관하지 않으셔요. 사역의 현장에 사람이 많이 오면 어떻고 적게 오면 어떻습니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잖아요.
예수님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셔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팬의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보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예수님은 팬을 신경쓰지 않으십니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와서 환호해도, 예수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아요.
예수님의 관심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바로, 제자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팬이 아니라 제자에게 관심을 두고, 제자를 주목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밑에 13절부터 보면 어떤 내용이 나오는가 하면, 열두 제자를 세우시는 내용이 나와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시고는 오직 열두 명의 제자를 세우셔요.
굉장히 의미심장하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사역에는 팬이 아니라 제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천 명, 수만 명이 몰려와도, 팬은 필요가 없어요. 제자만이 필요합니다.
미국에 “카일 아이들먼”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신데요. 이 분이 책을 썼는데, 책 제목이 “팬인가 제자인가” 라는 제목입니다. 팬인가 제자인가. 이 목사님이 자기는 제자로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니까 내가 제자가 아니라 그저 팬에 불과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나는 예수님에 열광하는 한 명의 팬이었다.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무슨 집회 있으면 참석도 하지만, 단지 그곳에서 열광하고 환호하는 한 명의 팬.
여러분, 팬은 열광하고 환호를 하죠. 그러나 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제자는 예수를 위하여 죽는 사람입니다. 여기로 와서 환호하라고 하면, 많은 수가 모이죠. 그러나 여기로 와서 죽으라, 라고 했을 때에는 그 많은 사람이 다 사라져요. 이것이 팬과 제자의 차이점입니다.
진정으로 내가 예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가, 주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고난 가운데서도 주의 도를 지킬 수 있는가.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제자라기보다는 팬이라고 봐야 합니다.
저도 목사이지만, 당당하게 내가 제자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도 팬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갈릴리에서, 이두매에서 몰려온 그 수많은 팬들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은가.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능력 받기를 위해서, 환호하는 한 명의 팬.
오늘 내가 그 한 명의 팬인 것은 아닌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팬의 모습으로 남는다면, 예수님은 미련없이 우리 곁을 떠나버리실 수 있습니다. 작은 배를 대기해놓고 계시다가, 우리가 팬으로서 다가갈 때, 그 배를 타고 떠나버리셔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 예수님이 그렇게 떠나버리셨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셨을 때, 사람들이 열광했어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자리를 떠나버리셨어요.
요한복음 6장 14절과 15절에 기록된 말씀인데요.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아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현장에서, 그것을 보고 열광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미련 없이 떠나셨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서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에. 저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저 병 고침 받고, 물질의 복을 받는 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에는 팬이 필요가 없죠. 오히려 방해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온 인류를 위해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기 위하여 오셨는데, 팬은 그것을 못하게 방해해요.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러 가셔야 하는데, 떠나지 못하게 붙잡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아이돌이 되어주기를 강요합니다. 그러니까 떠나실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배를 준비하고 계시다가, 조금만 낌새가 보이면 예수님은 떠나버리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굉장히 충격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먼 길을 찾아왔는데, 정작 주님은 언제든지 우리 곁을 떠나실 수가 있다는 거예요.
만약에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현장에서, 예수님이 떠나버리신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곳에서 예배를 받으셔야 할 주님이 예배를 받지 않고 어딘가로 떠나신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하고 마음 놓고 있을 일이 아니에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 중에 제자가 없고, 모두가 다 팬이라면, 예수님은 떠나십니다. 떠나셔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 정작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이 아니라 그 분이 주시는 복과 영광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먼 길을 수고하며 찾아와도, 다른 곳을 바라본다면, 예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피하여 떠나가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팬이 아니라 제자로서,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내가 무엇을 구하기에 앞서서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기억하시죠? 오늘 제목이 뭡니까? “무엇을 구하는가?” 여러분, 무엇을 구하십니까? 우리가 팬인가 제자인가를 판가름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엇을 구하는가?
팬은 세상을 구합니다. 세상의 명예, 권력, 돈,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세상의 것을 구해요. 반면에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합니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 우리를 속량하신 예수님, 예수님 그 자체를 구해요.
이것이 팬과 제자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뿐 아니라, 팬과 제자의 또다른 차이점이 있어요. 오늘 본문 11절을 봐 볼까요?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1절에 보면, 귀신들이 나오는데요. 귀신들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 분이 누구이신가를 귀신같이 압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요.
그런데 귀신들은 알기는 알지만, 그 아는 대로 살아내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분을 믿고, 그 분을 따라야겠죠. 그것이 제자예요.
그런데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았으면서도, 그 분을 따르기는커녕 오히려 그 분을 두려워하고, 그 분에게서 멀어지려고 합니다. 이 귀신들도 일종의 팬이에요. 안티팬이라고 하죠. 좋아하는 팬이 아니라, 싫어하는 팬.
귀신들은 예수님만 보면 벌벌 떨고, 도망치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5장 7절에 그것이 잘 기록되어 있어요.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서 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는데, 그 귀신의 이름이 군대였어요. 수가 하도 많아서 군대라는 이름을 가진 귀신들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벌벌 떨면서 예수님께 사정을 해요. 그것이 마가복음 5장 7절에 기록된 말인데요.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여러분, 예수님이 이 귀신한테 무슨 해꼬지를 하신 게 있습니까? 아무 것도 안 했어요. 그런데 이 귀신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자기 발로 예수님께 달려와 부르짖는 겁니다.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지금 귀신이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괴롭히지 말고, 나와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죠. 어떻게든 예수님과 엮이지 않고 멀어지는 것. 이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제자가 구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 되는 것을 구하고 있어요. 제자는 예수를 구하지만, 귀신은 예수와 멀어지는 것을 구해요. 안티팬이죠. 팬이나 안티팬이나 각자 구하는 것은 서로 달라도,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똑같은 자들입니다.
팬은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자들, 안티팬은 열광적으로 싫어하는 자들. 서로 다르지만,그들의 본질은 자신의 욕망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구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구하는가? 바로 이것이 팬이 되느냐, 제자가 되느냐를 판가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구하십니까? 바라건대,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고, 예수를 아는 참된 지식을 구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는 참된 제자 되기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우리를 떠나시지 않고, 영원토록 우리 곁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인도하여 주시는, 복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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