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은 자

누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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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1:26-38
“은혜를 받은 자”
2023. 6. 14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은혜를 받은 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라 하는 처녀를 찾아와 예언을 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먼저는 제사장 사가랴를 방문하고, 그 뒤에 마리아를 찾아온 겁니다.
가브리엘이 먼저 사가랴를 방문해서 최초로 사가랴에게 복음을 들려줬죠. ‘사가랴 네 아내가 아들을 낳아줄 것인데, 그 아들이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일을 할 것이다.’ 이런 좋은 소식을 전해줬어요.
그리고 정말로 그 말씀대로,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곧바로 잉태를 합니다. 세례 요한을 임신한 거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다섯 달이 지나고, 이제 여섯째 달이 되었습니다. 이 때 천사 가브리엘이 다시 나타났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누구를 찾아가는가 하면, 나사렛에 사는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온 시간과 장소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2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아멘.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브리엘이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보내심이 있어야만 갈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우연히 된 일이 없어요. 엘리사벳이 임신하게 된 것도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태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가브리엘이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브리엘을 나사렛으로 보내셨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만날 자가 있기 때문이죠. 누구를 만납니까? 27절에 보면, 그 사람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아멘.
가브리엘이 찾아간 사람은 마리아라는 이름의 처녀였습니다. 우리 개역개정 성경에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는 말이 먼저 나와 있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처녀”라는 말이 먼저 나와요. 가브리엘이 나사렛에 간 목적이 바로 이 처녀를 만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27절을 헬라어 뜻에 맞게 직역을 하면 이렇게 번역을 할 수가 있습니다.
“처녀에게, 다윗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이름의 남자와 약혼 중이며 이름이 마리아라 하는 그 처녀”
이처럼 처녀라고 하는 방문목적을 먼저 밝히고, 그 뒤에 그 처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합니다. 크게 세 가지를 설명하는데요. 하나는 그녀가 처녀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녀가 약혼 중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그녀가 약혼한 사람이 다윗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의 정보를 주고 있는데요. 이 중에 가장 중요한 정보는 바로 그녀가 “처녀”라는 사실입니다.
처녀는 헬라어로 “파르테논” 이라고 하는데요. 말 그대로 남자와 동침을 한 적이 없는 순결한 여인을 말합니다. 누가는 마리아가 “파르테논”이었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처녀라는 말을 함으로써 ‘그녀가 처녀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약혼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인들의 관례에 따르면, 남자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집에 가서 지참금을 주고 결혼을 약속을 합니다. 이것이 약혼인데요. 약혼을 하면 실질적으로 부부관계가 성립이 됩니다. 하지만 동침을 할 수는 없어요. 부부는 맞는데, 아직은 동침을 하거나 같이 살 수가 없어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는 각자의 집에 떨어져서 지내야 합니다.
약혼 기간은 1년 정도 되는데, 이 약혼 기간이 끝나야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결혼식을 해야만 비로소 동침을 할 수가 있어요. 약혼 기간에는 반드시 순결의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만약에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돌에 맞아 죽습니다. 무섭죠.
신명기 22장에 보면, 이것을 규정하는 규례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신명기 22장 23절 24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이처럼 약혼 중에 순결의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것은 남자나 여자나 차이가 없어요. 똑같이 처벌을 받습니다. 만약에 약혼한 남편과 아내가 다 간음을 하면 둘 다 죽이고, 한 사람만 간음을 했으면 그 사람만 죽입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어요. 무조건 죽습니다.
그만큼 무서운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약혼 중에는 반드시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는 마리아가 약혼 중에 순결을 지킨 처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마리아의 결백을 증언하는 것이죠. 마리아는 결백하다. 순결한 처녀가 확실하다.
그리고 이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데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향해서 인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28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이것도 번역이 거꾸로 됐는데요. 우리 성경에는 “은혜를 받은 자여” 라는 말이 먼저 나왔지만, 본래는 “평안할지어다”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이 말은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인삿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서로간에 자연스럽게 하는 인사예요. 그래서 사실 이 인사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인삿말이기 때문에. 이 인사 뒤에 나오는 말이 중요합니다.
자, 뒤에 무슨 말이 나옵니까? “은혜를 받은 자여” 본래 헬라어 성경에는 이 말이 뒤에 나와요. 은혜를 받은 자여.
가브리엘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뜸 마리아를 보고 “은혜를 받은 자”라고 부릅니다.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니에요. “은혜를 받은 자야.”
이것은 네가 앞으로 은혜를 받게 될 거라는 말이 아니에요. 이미 은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마리아가 이미 은혜를 받은 자예요. 그러면 왜 은혜를 받은 자인가, 그 이유가 마지막에 있죠.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나님이 지금 마리아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나의 삶을 주목하시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 마리아가 바로 이러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자신이 그러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무슨 은혜를 받았나? 하나님이 도대체 언제 나와 함께 하셨나? 어리둥절해요. 그래서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29절 말씀에 보면, 마리아의 생각이 기록되어 있죠.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듣고 놀랐어요. 여기서 놀라다는 말이 헬라어로 “타라쏘” 라는 말인데요. 본래 뜻은 “뒤흔들다, 요동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정신이 흔들릴 정도로 놀랐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에요. 누가 뒤에서 톡 건드려서, ‘아이 깜짝아’ 이 정도로 놀랐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을 통해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오기 전에 먼저 사가랴를 만났을 때, 사가랴가 보여준 반응이 이것과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여기서 놀라며 라는 말이 바로 “타라쏘”입니다. 성전에서 분향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천사가 나타나니까 보고 놀란 거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성전에 누가 갑자기 나타나니까 심장이 철렁하지 않았겠어요?
천사 때문에 사가랴가 그만큼 놀랐습니다. 요동할 정도로. 그런데 재미있게도 마리아도 똑같이 놀랐다는 거예요. 사가랴와 반응이 똑같습니다. 그러데 여러분, 이 “타라쏘”라는 말은 긍정적인 말이 아니에요. 부정적인 말입니다. 성경에서 이 말은 100퍼센트 부정적인 말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마리아도 마찬가지예요. 천사의 말을 듣고 놀라서 굉장히 지금 마음이 부정적이에요. 마음이 안 좋다는 거죠.
분명히 천사는 ‘네가 은혜를 받았’다고 좋은 말을 했는데, 정작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안 좋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갑자기 천사가 나타났고,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내가 은혜를 받을 일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은혜를 받았다고 그러는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혼자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왜 나한테 은혜를 받은 자라고 하고, 왜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고 하는가? 천사의 의도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마리아에게 다시 말을 하죠. 30절에 보니까,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아멘.
천사가 무슨 말을 합니까?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을 해요. 놀라서 마음이 요동하고 있는 마리아를 안심시키는 말이죠. 그런데 사실 이 말도 사가랴에게 먼저 했던 말입니다. 사가랴가 천사를 만나서 놀랐을 때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고 했었어요. 누가복음 1장 13절을 봐 볼까요?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여기까지 보면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똑같습니다. 둘 다 똑같이 놀랐고, 둘 다 천사로부터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똑같은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이 뒤에 천사가 복음을 전해준다는 사실입니다.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 뒤에,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각각 좋은 소식을 전해줍니다. 사가랴는 어떤 소식을 들었습니까? 13절을 다시 봐 볼까요?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사가랴가 아들을 얻으리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그 아들의 이름까지도 이미 정해졌죠.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반면에 마리아는 어떤 소식을 들었습니까? 오늘 본문 3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아멘.
사가랴가 들은 말과 똑같은 형태의 말을 들었어요.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을 들었고, 그리고 이미 그 아들의 이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들었어요. 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들이 똑같습니다.
똑같이 천사가 찾아왔고, 똑같이 놀랐고, 똑같이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똑같이 아들에 대한 예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뒤에 결정적인 차이가 일어납니다. 마리아가 사가랴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여줘요. 그것이 34절에 들어있는데요. 3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가 천사에게 질문하는 모습인데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인데 어찌 아들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말이에요. 천사의 예언이 어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처녀가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는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정말로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마리아가 한 말 중에 “어찌”라는 말이 바로 방법을 묻는 단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헬라어로 “포스”라는 말인데, “어떤 방식으로”라는 뜻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되는 것인가? 라고 질문하는 말이 바로 “포스”라는 말입니다. 마리아가 지금 이것을 질문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처녀인데, 내가 어떤 방법으로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순수한 질문이죠.
반면에 사가랴는 어땠습니까? 사가랴는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늙은 제사장이었어요.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소망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들을 낳으리라는 예언을 듣고, 그가 이렇게 반응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8절인데요.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언뜻 보면 사가랴가 한 말이 마리아가 한 말하고 똑같아 보입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습니까? 이런 말이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하면, “무엇으로” 라는 뜻이에요. 어떤 증거를 요구하는 말입니다.
‘내가 이것을 무엇으로 알리요?’ 내가 이것을 알 수 있는 무슨 증거를 달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마리아는 믿음이 있었지만, 사가랴는 믿음이 없어요.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증거를 요구하는 거예요. 이 일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증거를 댑니다.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증거를 대는 겁니다. 완전한 불신이죠.
그래서 그 불신에 대한 대가로서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2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그가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가로 벙어리가 됐어요. 그러나 마리아는 달라요. 마리아는 놀랍게도 믿었습니다. 내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말을 믿었어요. 다만 그 방법을 몰랐을 뿐입니다. 내가 처녀인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까? 순수하게 방법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에 마리아가 믿지 않았다면, 마리아도 불신에 대한 대가를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떠한 대가도 치르지 않아요. 오히려 아주 친절하게 그 방법에 대한 답변을 받습니다. 처녀가 아들을 낳는 방법을 천사가 아주 친절하게 알려줘요. 그것이 35절 말씀인데요. 3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아멘.
천사가 알려준 방법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방법입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으심으로 말미암아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신의 방법으로써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빛이 생겨나고, 궁창에 마른 땅이 생겨나고, 처녀의 뱃속에 아이가 생겨나는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에요.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오기 6개월 전이 이미 또 한번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늙어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엘리사벳의 뱃속에 아이가 생겨났잖아요. 이 사실을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려줍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마리아에게 그 사실을 말해줘요.
3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베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늙어서 임신하지 못하는 네 친족 엘리사벳도 임신을 해서 이미 여섯 달이나 되었다.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하실 일이 없다, 라고 천사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7절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는데요. 37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못하실 일이 없어요.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할렐루야. 이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치유하고,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마리아는 그것을 믿었어요. 하나님께서 처녀인 나를 통하여 아들을 낳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이어서 왕으로 다스리게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리아는 믿는 데서 끝나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능히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믿음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했습니다. 38절에 마리아의 소원이 나오는데요. 38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아멘.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다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은 그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바랬습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다” 라는 말이 헬라어로 “게노이토” 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그것이 되기를 바란다” 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 말씀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진실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리아가 이런 고백을 하기가 사실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마리아는 약혼 중이에요. 정식으로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기도 전에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돌에 맞아 죽는 겁니다. 만약에 운이 좋아서 죽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파혼을 당할 일이에요. 남의 애를 임신한 여자랑 결혼할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엄청난 스캔들이에요.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마음을 먹은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통하여 민족을 구원할 왕을 낳게 하시려는 그 뜻을 알았기 때문에 마리아가 순복한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따르겠다는 게 아니에요. 나같은 천한 것이라도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음에 기뻐하며 기꺼이 따르겠다는 거룩한 순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겠다 하실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쁨으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나에게 거룩한 사명을 주시는 것, 그것이 은혜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마리아는 은혜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천사가 처음에 마리아에게 한 말이 뭐였습니까? “평안할지어다, 은혜를 받은 자여.” 마리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순간에 이미 마리아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 받을 자에게 은혜를 주셔요.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은혜가 어느날 갑자기 임합니다.
마리아는 약혼 중에 그 은혜가 임했어요. 솔직히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정식으로 결혼한 뒤에 그 은혜가 임했다면 더 좋았겠죠. 그랬다면 아무런 근심 없이 마음껏 가족들과 동네사람들에게 자랑할 수도 있잖아요. ‘여러분, 내가 메시야를 임신했습니다. 내 뱃속에 우리의 왕이 계십니다!’ 이렇게 떳떳하게 외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리아가 약혼 중에 그 은혜를 주셨습니다.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밝힐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때때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놀라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때가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자녀를 임신하게 된다거나, 갑자기 가난이 찾아온다거나, 병이 생긴다거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어요. 나중에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겠지만, 이 일이 일어난 그 때에는 재앙이고, 절망일 수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가혹한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는 은혜인데, 너무나 가혹해요.
나는 이런 은혜를 원치 않았고, 생각조차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가혹하게도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기왕 주실 거면 타이밍을 좋게, 이 은혜가 필요한 때에 주시면 참 좋겠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셔요.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주십니다.
우리는 왜 은혜를 주시냐고 하나님께 따질 수 없어요. 은혜를 주고 안 주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감사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왜 하필 이 때, 왜 하필 이런 은혜를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광대하신 계획이 있음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이미 은혜를 받았어요. 죄 사함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은혜를 받았고, 내일도 은혜를 받을 겁니다. 우리가 그 은혜에 대해서 “이런 은혜가 어찌함인가?” 하고 놀랄 이유가 없어요.
우리는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주저함 없이, 있는 그대로 그 은혜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를 받은 자로서,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날마다 기쁨으로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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