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

누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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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1:21-25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
2023. 5. 24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가랴가 기도 응답을 받은 뒤에 사가랴에게 일어난 일과, 또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에게 일어난 일을 각각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기 위하여 일주일 동안 성전 안에서 분향을 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열심히 분향을 하던 중에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죠. 누가는 이 천사의 이름이 ‘가브리엘’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구약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천사 가브리엘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사가랴에게 찾아왔어요.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을 가브리엘은 ‘좋은 소식’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누가복음 1장 19절 말씀인데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데요. 좋은 소식, 복된 소식, 한자로 하면 복음이죠. 가브리엘이 복음을 전한 겁니다. 그런데 그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장 13절부터 17절까지가 바로 그 내용인데요.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너의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줄 것인데,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해라. 그 아들로 인하여서 너도 기뻐하고 또 많은 사람도 함께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이 아들은 엘리야의 사명을 가지고 주님보다 먼저 와서 백성들을 준비하는 일을 할 것이다.” 이런 내용입니다.
여기서 핵심이 뭡니까? 사가랴의 아들이 주님보다 먼저 온다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아들이 오고 나면, 주님이 오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천사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에요.
그러니까 사가랴는 누가복음에서 최초로, 그리고 모든 복음서를 통틀어서 최초로 복음을 들은 사람입니다. 유앙겔리온, 좋은 소식을 가장 먼저 들었어요. 그것도 생생하게 천사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엄청난 특권이죠. 그런 놀라운 특권을 누렸으면 기쁨이 가득하고 은혜가 충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가랴의 반응이 어때요? 천사의 그 말을 믿지 않아요. 반응이 떨떠름해요. 왜냐하면, 사가랴가 아이를 낳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거든요.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기가 불가능한 나이였다고 보여집니다. 사가랴도 그렇고 그 아내도 그렇고. 그래서 믿지를 않아요. 과거에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아내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 엎드려 웃으면서 속으로 “나는 100살이나 됐고 아내는 90세나 됐는데 어찌 출산을 할까”, 하면서 믿지 않았던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직접 듣고도 믿지 않아요.
사가랴도 믿지를 않죠. 나도 늙었고, 아내도 늙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냐? 더군다나 내가 성전 안에서 열심히 분향하면서 기도한 기도의 제목은 아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가 속히 오시는 것이었는데, 왜 엉뚱한 응답을 주시는가? 이러한 의심으로 인해서 안 믿는 겁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사가랴에게 믿을 수 있도록 징조를 줍니다. 어떤 징조를 줍니까? 벙어리가 되는 징조를 주죠.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못하도록 만들어요. 누가복음 1장 20절을 봐 볼까요?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일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사가랴가 벙어리가 됩니다.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안 나와요. 그런데 언제까지 말을 못하는 겁니까?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말을 못하는 거죠. 이 일이 이루어지면, 그때 다시 말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일”이 무슨 일을 가리킬까요? 아들이 태어나는 일을 가리키겠죠. 그래서 실제로 나중에 아들이 태어나고,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을 때, 사가랴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언된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징조로서 말을 못하게 됐어요.
그런데 성전 안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성전 밖에서는 백성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사가랴가 이제 분향을 마치고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기다려도 안 나오니까 이상한 겁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봐 볼까요?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분향시간이 끝이 났는데도 집에 안 가고 사가랴를 기다리고 있어요. 왜 기다리고 있을까요?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르면, 분향이 끝난 뒤에 제사장이 성전에서 나와서 밖에 있는 백성들을 축복하는 순서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성전에서 분향을 하고, 분향이 끝나면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들을 축복하는 거예요. 그래야 분향이 완전히 끝나는 겁니다. 아침에도 그렇게 하고, 저녁에도 그렇게 하고.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축복을 하는 거죠.
그래서 분향이 끝나면 제사장은 제시간에 밖으로 나와야 돼요. 안 그러면 백성들이 불안해 합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얼른 안 나오면 혹시나 성전 안에서 뭔가 변고가 생긴 것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래요. 혹시 제사장이 뭘 잘못해서 벌을 받아 죽었다든지,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까봐 불안해 합니다.
과거에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분향을 할 때 하나님이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서 분향을 했다가 즉사한 사건이 있지 않습니까? 혹시나 그런 사건이 또 벌어질까봐 백성들이 노심초사 하는 거죠. 그래서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분향시간이 끝나면 제시간에 나와주는 것이 관례였어요.
실제로 유대인의 한 규례집을 보면, 백성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제사장은 기도를 길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례가 있습니다. 혼자 성전에서 오래 기도하지 말고, 시간 되면 얼른 나가라는 말이에요. 이런 정도로 제사장들이 시간관리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시간이 됐는데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백성들이 이상하게 여기는거죠. 왜 안 나올까? 혹시 안에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웅성웅성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던 차에 마침내 사가랴가 밖으로 나와요. 그것을 보고 백성들이 안심을 했겠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가랴가 축복을 안 하고 입을 뻐끔뻐끔 하고 있어요. 말이 안 나오니까. 축복을 하고 싶어도 못해요. 그것이 22절 내용인데요. 2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사가랴가 말을 못하고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려고 합니다. 축복을 해야 하는데, 못하니까 설명을 해야 되잖아요. 어떻게든 뜻을 전하려고 몸짓을 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백성들은 성전 안에서 뭔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벙어리가 되서 나타나니까, 자기들 나름대로 추리를 하는 거죠. 성전 안에서 뭔가 일이 있었구나.
오늘 본문에는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환상”은 헬라어로 “오프타시안” 이라는 말입니다. 오프타시안. 오프타시안은 “나타남” 이라는 뜻이에요. 뭔가가 나타났다는 거죠.
그러니까 백성들이 생각하기에, 성전 안에 뭔가가 나타난 것을 사가랴가 봤다고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뭔가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천사일 수도 있고, 어쩌면 환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약에 기록된 것처럼, 성전 안에 연기가 가득 나타났을 수도 있고. 뭐가 됐든지간에 뭐가 나타나도 나타났겠구나.
안 그러면 왜 멀쩡한 사람이 벙어리가 됐겠어요? 그래서 백성들은 사가랴가 뭔가 놀라운 것을 보고 경험한 것으로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사실 이게 틀린 게 아니죠. 실제로 사가랴가 천사를 봤잖아요.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사가랴가 단지 천사를 봤다고 해서 벙어리가 된 것이 아니라,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벙어리가 됐다는 겁니다. 가브리엘,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징조로서 벙어리가 된 거예요. 예언된 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그가 엉뚱한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그가 잠잠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시기 위하여 말을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천사를 통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은 뒤에 사가랴에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사가랴가 모든 직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요. 이번에는 사가랴의 아내인 엘리사벳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 24절인데요.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아내가 잉태를 했습니다. 가브리엘이 한 말이 벌써 성취되기 시작한 거죠. 그동안에 오랜 세월 동안 잉태하지 못하던 엘리사벳이 잉태를 했어요. 그녀가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사라처럼 경수가 끊어져서 임신이 불가능한 나이였을 겁니다. 물론 사라처럼 나이가 90살이나 되진 않았겠죠. 대략 50에서 60 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어쨌거나 굉장히 늦은 나이에 엘리사벳이 잉태를 했어요. 그런데 24절 말씀을 보면, 엘리사벳이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여러분, 엘리사벳이 왜 숨었을까요? 오랜 세월동안 꿈꾸던 아이를 마침내 가졌으면 여기저기 소식도 전하고 자랑도 하고, 또 축하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엘리사벳은 잉태하자마자 숨어버립니다. 이상하죠. 왜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숨어버릴까?
여기서 “숨다” 라는 말이 헬라어로 “페리에크뤼보” 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사방으로 숨기다” 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숨는 차원이 아니라, 철저하게 은폐시킨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엘리사벳이 아주 철저하게 은둔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그냥 다섯 달 동안 집 안에만 있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렇게 한 이유가 뭘까요? 왜 그렇게 꽁꽁 숨기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여러 견해들이 있지만, 결론은 하납니다. 엘리사벳이 이 소중한 아이를 위하여 각별히 조심했다, 라는 거예요.
출입을 금하면서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고, 또 골방에서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리고 이 아이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하는 시간을 가진 겁니다. 얼마 동안요? 무려 다섯 달 동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렇게 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섯째 달 되는 때에 갑자기 마리아가 찾아오는 바람에 이 은둔생활이 끝나게 됩니다. 이 내용은 다음시간에 볼 텐데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옴으로써 은둔생활이 그때 끝나요.
그 전까지는 엘리사벳이 가족 외에 누구도 만나지 않고,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 각별히 조심하며 기도와 찬양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바로 그때 엘리사벳이 했던 찬양의 내용이 나옵니다. 다섯 달 동안 찬양한 내용인데요. 2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아멘.
엘리사벳이 다섯 달 동안 이것을 노래한 거예요. 그런데 이 찬양을 헬라어 원문과 비교하면 말이 조금 다릅니다. 뉘앙스가 조금 달라요. 그래서 헬라어 원문에 맞게 직역을 다시 해보면, 이런 말입니다. 앞에 자막을 보면요.
“주님 그 분이 나에게 이렇게 행하셨다. 사람들 중에 나의 치욕을 제거하시려고 돌보시는 날들 속에서.”
자막을 계속 띄워놔 주세요. 자, 이것을 보면, 한글성경과 느낌이 좀 다르죠. 무엇보다도 찬양의 순서가 달라요. 이 찬양을 보면, 엘리사벳이 찬양의 시작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가장 먼저 내가 임신한 것이 주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죠. “주님 그 분이 나에게 이렇게 행하셨다.” 내가 임신하도록 해주셨다는 겁니다. 한글성경은 이 내용이 가장 끝에 있어요. 그러나 원래는 제일 처음 나오는 고백입니다.
엘리사벳은 자신이 임신이 불가능한 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어요. 그런데 임신이 됐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돼요. 이것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 은혜를 찬양하는 겁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다.” 찬양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어서 보면, “사람들 중에 나의 치욕을 제거하시려고 돌보시는 날들 속에서” 라고 노래하는데요. 히브리 사회에서 여자가 자식을 못 낳는 것은 굉장한 수치이고 부끄러움입니다. 엘리사벳도 그런 수치를 당했을 거예요. 남편이 제사장인데, 아들을 낳아야 제사장 대를 이어갈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자식을 못 낳으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수군수군했겠습니까? 사람들 중에 치욕을 당해요. 안 그래도 자식 못 낳는 것이 마음이 아픈데, 사람들이 면박을 주고 조롱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치욕을 제거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엘리사벳에게 자식을 주셨어요. 고대하고 고대하던 귀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날마다 기도하고 찬양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찬양의 마지막을 보면, “돌보시는 날들 속에서”라고 노래합니다. “돌보시는 날들 속에서” 우리 한글성경에는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이라고 되어 있죠. 어떤 특정한 한 날을 가리키는 것처럼 돼있어요. 단수로 쓰여 있는데요. 하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복수로 쓰여 있습니다. 날이 아니고, 날들이에요. 영어성경에도 복수로 ‘days’ 라고 번역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하루가 아니고, 여러 날들을 가리킵니다.
자, 그러면 이 날들은 어떤 날들을 가리킬까요? 바로 지난 다섯 달을 가리키는 겁니다. 아이를 임신하고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날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 내가 임신하던 그 하루만 나를 임신하도록 돌보시고 끝난 게 아니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나를 돌보시고 계신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일하심이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자막을 내려주셔도 됩니다.
자,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벳이 출입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죠. 주님이 나를 돌보시는 이 날들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함부로 하겠는가?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고, 혹시 다른 사람을 만났다가 부정한 생각, 부정한 말이 나올까 각별히 조심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에, 나 역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한번 은혜주시고 떠나시는 분이 아니에요. 은혜 주시고, 또 주시고, 어제와 동일하고 오늘도 우리를 돌보시는 분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그 기도를 가만히 들으시고, 최상의 때에 최상의 응답을 주십니다. 사가랴는 그 최상의 응답을 받고도 믿지 않아서 벙어리가 되었어요. 그러나 엘리사벳은 응답을 받은 즉시 감사와 기쁨으로 출입을 금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사람들 중에 받은 그 수치를 생각하면, 얼마나 사람들 앞에 가서 자랑하고 이 수치를 해소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신을 감추고, 자기 입을 절제하였습니다.
사가랴는 천사가 벙어리로 만들었지만, 엘리사벳은 자기 스스로 사람들을 향하여 벙어리가 되고,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었습니다. 무려 다섯 달 동안, 하루하루 주님이 함께하심을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양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엘리사벳과 같이 우리 입을 절제하고, 주님을 향하여 기쁨으로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날마다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엄마 뱃속에 잉태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을 동일하게 돌보십니다.
그 세월 동안에,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사가랴처럼 믿지 않고, 우리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세상에서 나의 나 된 것을 자랑하면서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악함에는 벙어리가 되고, 오직 하나님께만 정결한 입술로 찬양해야 합니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기도와 찬양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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