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하게

누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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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1:1-4
“확실하게”
2023. 3. 22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부터 누가복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살펴보면서 누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에 누가복음을 많이 읽고, 설교말씀도 많이 들어서 누가복음에 대해서 이미 익숙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누가복음을 잘 모릅니다. 저도 여전히 누가복음을 잘 몰라요. 누가복음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지만, 그 안에 담긴 신학적 깊이와 진리의 광대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누가복음의 문을 두드릴 때에 우리에게 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노크의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의 서론에 해당합니다. 여기에는 누가가 왜 이 글을 썼는지 그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들과 차별되는 것 중에 하나인데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은 서론이 없어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마태복음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족보로 시작이 되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갑자기 족보로 시작을 해요. 그리고 마가복음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해놓고 갑자기 이사야서 말씀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1장 1절 2절을 한번 봐 볼까요? 마가복음 1장 1절, 2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이렇게 구약의 말씀을 갑자기 집어넣습니다. 또 요한복음은 어떨까요? 대뜸 예수님이 말씀이다,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처럼 세 복음서는 서론이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을 처음 읽는 사람은 당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누가복음은 시작이 굉장히 젠틀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왜 이 글을 썼는지 목적을 먼저 밝혀요.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인데요. 오늘 본문을 읽으면,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우리가 많은 정보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이 글이 무슨 내용을 쓰고 있는 것인가를 알 수 있는데요. 오늘 본문 1절을 봐 볼까요? 1절에 보니까,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바로 이것이 누가가 쓰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을 쓰고 있어요. 이것을 보다 헬라어 원문에 가깝게 직역을 하면, “우리 가운데 성취된 사건들에 대하여” 라는 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한 사건들을 가리키고 있는데요. 누가가 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구약의 예언들을 성취하였는지, 어떻게 구원을 성취하였는지, 이 사건들을 쓴 겁니다.
그런데 밑에 2절을 보면, 누가가 이 사건들에 대해서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붓을 든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절을 봐 볼까요?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누가가 누가복음을 쓰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각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글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겼을까요? 당연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남겼겠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함께하던 1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실상 글이 필요 없었습니다. 1세대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굳이 글로 남겨서 복습할 필요가 없었어요. 이미 그들의 심령에 예수님의 얼굴과 목소리와 모든 가르침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2세대 그리스도인들은 경우가 다르죠. 2세대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말씀을 듣지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말씀을 들었어요. 누가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누가는 2세대 그리스도인이었어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케이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2세대 그리스도인들은 형편이 낫습니다. 비록 예수님께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생생하게 복음을 들을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3세대부터는 달라요. 이때부터는 조금씩 오류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똑같은 것을 들었어도 서로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고, 받아들이는 게 달라져요. 또 서로 내가 맞네 네가 틀렸네 하면서 파당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단이 생겨나는 거죠.
그래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도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겁니다. 그냥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록을 남겨서 확실하게 복음의 기둥을 세워야겠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그래서 2절의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이 붓을 들어서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남겼어요. 자기 마음대로 쓴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쓴 겁니다.
누가는 이 사람들이 쓴 것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습니다. 이 쓰여진 것들을 다 존중해요. 그런데도 굳이 누가가 새로운 또 하나의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면, 먼저 쓰여진 것들을 다 모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논리정연하게 총정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남겨진 기록들이 중구난방이에요. 어떤 기록은 오병이어 사건만 있고, 어떤 기록은 십자가 사건은 기록이 됐는데 부활은 빠져 있고, 이런 식으로 부분부분만 기록이 된 겁니다. 물론 이 기록들 중에는 마가복음이라고 하는 위대한 복음서도 포함이 됩니다. 사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여졌거든요. 누가가 마가복음도 읽어봤을 거예요. 마가복음이 얼마나 탁월합니까?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위대한 복음서예요.
하지만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분량이 작죠. 누가가 보기에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을 겁니다. 그래서 자료들을 모조리 수집하고 수집해서 보다 풍성한, 하나의 대서사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누가가 얼마나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연구를 했는지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3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아멘.
지금 이 말에 보면, 누가는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폈”습니다. 마가복음을 비롯해서, 먼저 쓴 사람들의 글들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겁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도들의 가르침과, 기록된 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철저하게 모든 자료들을 모으고, 그것들을 근원부터 순서대로 정리를 하고, 자세하게 연구를 한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제자들과 사도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자문을 구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 가운데 분명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찾아갔을 거예요.
누가복음 2장 51절을 보면, 예수님이 어린 시절에 한 말을 마리아가 마음에 담아두었다, 라는 내용이 있거든요. 이것은 마리아에게 물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는 내용이죠. 누가복음 2장 51절을 한 번 봐 볼까요?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었다는 사실은 자료를 연구하는 것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마음에 두었는지 안 두었는지 글만 봐서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사람에게서 직접 들어야만 알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누가는 연구를 하는 동시에 마리아를 비롯하여 제자들과 사도들을 찾아다니면서 물어보기도 하고 함께 의논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만큼, 누가는 정말로 철저하게 연구했어요. 3절의 말 가운데, 특별히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은 헬라어 단어 세 개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먼저 “근원부터”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노쎈” 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위로부터, 일찍부터” 라는 말이에요.
누가는 이 말을 함으로써 자기가 쓰고 있는 글이 다른 모든 글을 통틀어 가장 일찍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는 장면부터 시작이 되는데요. 그러나 누가복음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됩니까? 오늘 본문 밑에 5절에 보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가 나와요.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도 전에 어떻게 해서 세례 요한이 태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옵니다. 시작하는 시점부터가 완전히 다르죠. 정말로 누가는 그 어떤 글보다 압도적으로 먼저 일어난 사건부터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누가는 “자세히”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자세히” 이 말은 헬라어로 “아크리보스” 라는 말인데요. “자세하게, 주의깊게”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마태복음에서 사용된 적이 있는데요. 마태복음 2장 8절에 이 말이 사용됐습니다. 마태복음 2장 7절과 8절을 봐 볼까요?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지금 이 내용은 헤롯이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그 아기를 죽이기 위해 동방박사들에게 그 아기가 태어난 때를 자세히 묻고, 또 그 아기를 자세히 찾아보라고 명령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헤롯이 얼마나 아기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어가 바로 “자세히” 라는 단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누가가 사용하고 있어요. 마치 헤롯이 집집마다 아기를 찾아 샅샅이 뒤지듯이, 누가 자신도 모든 글을 샅샅이 뒤지고 찾아내는 모습을 우리가 연상해볼 수 있어요. 물론 이 말이 사용된 그 방향성은 다르지만, 어쨌거나 그만큼 누가가 철저하게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누가는 “미루어 살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파라콜루쎄오” 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본래 “뒤쫓다” 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이 말은 누가가 예수님의 행적을 쫓아서 낱낱이 조사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누가는 철저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예수님의 행적을 쫓아서, 예수님이 태어나시기도 전에 일찍부터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복음서를 쓴다기 보다는 역사서를 쓰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누가를 역사가 누가라고도 부릅니다. 의사이자, 복음전도자이자, 역사가.
우리는 누가의 이 철저한 연구를 통해서 예수님의 탄생 이전부터 부활승천하시기까지의 사건들을 보다 온전하게, 보다 풍성하게 받아서 볼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누가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의 열정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고, 보다 선명하게 그 분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가 누가에 대하여 감사하는 한편으로, 또한 저와 여러분이 누가와 같은 열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욱 정확하게 철저하게 예수님에 대하여 연구하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않는 말씀의 기초를 세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씀으로 바로 서고, 이어서 나의 가정과 나의 이웃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누가가 했던 그 일을 우리가 이어서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가 동참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오늘 본문을 계속 보면요. 누가는 자기가 쓴 글을 특별한 어떤 인물에게 주기 위하여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누가복음을 보고 있지만, 처음에 누가복음이 쓰여졌을 당시에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었어요. 3절에 그 이름이 있는데요. 바로 “데오빌로” 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누가는 이 데오빌로에게 편지로 보내기 위해서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실질적으로 누가복음을 쓴 목적이 바로 이거예요. 데오빌로가 보라고 쓴 겁니다.
여러분, 데오빌로가 누굴까요? 데오빌로는, 저도 누군지 모르겠어요. 데오빌로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데오빌로의 정체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학자들 간에 의견이 서로 달라요. 로마의 고위 관료였다는 의견도 있고, 진짜 사람이 아니라 어떤 공동체의 이름이었다는 의견도 있어요.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이름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데오빌로가 누군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다수의 학자들은 아마도 데오빌로가 로마의 고위 관료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부르기 때문인데요. “각하”는 헬라어로 “크라티스토스” 라는 말인데, 이 말은 로마의 고위 관료에게 붙이는 칭호였습니다.
역사가로 불릴 정도로 철저하게 글을 쓴 누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각하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각하라고 불렀겠죠.
뿐만 아니라, 데오빌로가 로마의 고위 관료였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있는데요. 그것은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장 1절부터 4절의 헬라어 문장이 굉장히 고급스러운 귀족 언어로 쓰여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원문을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인데요. 한글 성경으로 봐서는 실감이 안 됩니다. 헬라어로 봐야만 확실히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운 언어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사실 저도 헬라를 읽을 줄은 알지만, 잘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헬라어를 봐도 실감이 안 됩니다. 그냥 학자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저도 그런가보다 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세요. 1절부터 4절까지 고급 헬라어로 쓰였답니다. 이것만 아시면 됩니다.
어쨌거나, 일반 시민에게 보낼 거였으면 굳이 고급스러운 언어로 쓸 필요가 없겠죠. 이 글을 받아 보는 사람의 격에 맞춰서 고급스럽게 쓴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데오빌로는 실존인물이었고, 로마의 고위 관료였다라는 것입니다. 누가는 바로 이 사람을 위해서 누가복음을 쓴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썼느냐? 왜 그렇게 열심을 품고 철저하게 조사를 하고 연구를 해서 이런 대단한 복음서를 썼느냐?
그 이유는 4절에 나와 있습니다. 4절을 우리가 한 목소리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아멘. 오늘 말씀의 제목이 여기서 나오죠. “확실하게” 누가는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내용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누가복음을 쓴 겁니다.
아마도 데오빌로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지 얼마 안 된 초신자였을 겁니다. 복음이 그의 마음을 찔러 회개하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도록 인도함으로써 신자가 됐을 거예요. 그래서 더욱 주님을 알고 싶어서 이곳저곳에 물어보기도 하고, 돌아다니는 글들을 모아서 읽어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러던 차에 누가를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누가에게 물질적인 후원을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고, 누가는 그를 위해서 철저한 연구를 통해 누가복음을 써서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재밌게도, 오늘 본문을 보면 데오빌로를 깍듯하게 각하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나중에, 누가가 쓴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을 보면, 이때는 각하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냥 “데오빌로여” 하고 부릅니다. 사도행전 1장 1절을 잠깐 봐 볼까요? 사도행전 1장 1절을 보면, “데오빌로여...” 이렇게 첫 단어가 아예 “데오빌로여” 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그만큼 친해졌다는 것이죠.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각하였지만, 교제가 있고 난 뒤에는 친구처럼 편안한 사이가 된 겁니다. 로마의 궁정에 있는 고위 관료와 일개 의사가 복음이라고 하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대륙을 넘어, 국경을 넘어, 사회적 지위를 넘어,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가지는 힘입니다. 복음은 상대방이 누구든지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도록 하나로 이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아부를 잘해서 친구가 된 게 아니에요. 데오빌로가 누가에게 후원을 많이 해줘서 친구가 된 게 아닙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진리의 말씀이 그들을 하나로 연합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확실하게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확실하게. 이 말은 헬라어로 “아스팔레이아” 라는 말입니다. 아스팔레이아는 ‘흔들림이 없는 단단하고 안전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는 곧 우리의 말씀의 기초가 어떠한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든든히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이 글을 읽는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누가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역사가로서의 자신감이고, 동시에 성령님이 주신 감동의 증거입니다. 누가는 자신의 힘으로 쓴 것이 아니에요. 오직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주어진 지혜를 통해 자료를 선별하고 연구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복음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이 누가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확실하게 말씀의 기초를 세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이 누가복음을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핌으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않는 말씀의 기초 위에 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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