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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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1:46-56
“찬양의 이유”
2023. 7. 26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찬양의 이유”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찬양을 하십니까? 예배시간에 우리가 찬양을 하지만, 예배시간 외에는 언제 찬양을 하셔요?
찬양을 우리는 곡조가 있는 기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곡조가 있는 신앙고백이에요. 또 곡조가 있는 간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찬양은 그 형태가 여러 가지예요. 혼자서 부르기도 하고 여럿이 같이 부르기도 하고, 또는 악기 반주에 부르기도 하고 그냥 목소리로만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찬양을 언제 부르는가? 여러분, 찬양을 하는데 있어서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도때도 없이 부를 수 있어요. 내가 부르고 싶을 때 부르는 겁니다.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서 부를 수도 있고, 밥 먹다가도 부를 수 있고, 잠들기 전에도 부를 수 있어요. 물론 공공장소라든지 때와 장소를 잘 분별해야겠죠. 우리가 잘 분별해서 내가 찬양하고 싶은 때에 찬양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찬양을 하려고 해도 찬양이 안 나오는 때가 있죠. 너무 힘들고 슬퍼서.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는 때가 있어요. 또 반대로 나도 모르게 찬양이 우러나오는 때가 있어요. 은혜가 충만해서 나도 모르게 찬양을 흥얼거릴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찬양이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마리아가 찬양을 하는데요. 갑자기 마리아가 왜 찬양을 하는지 그 이유가 들어있습니다. 그 이유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우리가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단순히 기뻐서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또 반대로 슬프다고 해서 찬양을 안 할 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찬양해야만 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동일하게 찬양을 해야 돼요. 그 찬양의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마리아의 찬양을 통해서 그 이유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마리아가 찬양을 하게 된 배경을 알아야 되는데요. 오늘 본문 앞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마리아의 친족인 엘리사벳이 임신을 한지 6개월이 됐습니다. 너무 늙어서 임신을 못하는 여자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이 됐어요. 그것을 마리아가 천사에게서 전해 듣고서 축하해주기 위해 엘리사벳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 때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던 세례 요한이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예수님을 만난 것이 너무 기뻐서 엄마 뱃속에서 막 뛰놀았어요. 그리고 동시에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마리아를 향하여 노래를 합니다. 그게 45절인데요. 누가복음 1장 45절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아멘.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노래를 해요. 이 복은 그냥 받는 복이 아닙니다. 반드시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받는 복입니다. 마리아가 천사가 전해는 복음을 듣고 아무 의심 없이 다 믿었어요.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엘리사벳이 노래한 거예요. 그리고 그 노래를 듣고 이제 마리아가 찬양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오늘 본문 46절과 4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아멘.
마리아가 찬양을 시작하는데요. 먼저 뭐라고 찬양을 합니까?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영혼이” 찬양한다고 말하고 있죠. 또 뒤에서는 “내 마음이” 하나님을 기뻐한다고 하고 있어요. 내 영혼과 내 마음. 영혼은 헬라어로 “프쉬케”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헬라어로 “프뉴마”라는 말이에요.
사실 프쉬케나 프뉴마나 둘 다 “영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깊게 파고들면 의미가 조금 달라요. 프쉬케는 “인간의 자아, 내면, 인격”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프뉴마”는 본래 성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서 사용하면 “성령”이라는 뜻이 돼요. 그런데 사람을 향하여서 사용하면 “인간의 사고방식, 태도” 이런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개역개정성경에서는 프쉬케를 “내 영혼”이라고 번역했고, 프뉴마를 “내 마음”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번역을 잘했죠.
마리아가 지금 영혼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 마리아가 육신은 놀고 있고 영혼과 마음만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혼이 찬양한다고 해서 영혼만 찬양하고 육신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영혼”이라는 것은 단순히 영혼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서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영혼과 육신 그 모든 것이 온전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을 드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으로 기뻐한다는 것 역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영혼이” 찬양하는 것이고 “내 마음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그냥 문자적으로 보아 넘겨서는 안 돼요. 마리아가 이토록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 찬양하고 기뻐한 이유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류로 인하여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영혼과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마리아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는데요.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8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48절 시작,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아멘.
마리아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이유로 찬양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비천함을 돌보셨다는 그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하고 감격스러워서 찬양을 하는 것이죠.
이때 마리아는 스스로가 비천한 사람이었다고 고백을 하는데요. 여기서 비천하다는 말의 헬라어는 본래 그 의미가 “겸손”이라는 뜻입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죠. 그런데 자기가 스스로 낮아지면 겸손인데, 다른 사람이 강제로 나를 낮추면 비천이 되는 거예요. 마리아는 지금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낮아진 비천함을 고백하는 겁니다.
이 비천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주로 사회적 약자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인데요. 가난하고, 못 배우고, 인맥도 변변치 않은 그런 사람들이죠.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
그런데 마리아가 자신을 비천하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마리아의 집안이 굉장히 가난했고,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그런 집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어쩌면 마리아가 남에게 말 못할 어떤 마음의 깊은 상처가 있었을 수도 있어요. 단순히 물질적으로만 비천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심적으로 비천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과연 어떤 이유에서 마리아가 자신을 비천한 사람이라고 했는지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는 스스로를 비천한 사람이라고 여겼다는 것이죠. 이것은 겸손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정말로 자기는 비천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내가 낮아지려고 낮아진 게 아니라, 누군가가 혹은 세상이 나를 낮아지게 만드는 그 현실에 부딪쳐서 그의 마음에서부터 ‘나는 비천한 자야’라고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랬던 마리아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비천함을 돌보셨다는 그 은혜를 깨닫고 나서 영혼이 주를 찬양하고, 마음이 하나님을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억눌리고 억압되었던 그의 심령이 자유를 맛보고 찬란하게 빛을 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마리아가 찬양할 수밖에 없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수렁에서 나를 건지신 은혜가 너무나도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찬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어요? 메시야를 잉태하는 은혜를 주셨죠. 이 나라 이 민족을 구원할 메시야 왕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에요. 비천한 자에서 가장 귀한 여인으로 높아지는 겁니다. 세상의 여인 중에 가장 귀한 여인이죠.
그래서 마리아가 48절에서 이렇게 찬양하는 겁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내가 받은 복이 얼마나 귀한지, 만세에 걸쳐서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나를 복이 있다고 할 정도로 내가 존귀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대만도 아니고, 다음 세대만도 아니고, 그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세대마다 사람들이 ‘마리아는 복이 있다’고 말하게 되리라는 겁니다. 그만큼 큰 복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마리아가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본래 비천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구원하신 은혜를 받았어요. 우리는 그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해야만 합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돼요. 나를 구속하신 그 은혜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보답할 수 없죠. 우리는 그저 날마다 숨쉬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그 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지금 내 인생이 비천한 인생일 수도 있어요. 현실에 부딪쳐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인생을 살고 있는,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구원의 빛을 비추어주시고, 어둠의 동굴 밖으로 인도해주십니다. 그 은혜가 찬양의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도, 스스로가 비천한 인생이라 여기는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려 보십시오.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구원의 빛을 비춰주시는 그 은혜를 생각하며 찬양하십시오.
마리아가 메시야를 잉태하는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당장 집안의 형편이 나아진다거나 풍요로워지는 일은 없었어요. 여전히 그의 현실은 비천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심령은 더이상 비천하지 않았습니다. 만세에 복이 있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는 기쁨을 누렸고, 영혼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리아와 같이 모든 어둠을 떨쳐버리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서 두번째로, 마리아가 찬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욕심과 타락으로 무너졌던 질서를 바로잡으신 그 은혜가 두 번째 찬양의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 51절부터 53절까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아멘.
지금 이 말씀에 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크게 보면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권력층과 빈민층. 이렇게 둘로 나눠져요. 권력층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교만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 그리고 부자. 반대로 빈민층은요? 비천한자와 주리는 자. 이렇게 나눠지죠.
마리아는 당연히 이 중에서 빈민층에 속하겠죠. 비천한 자. 마리아가 여기에 속하는 거예요. 그런데 마리아가 이 둘로 나눠져 있는 사람들의 상황이 서로 역전되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은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는 내리치시고,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셔요. 반대로 비천한 자는 높이시고, 주리는 자는 좋은 것으로 배불리신다는 겁니다.
서로간에 상황이 역전되는 거죠. 가진 자들은 비천한 자들이 되고, 비천한 자들은 가진 자들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내용이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좌파의 노래다, 이렇게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1920년대에 영국의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마리아의 찬양을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시킨 역사가 있습니다. 혹시라고 인도인들이 마리아의 찬양을 부르다가 감동이 돼서 독립운동을 할까봐 걱정을 했던 것이죠.
그만큼 마리아의 찬양은 굉장히 혁명적인 내용입니다. 기득권층은 무너지고, 빈민층은 높아진다는 엄청난 내용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과연 마리아가 왜 이런 노래를 불렀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리아가 좌파였을까요? 사회를 전복시키려고 이런 노래를 했을까요?
그게 아니죠. 마리아는 본래 하나님이 세우셨던 질서가 다시 바르게 세워질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어떤 것입니까? 사람들은 교만하지 않고 모두 겸손하며, 권세 있는 자들은 약자들을 돌보고,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 그리고 비천한 자들은 자기들이 받은 것에 감사하며 권세자들을 존중할 줄 아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가 바로세워진 사회입니다.
마리아는 자기 뱃속에 있는 메시야 왕으로 인해서 그런 사회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기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입니다. 51절부터 53절까지 단어들을 보면 다 완료형으로 되어 있어요. 미래형이 아닙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거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됐다고 선언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이미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다.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셨다. 비천한 자를 높이셨다.” 이렇게 이미 그렇게 이루어진 것으로 선포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찬양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이 혼탁하고 무질서한 사회에 새롭게 질서를 세우시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만들어주실 것에 대한 기쁨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나이 어린 처녀에 불과하지만,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아요. 내 가족, 내 이웃, 내 민족이 동일하게 은혜를 누리며 살기를 소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성품인 줄로 믿습니다.
나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잘되기를 바라는 공동체적인 마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웃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그러한 긍휼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에게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쁨과 행복을 보면서 진정으로 함께 기뻐하며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국동제일교회가 그런 기쁨의 찬양을 부를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빈부격차를 넘어, 사회적 지위를 넘어 하나된 가족으로서 서로를 돌보며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마리아가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약속을 그대로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오늘 본문 54절과 55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억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번역이 조금 잘못됐어요. 개역개정에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또 기억하신 것으로 번역을 했는데요.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이 됩니다. “그가 그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다. 자비를 기억하시고.”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자비를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기억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베풀었던 자비를 기억하시고 다시 그 자비를 베풀게 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비를 다시 베푸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어요. 예레미야서에 보면 새언약을 맺으셨죠. 새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서, 백성들의 심령이 변화를 받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온전한 회복의 약속입니다. 이것이 새언약이에요.
그런데 지금까지 새언약이 잊혀져 있었어요.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남유다가 망하고 완조가 끊어지면서 백성들은 목자 잃은 양처럼 혼란스러워 했고, 여러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도 제대로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 이후에는 다른 선지자가 세워지지 않았어요. 말라기 이후에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약 400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가 끊어진 침묵기를 보냈습니다. 이 시간 동안에 새언약이 잊혀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침내 다시 기억하셨어요. 과거에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그 언약을 그 말씀 그대로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55절이 바로 그것을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55절을 다시 봐 볼까요?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그 언약을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두말 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죠. 마리아는 지금 유대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기 민족이 과거에 맺었던 그 약속대로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지게 된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기 뱃속에 있는 메시야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을 찬양하는 겁니다. “잊혀졌던 새언약이 메시야를 통하여 이루어지리라.” 천사 가브리엘이 전해줬던 말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며 부흥을 일으킬 그 날을 기대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번째 찬양의 이유입니다. 몇 백년 동안 잊혀졌던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에게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도 찬양해야죠.
새언약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 날 우리에게도, 전 인류에게 그 효력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 되는 새언약의 효력이 전 인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어요.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민족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하여서 우리들에게까지 언약의 대사에 포함시켜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가 찬양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번째로, 우리의 비천함을 돌보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은혜 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가진 모든 장벽을 넘어서 한 믿음의 공동체로서 서로를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찬양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가지나 돼요. 마리아는 그래서 영혼과 마음을 다하여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나사렛의 비천한 여인이었지만, 그런 현실은 찬양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어요.
우리는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있지만, 찬양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권세자든 비천한 자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상관없이 모두가 다 찬양해야 하는 이유만 있어요.
오늘 함께 살펴본 찬양의 이유들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이토록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찬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넘치는 은혜를 감사하며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찬양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