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밖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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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열왕기상 19:9-14
“굴 밖을 향하여”
2022. 12. 2
조 정 수
오늘 말씀 본문으로 “굴 밖을 향하여”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에 이세벨을 피해 호렙산 동굴로 피신하였을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대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방 선지자 850명과 영적 대결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엘리야의 제단 위에 불이 내렸어요. 그것을 보고 모든 백성이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모두 잡아다가 하나도 빠짐없이 죽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의 선지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런 놀라운 사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합 왕의 아내인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여호와의 능력이 두려워서 감히 엘리야를 쳐다보지도 못할 텐데, 이세벨은 어찌 된 사람인지 오히려 화가 치솟아서 엘리야를 죽이려고 해요.
엘리야로서도 황당했을 겁니다. 당연히 아합 왕이나 이세벨이나 여호와의 능력 앞에 바짝 엎드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도리어 죽이겠다고 하니까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이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만난 엘리야는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3절에 보면, 엘리야가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이세벨이 나를 죽이겠구나, 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거예요. 그래서 도망을 치는데 8절을 보면, 천사가 전해주는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호렙 산에 도착한 엘리야가 산에 있던 한 굴에 들어가서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9절을 자세히 보면, “그 곳 굴”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굴은 굴인데, 앞에 “그 곳”이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어요.
오늘 9절 말씀을 한번 봐 볼까요?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랴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갔죠. 여러분,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엘리야가 들어가 있는 굴이 산 이곳저곳에 있는 아무 굴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굴이 아마도 출애굽기 33장 22절에 기록되어 있는 “반석 틈”일 것이라고 말을 해요.
출애굽기 33장은 모세가 하나님께 우리와 동행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이것이 무슨 내용인가 하면, 과거에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계명과 율법을 받을 때에, 산밑에서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 앞에 제사를 지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이 백성들과는 내가 더 이상 함께 가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리십니다.
이때 모세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아마 엘리야가 느꼈을 황당함 그 이상이었을 겁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들고, 이제 막 내려왔는데, 내려오기도 전에 벌써 그 계명을 어겨 버렸어요.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나님이 “내가 더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때는 정말 말도 못할 스트레스가 모세를 짓눌렀을 겁니다.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은 또 하나님대로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시고.
이 때 모세는 그 스트레스를 헤치고 회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마시라고.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주시라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어요.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내가 함께 가겠노라”고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세는 하나님의 이 응답에서 만족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동행하겠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출애굽기 33장 18절 말씀인데요.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해요. 영광을 보여 달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 하신 그 약속이 실제임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으로만 말고, 실제로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이곳에 임재하여 주시라는 요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이 요청에도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100퍼센트 다 수용하신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이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할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다만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출애굽기 33장 22절과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갈 때 손으로 모세를 덮어서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등만 볼 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모세를 어디에 두겠다고 하시냐면, “반석 틈”에 두겠다고 하셔요.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반석 틈에 모세를 두고 손으로 덮었다가 영광이 다 지나갈 때에 손을 거두어서 하나님의 등을 보게 하시겠다고 하신 겁니다.
비록 얼굴은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등을 볼 수 있는 곳. 그래서 이 “반석 틈”은 모세에게 있어서 참으로 특별한 장소입니다. 너무나도 거대한 스트레스가 모세를 짓눌러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 그곳이 바로 “반석 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석 틈이 오늘 엘리야가 들어간 바로 그 굴입니다. 시내산이라고도 하고 호렙산이라고도 부르는 이 산에 엘리야가 이르렀고, 과거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갔던 반석 틈, 바로 그 굴에 엘리야가 들어가 머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굴에 머문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이 몰라서 물어보시는 것 아니죠. 여기 굴까지 인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데 왜 모르시겠어요. 누구보다 엘리야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지금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이곳이 엘리야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돌려서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의도는 엘리야가 호렙 산이 아니라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담대하게 이세벨을 맞서는 것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심령이 너무도 낙심되어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원하며 내 생명을 거두어주시라고 부르짖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0일간 엘리야를 등 두드려 일으키고 음식을 먹게 하시며 그를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호렙 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과거 떨기나무 불꽃으로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셨고, 이후에는 계명과 율법을 주셨으며, 또한 내가 너의 앞으로 지나가겠다 약속하셨던 그 산에 엘리야를 부르신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엘리야의 믿음과 용기가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를 기대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호렙산 굴에 도착하였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엘리야를 꾸짖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백성들이 있는 사마리아가 아니냐?” “내가 너와 함께하는데 무엇이 두려우냐?” 이러한 뜻이 담긴 질책이었습니다. 만약, 엘리야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이 질책을 듣고 깨달았을 거예요. 그리고 즉시 굴 밖으로 나가 사마리아로 돌아갔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 말씀 앞에서 엘리야는 무릎 꿇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그것은 지금껏 엘리야가 가슴에 담아 두었던 울분이었습니다. 10절 말씀을 봐 볼까요?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열심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칸나”라는 말인데, 이 말은 원래 “질투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할 때, “질투하는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때 질투의 히브리어가 바로 “칸나”입니다. 하나님은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길 때, “칸나” 질투하십니다.
그런데 엘리야도 하나님처럼 질투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그냥 질투한 것이 아니라, 질투가 유별하였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범죄를 직면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일생일대의 대결을 펼치고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 정도로 엘리야는 질투가 유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됐습니까? 승리의 영광도 잠시, 생명을 위해 도망칠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엘리야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모든 선지자들이 죽고 오직 자기 혼자만이 남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를 지지해줄 사람이 없고,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없고, 나와 함께할 사람이 없다는 그 고독감이 엘리야가 도망치게 만들었던 또 하나의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자신이 겪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가슴에 쌓였던 울분을 하나님 앞에 토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울분에 찬 외침 앞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절과 12절 말씀인데요. 우리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11절, 12절 시작,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아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엘리야가 기대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위로하신 것도 아니고, 그가 왜 도망자 신세가 되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답을 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제 그만 굴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굴 밖으로 나가서 내 앞에 선지자로서 담대하게 서서 사명을 감당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엘리야 앞으로 지나가셨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고, 지진이 진동했고, 불이 타올랐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였습니다. 과거 모세가 하나님께 보여달라고 요청하였던 바로 그 영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를 손으로 덮으셔서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라 말씀하셨던 것처럼, 엘리야는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산을 가르고 땅을 진동하는 그 놀라운 능력은 볼 수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다 지나간 후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작고 미약한 세미한 소리. 쉽게 듣고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이 소리로 하나님은 엘리야를 찾아오셨습니다.
어쩌면 엘리야는 이 세미한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과 같은 능력을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갈멜산에서 임하였던 그 불과 같은 능력이 다시 임하여서 원수 같은 이세벨을 태우고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을 다 없애버릴 것을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영광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 아니라, 잠잠한 가운데 말씀을 붙잡고 주를 의지하는 그 때에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 가운데에도 엘리야와 같은 상황에 놓여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전도하고, 내가 손해보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예배를 지켰는데. 오히려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앞은 더 캄캄해져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런 환난 가운데 놓여진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몸은 몸대로 아프고, 사업은 사업대로 안 되고. 여러 가지 문제가 찾아와서 너무나도 거대한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르고. 또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고독감마저 찾아와서 오직 나만 남겨진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어딘가로 도망쳐 숨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이 상황이 역전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바람처럼, 지진처럼, 불처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고 회복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찾아오시지 않고, 우리가 알아채기도 어려운, 언제 응답하시기는 하셨나 싶은 작디 작은 소리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주의하게 그 작은 소리들을 다 지나쳐버리고선, 왜 나에게 응답하시지 않는가 하고 더 큰 원망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렵고 힘겨운 상황 가운데 마음이 조급하고 경황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아주 잠시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잠히,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그 음성이 너무나도 작지만,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여호와의 영광은 바람이나 불에 비할 수 없이 참으로 광대합니다.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회복의 역사가 그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세미한 소리를 들음으로 말미암아 그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엘리야는 그 세미한 소리를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섰습니다. 굴 어귀라는 것은 굴 안과 굴 밖의 경계선입니다. 아직 밖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한 걸음만 내딛으면 곧바로 나갈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9절에서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과 똑같은 말씀이었어요.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말씀은 9절에서 하신 말씀과 토씨 하나 안 틀린 똑같은 말씀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전혀 달랐습니다. 처음 하신 말씀이 엘리야를 책망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 하신 말씀은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다잡고 다시 굴 밖을 향하여 나가기 위해 굴 어귀에 선 엘리야의 용기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네가 정말 굴 밖을 나가서 사마리아로 돌아가겠느냐?” “여전히 이세벨은 너를 죽이려고 하고 백성들은 언약을 버리는데도 진정으로 네가 가려느냐?”
이러한 질문을 던지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엘리야가 한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이 역시도 10절에서 그가 한 대답과 똑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14절의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아멘.
분명히 10절에서 한 대답과 똑같은 대답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더라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대답이에요.
그러나 대답은 똑같을지라도 지금의 엘리야는 10절에서의 엘리야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전에 그가 낙심하고 절망하고 고독감에 사무쳐 도망친 도망자였다면, 지금의 그는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이끄시는대로 담대하게 굴 밖을 향하여,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한 사명자였습니다.
그의 사명은 굴 안에 있지 않았어요. 그의 사명은 굴 밖에,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있는 사마리아에 있었습니다. 여전히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고, 여전히 백성들은 바알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엘리야는, 이제 더 이상 그 모든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역전시키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나 혼자라도 살자고 도망쳤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바알과 우상들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질서가 바로서는 이스라엘을 만들기 위해서, 나 혼자라도 그 사명을 다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엘리야처럼, 우리가 어떠한 환난을 만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고. 다시 한 번 용기와 담대함을 얻어 내가 있어야 할 곳, 나의 그 삶의 자리에 서서, 나의 가정과 생업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마침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는, 그 한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