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어나서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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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요나 1:4-6
“일어나서 구하라”
2022. 1. 25
오늘 본문을 놓고 “일어나서 구하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요나가 배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선장이 와서 요나를 깨우는 장면입니다. 풍랑이 와서 곧 다 죽게 생겼는데, 사공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부르면서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고 있는 반면에 요나는 잠을 자고 있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죠. 선장도 이해가 안 됐을 겁니다. 그래서 요나를 깨워요. 그러면서 책망을 하죠.
6절을 다시 봐 볼까요?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선장이 뭐라고 책망을 합니까? 지금 자고 있지 말고 일어나서 구하라는 것입니다. 일어나서 구하라. 기도하라는 거예요. 이방인이 선지자에게 왜 기도 안 하냐고 책망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지금 요나의 현실입니다. 얼마나 기도를 안 하면 이방인에게 기도 하라는 소리를 들어요.
지금 깨어서 기도해야 할 때인데 기도를 안 하니까 이런 이방인 선장을 통해서 기도 하라는 메시지를 주시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그 증거가 있어요. 오늘 본문 6절을 다시 보면, 일어나라는 말과 구하라는 말이 있죠. 오늘 말씀의 제목도 바로 이건데요. 일어나서 구하라. 이 두 단어가 사실은 2절에서 이미 나온 말들입니다.
2절을 봐 볼까요?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죠. 일어나 외치라. 여기서 일어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쿰” 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외치라는 말은 “카라” 라는 말입니다. 쿰과 카라. 이 두 단어가 6절에서 똑같이 쓰였어요.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일어나서 구하라. 이 말과 일어나서 외치라. 이 말이 서로 똑같은 말입니다. 쿰과 카라가 똑같이 쓰였어요.
그런데 2절에서는 쿰과 카라를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그런데 지금은 누가 합니까? 이방인 선장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이방인이 다시 한 번 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다른 상황,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쿰 카라. 일어나서 구하라.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이런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혀 교회도 안 나가고 믿음도 없는 사람이 어느날 나에게 툭 한 마디를 던지는 거예요. 실제로 제가 경험한 겁니다. 제가 예수님을 안 믿던 시절에 대학 밴드 생활을 했었는데, 그때 친구와 지금도 한번씩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그 친구는 불신자예요. 교회도 안 다닙니다. 그런데 가끔 전화를 하면 장난으로 저한테 이런 말을 합니다. “어이, 조 목사. 요새 기도는 좀 하나? 내가 꿈에 보니까 조 목사 영발이 요새 별로야.”
이 친구가 교회는 안 다니는데 친할머니가 권사님이에요. 그래서 주워들은 게 있다 보니까 저한테 이상한 말을 하면서 장난을 치는 겁니다.
그런데요. 이 말이 그냥 장난으로 들으면 장난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면 우리 영의 유익이 되는 겁니다. 이 친구가 무슨 이상한 사이비 소리를 한 게 아니잖아요. 기도하라는 말을 저에게 한 겁니다.
제가 기도생활을 소홀히 한다는 것을 제 친구의 입을 통해서, 믿음이 하나도 없는 이 친구를 통해서 저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그냥 허투루 넘기면 안 됩니다. 그냥 장난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민감하게 이것을 캐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영의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어떻게 했습니까? 이방인 선장에게서 기도하라는 말을 들었죠. 일어나서 구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 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캐치하고 기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죠.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요나의 영이 너무도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캐치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을 캐치하긴 했지만, 마음이 너무도 완악해져서 기도하기를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유였든지 간에 요나가 잘못된 것은 마찬가지죠. 영이 어두워졌든, 마음이 완악해졌든, 선지자 자격도 없는 겁니다.
여러분, 이 요나에 우리를 대입해 볼까요? 우리가 요나의 입장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방인 선장의 말에서 말씀을 캐치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캐치한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국동제일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깨어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어떠한 사람을 통하여서든지, 우리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캐치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놀라우신 구원을 체험하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