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1 수요강론: 초대교회사(2)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7 viewsNotes
Transcript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수요강론으로 부르시고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풍파와 같은 세상 속에서 교회는 아주 연약해보이고 넘어질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고백합니다. 말씀을 통해 교회를 언제나 수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이 시간 함께 알아가게 하셔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셨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신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열매를 맺게 하셨는지 알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하실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13:13-14 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수요강론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어제 신대원 졸업식이 있었는데요. 여러분의 지지와 기도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 신대원을 잘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신학교에서 다 각자가 가서 배우시기가 힘드시기에 저를 대신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해 제가 신대원을 마쳤기에 제가 신대원에서 배운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2주에는 설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오늘과 다음 주에는 강의를 통해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자 합니다. 지난 여름에 제가 초대교회사를 알려드렸었는데, 지난 시간에 이어 초대교회사 두 번째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교회 역사 속에서 말씀을 보존하신 하나님을 더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2> 지난 여름에 제가 초대교회에 대해서 강의를 했었는데요. 그때 우리는 초대교회 역사는 박해의 역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세우시고, 이 사도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게 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교회의 앞날은 밝을 것 같았지만, 그 반대였습니다. 1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것에 반대하는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당시 세계를 제패한 로마 시민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공식적인 박해가 아니었지만, 네로 황제를 시작으로 로마 정부로부터의 공식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잔인한 방식으로 순교를 당하였고, 이 박해 속에서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지하 예배당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박해 가운데서도 교회를 수호하셨고, 성도들의 신앙을 보호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 박해는 1세기에 교회가 세워진 후 3세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박해가 사그러든 평화의 시대가 있었다가 4세기 초에 가장 심한 박해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안은 로마 제국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번영을 가져온 황제였습니다. 디오클레티안은 특히 자기랑 또 다른 황제를 세워 제국을 동서로 나눠 통치하고, 또 이 둘 밑에 또 다른 황제를 세워 4명이서 로마 제국을 분할 통치하는 정책을 수행했습니다. 나머지 세 황제들 중 한 명만 반기독교적이었고, 디오클레티안의 아내와 딸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평화가 계속 이어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기독교에 적개심을 품은 갈레리우스가 정복을 위해 군사를 모으던 와중에 병역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버립니다. 당시 교회는 병역에 관한 의견이 통일되지 못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군사가 될 수 있다고 하고, 한 쪽에서는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죠. 당시 교회 지도자들 중 대부분이 신자들의 입대에 반대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이 군인을 자원했습니다.
<#4> 그러나 병역을 거부하거나 병역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갈레리우스는 몇몇 기독교인을 처형시킵니다. 왜냐하면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되는 시기에 기독교인 군인들이 명령에 불복종할 가능성이 있어 갈레리우스는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태도를 아주 심각한 위험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군부에서 기독교인들을 쫓아내었지만, 어떤 장교들은 기독교인 병사들에게 신앙을 거부하도록 강요하고 받아들이지 않을시 처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갈레리우스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졌고 디오클레티안 황제를 설득하여 기독교인들이 로마 정부에서 고위 관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기독교인들을 공직에서 해임시키고, 기독교 건물들과 서적들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성경과 다른 경건서적들을 포기하는 것을 거부하여 고문과 처형까지 시행됩니다.
<#5> 그러다가 황궁에서 두 차례 화재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갈레리우스는 이 화재가 기독교인들이 복수하기 위한 소행이라고 생각하였고, 자신의 황궁이 불타버린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황실을 섬기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예배하도록 엄격한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택하였고, 로마 제국 전연에서 교회 건물들과 서적들이 불탑니다.
<#6>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상황은 더 악화가 되어 일부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소란을 일으키게 되었고, 로마 정부는 기독교인들이 반역을 일으킨다고 확신하여 모든 교회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이방 신들을 예배하라고 명령을 넓힙니다. 이렇게 초대교회가 겪어야 했던 가장 잔인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 중 평안한 생활에 젖어있던 많은 신자들은 굴복하였고, 굴복하지 않는 신자들은 아주 교묘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을 받고, 처형 당하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다시 박해라는 어두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끝날 것 같지 않던 이 박해를 최종적으로 종식시킨 인물이 등장합니다. <#7> 그것은 바로 그 유명한 ‘콘스탄틴 대’의 등장이었습니다. 디클레티안이 정치적 싸움에서 지게 되어 양위하고 그 자리에 올라간 새로운 황제의 아들이 바로 콘스탄틴이었습니다. 콘스탄틴의 아버지가 다스리는 지역은 박해가 심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죽자 갈레리우스의 정책에 반대하던 병사들이 아들인 콘스탄틴을 황제로 추대합니다. 이렇게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틴이 정치적 싸움을 하게 되었고, 갈레리우스는 교회를 향한 박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갈레리우스가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는 마지못해 박해 정책을 수정하여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이로써 교회를 향한 가장 극심한 박해가 종식되었습니다. 감옥의 문이 열리고, 온 몸에 극심한 고문의 상흔을 가진채 하나님의 역사에 감사하는 많은 죄수들이 석방되었습니다. 갈레리우스는 이로부터 닷새 후에 사망합니다. 갈레리우스가 사망했으나 여전히 로마 지역 내에서는 교회를 박해하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 박해가 최종적으로 종식되는 아주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콘스탄틴은 정치적 싸움 속에서 이전에는 외교를 통해 살아남았지만, 이제는 살아남는 것만이 아니라 본인이 로마의 유일한 주인이 되기 위해 전쟁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8> 여기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요. 콘스탄틴이 전투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 전투 전날 저녁 밤에 콘스탄틴이 꿈 속에서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떤 꿈이냐면, 기독교의 상징을 병사들의 방패에 부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9> 그래서 콘스탄틴은 병사들의 방패와 군기에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헬라어인 ‘키’와 ‘로’를 겹쳐서 만든, 일명 ‘키로’ 문자를 그리도록 하고 전투에 나갔다고 합니다.
<#10> 그렇게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콘스탄틴이 승리를 거둡니다. 바로 상대편 황제가 다리에서 싸우다가 그만 떨어져 강에 빠져 죽어버린 겁니다. 칼에 맞아 죽은 것도 아니고, 전투에서 패배해 포로 잡혀 사형 당한 것도 아닌, 다리에서 떨어져 죽어버립니다. 좀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콘스탄틴은 이 다리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이 승리를 바탕으로 콘스탄틴은 동서로 분할 통치하는 곳 중 서부의 전체 주인이 됩니다. 전투 이후 콘스탄틴은 바로 동부의 황제를 만나 동맹을 맺고 협정을 서로 체결하게 되는데요. <#11> 이 협정이 바로 기독교를 향한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박해의 종결을 알리는 ‘밀라노 칙령’입니다. 이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는 모든 이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주고, 정부가 몰수한 건물들과 재산들을 기독교인들에게 반환해주게 됩니다.
밀라노 칙령이 반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틴과 함께 동맹을 맺은 황제를 제외하고 나머지 한 명의 황제는 여전히 박해를 지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자신의 정적들을 차례대로 제거하였고, 결국 로마의 유일한 주인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이로써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는 완전히 종결됩니다.
<#12> 이제 교회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예배를 마음껏 드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이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지금부터는 박해 이후의 교회 상황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3> 로마의 유일한 황제가 된 콘스탄틴은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기독교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콘스탄틴의 영향은 기독교에게 예배의 자유만을 준 것이 아니라, 교회가 막대한 부를 가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콘스탄틴은 1인자가 되기 위한 전쟁을 하던 중 로마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원로원과 충돌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1인자가 된 이후에 콘스탄틴은 절대 권력을 가지기 위해 수도를 옮기는, 천도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14> 어디로 수도를 옮길까 찾던 중 지금은 터기의 도시인 이스탄불인 비탄티움으로 가기로 합니다. 비잔티움은 위에 게르만 민족을 견제하고 중동과 흑해, 그리고 지중해를 다스리기에 아주 적합한 위치였습니다. <#15> 그래서 비잔티움에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여 콘스탄틴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름으로 바꿉니다.
이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기 위한 공사가 시작되었고, 콘스탄틴은 로마 제국 전역에서 도시 건설을 위한 재료들과 인력을 끌어옵니다. 특히 이런 과정 속에서 로마에 자리 잡고 있던 이방 종교의 신전들의 신상들을 운반해서 전차 경기장, 공동목욕탕, 광장 등의 공공장소에 놓습니다. 이것들은 이방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장식물의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옛 신들이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16>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는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에게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면제해주고, 그 밖의 다른 특권을 줍니다. 또 콘스탄티노플 주민들에게는 기름과 식량, 그리고 포도주 등을 무상으로 배급합니다. 이런 복지 정책을 펼치니 사람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라도 바로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했을 겁니다. 그래서 콘스탄티노플의 인구는 급증하였고, 100년이 지난 시점에는 이 도시를 넓히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17> 이 과정 속에서 앞에서 말했듯이 교회는 막대한 부를 가지게 됩니다.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방 종교의 신상들을 가져와서 장식품으로 삼았다고 했는데, 신전에 있던 많은 조각들과 장식품들을 몰수시킴으로 이교가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진 새롭고 정부가 장려하는 교회의 예배당은 대조적으로 화려하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틴이 기독교만 믿은 것이 아니라 이교도 함께 믿긴 했지만, 그가 기독교에 우호 정책을 펼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콘스탄틴의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이전에 교회는 외부로부터 박해를 받아 고난의 길을 걸었지만, 이제는 교회에 막대한 부가 생기고 밀려들어오는 상당한 수의 신자가 생겨 내부에서 이러한 큰 변화에 대처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내부에서 탈이 나기 시작합니다.
<#18> 먼저 통일된 올바른 교리가 없어 이단들이 생기기 시작하여 분열의 위기를 겪, 이전에는 이교로부터 박해를 받은 교회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에는 이교가 불법 종교가 되어 이교에 대해 교회가 폭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복음으로 변화시켜야 함에도 폭력으로 이교를 제압합니다. 또한 더 심각한 것은 직분을 사고 파는 성직매매 관습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전에 이교를 믿던 자들의 습관과 사상이 그대로 남아있어 이교와 기독교를 혼합하는 혼합주의와 미신이 교회 안에 남아있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이 병에 걸렸을 때 이전에 토속 종교를 믿었을 때의 습관이 그대로 남아있어 병을 없애고자 굿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 또한 기독교의 예배가 콘스탄틴의 영향으로 황실 의식의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황제에 대한 경의의 표시인 향이 교회 안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평상복을 입고 예배를 집례하던 목회자들이 화려한 예복을 착용하기 시작하고, 이교도 사제들을 모방하여 목회자들이 “사제들”이라고 불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천주교 미사를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배가 시작될 때 행진하는 관습도 이때 도입이 됩니다. 이때 성가대가 나타나고, 발전하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이 행진을 구체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나타나면서 이전에 목회자와 함께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던 청중들은 목회자들이 집례하는 것만 보는 수동적인 역할로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청중에게 주어진 예배의 참여권을 빼앗게 됩니다. 그래서 미사를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천주교의 미사에 참여하는 청중들은 항상 수동적입니다. 우리 기독교 예배는 말씀을 다 함께 듣고, 찬양을 다 같이 부르며, 성례의 적극적 참여자가 되지만, 천주교의 미사는 오로지 사제들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20> 성인을 기념하는 것은 박해 때부터 있었는데요. 2세기에 순교자가 매장된 장소에서 성찬식을 시행함으로 그가 죽은 날을 기념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소에 교회들이 건축이 되었는데요. 어떤 이들은 순교자의 유물이 있는 거룩한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어떤 이들은 당시 건축되는 교회의 제단 아래 안치하기 위해 매장된 시체를 파내기도 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거나 오랫동안 잊혔던 순교자들에게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관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지금 교황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의 성당인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도 베드로의 진짜 무덤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베드로 무덤 위에 건설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비적인 것들이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이때의 교회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종교개혁가들 덕분에 이런 것들이 아니라 오로지 성경이 우리의 유일한 규범임을 알게 된 것이지, 당시 교회는 이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21> 또한 급증한 신자들이 교회로 밀려들어옴에 따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콘스탄틴 이후 기독교 신자들이 급증하여 신자를 세우는 것에 가장 중요한 세례교육도 제대로 준비할 수 없었고, 세례 받은 후에 올바른 신자로 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과거에는 기독교로 회심한 자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엄중하고 철저한 교육을 시행하였지만, 이제 세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적절히 교육하고 지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교육과 훈련이 단축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 성례인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세례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22> 또한 과거에 단촐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건물에서 교회가 예배를 드렸지만, 이제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바로 윗 부분은 둥근 T자형 건물로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예배당이 등장합니다. 이 바실리카에는 “스테인드글라스”라고 하는 모자이크식 유리로 만든 화려한 조각이 예배당 창문을 장식하기 시작했고, 대리석과 램프, 그리고 수놓은 융단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특히 이 반원형을 그리는 오목한 곳이 바실리카의 핵심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예배가 집례되었고, 벽에는 예배를 주관하는 목회자들을 위한 좌석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 교회가 주교가 주관하는 교회라면, 이 좌석들 중앙에 주교를 위한 “보좌”가 놓여있는데, 이 “보좌”라는 용어에서 “성당”이라는 용어가 파생됩니다.
<#14> 아무든지 간에 이러한 큰 변화에 교회가 나타낸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콘스탄틴 황제가 교회에 베푼 은혜에 감격한 많은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틴이 교회와 국가의 역사를 한데 묶어 절정을 이루려 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존재임을 증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또 다른 반응은 황제가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선언하고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교회에 모여드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커다한 손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교회 전체와 교제 단절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막에서 은거하며 묵상과 금욕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제 순교할 기회가 없기에 이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경주자들은 순교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최소한 수도생활을 위해 계속 단련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4세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집트와 시리아의 사막으로 몰려가 수도원을 세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수도원의 시초입니다. 막대한 부를 쥐게 된 교회를 떠나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수도원의 시작이고, 수도원에서는 자급자족의 삶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는 농사와 같은 노동을 하면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고 신앙을 가졌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종교개혁가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가 바라봤을 때 옳지 못한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그때는 그랬고 이러한 연약함도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종교개혁가들이 교정한 올바른 신앙을 물려받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부를 쥐게 된 교회 안에서 잘못된 모습들이 나타난 것은 어느 시대에서든지 용납할 수 없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현대교회에도 막대한 부를 쥐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들과 오마주되는 모습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교회를 타락으로 이끄는 가장 주된 요인은 바로 ‘돈’과 ‘재물’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의 신인 맘몬을 숭배할 때 교회는 타락하고 썩게 됩니다.
이처럼 콘스탄틴의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콘스탄틴의 업적을 치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반응 이외에 또 다른 반응이 생기는데요. 사막에 수도원을 세우는 사람들이나 콘스탄틴의 교회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길을 택하지 않고 교회에 남아있던 이들 가운데서 지적 활동이 꽃을 피우게 됩니다. 이때 어느 시대에나 그러하듯이 교회 전반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들과 신조들을 제안하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24> 바로 이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25>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아리우스’라는 사람입니다.
아리우스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다정한 태도와 엄격한 금욕주의를 주장했다고 하며 설교도 아주 능숙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살이 없는 아주 멋진 몸매에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아주 공손한 말투를 써서, 여자들은 그의 정중한 예의와 금욕적이고 준수한 외모에 감동했고, 남자들은 그의 지적 탁월함에 감동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아리우스가 여느 때와 똑같이 설교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냥 매주 하던 설교였는데, 이 날에 그가 한 설교는 기독교에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문제시가 된 그의 설교문은 이 부분입니다.
“여러분,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같이 영원한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스스로 존재하시며 불변하시는 유일하신 성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성부의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성부께서는 아버지가 아니었던 시절이 있으셨으며, 성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6> 바로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따라서 성자 예수님의 신성을 거부하고 오로지 인성만을 강조하여 아리우스는 주장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고 인성만을 강조하는 이 주장은 훗날 아리우스가 주장하였다고 하여 ‘아리우스주의’라고 불리게 됩니다.
<#27> 아리우스의 이 주장은 기독교에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삼위일체에 대한 전면 도전을 일으키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신데, 이것을 흔드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아리우스의 주장은 교회에 혼란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고, 중요한 것은 이 아리우스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 많았다는 겁니다. 이때는 그럴만도 한 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공식적인 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리우스는 신성을 가진 존재가 둘이게 되면, 두 신을 믿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언틋 보면 이 아리우스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들릴만도 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많은 지식인들도 아리우스의 주장을 따랐다고 합니다.
이 아리우스의 영향으로 교회는 아리우스와 그를 반대하는 지도자들 사이에 신학 논쟁이 일어나 치고 박는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혼란 가운데서 교회는 골머리를 앓게 되었고, 교회가 분열이 되는 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또한 이러한 교회 혼란은 로마 제국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콘스탄틴은 이러한 교리 논쟁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 논쟁이 사회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정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콘스탄틴은 나라를 안정시키고자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을 해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약 300명으로 추정되는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열 것을 명합니다. 그리고 그 회의 장소로 소아시아의 한 도시를 선택하는데, <#28> 그곳이 바로 니케아이며, 교회의 최초 보편공의회라고 알려진 니케아 공의회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아리우스파들은 비록 자신들이 소수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주장이 옳고 논거를 분명하게 설명한다면 회의에서 아리우스의 주장이 인정되고 반대파가 정죄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아리우스파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또 다른 소수의 지도자 집단을 이끌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가 아리우스주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위협하므로 정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알렌산더가 이끄는 집단은 자신들의 주장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이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삼위일체에 대한 바른 교리를 정립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의 노력 덕분에 니케아 공의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미 오래 전 터툴리안이라는 탁월한 신학자가 말한대로 <#29> “세 위격들과 한 본질”이라고 정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아리우스는 정죄되었고 이단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니케아 공의회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내려진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의 결과물이 바로 우리가 오후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니케아 신경입니다. 니케아 신경에 보면 성자를 고백하는 부분에서 “그분은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출생하셨고 빛으로부터의 빛이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참 하나님이십니다. 출생하셨지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아버지와 동등본질이시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아리우스의 주장을 정죄하고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성을 가지셨으나 동시에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임을 교회가 공적으로 확인하고 고백하게 된 부분입니다.
<#30> 또한 이후에도 그리스도에 관한 다양한 이단들이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어 제3의 본성이라고 주장한 유티커스라는 사람도 있었고, <#31>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서의 인격과 인간으로서의 인격이라는 두 인격을 그리스도가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주장해 마치 두 머리를 가진 괴물로 만든 네스토리우스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공의회를 통해 이러한 이단들을 정죄하고 성경적 가르침을 고수하여 바른 교리를 세워 교회를 수호하였습니다.
이러한 공의회를 통해 바른 교리가 세워진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것까지만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의회의 항상 성경이 말하는 것까지만 결론을 냈습니다.
제3의 본성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유티커스의 주장에도 교회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분열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는 한 인격에 두 본성이 계심을 성경을 통해 확정하였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두 인격으로 계시다는 네스토리우스에 맞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는 두 본성으로 계시지만, 한 인격으로 계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32>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지적 호기심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신학생들도 성경을 연구하고 토론을 하다보면 “이건 왜 이렇지?”라며 자신의 지성으로 이해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좋고 지향해야 할 모습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제한해야 할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성경이라는 선입니다. 우리의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성경이 말하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결코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와 찬송의 대상이시지 연구의 대상이 아니십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추측할 수 있고 해석할 수 있지만, 공의회를 통해 정죄된 이단들처럼 정통 교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지나친 호기심을 가져선 안됩니다.
<#33> 이러한 원리에 따라 교회의 정통 교리를 가장 크게 피운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어거스틴,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어거스틴은 여러분이 2-3년 전에 고백록을 읽으셔서 그의 생애와 고백에 대해서 잘 아실 겁니다. 어거스틴은 어린 시절 방탕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성적인 모험을 자랑했고, 무분별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의 지원 덕분에 카르타고에 가서 수사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가 학문을 소홀히하진 않았지만, 그는 그 도시가 제공하는 많은 쾌락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어거스틴은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변과 설득력을 키우는 수사학을 공부하다가 뛰어난 언변과 문체만으로는 미흡하다는 확신에 도달하고 마침내 인간은 진리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는 진리를 찾다가 마니교에 입문하게 되는데, 마니교는 영적인 것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주장하는 종교입니다. 마니교는 어거스틴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어거스틴은 마니교에 심취하게 됩니다. 어거스틴에게 성경은 세련되지 못한 문체와 표현들이 가득했고, 그 중 어떤 부분은 야만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폭력, 강간, 부도덕, 사기 등의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주위와 자신 안에 존재하는 악에 관한 질문에 대해 이런 악의 근원을 성경은 말해주지 않았고 어머니 모니카는 오직 하나님만이 존재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마니교에 빠졌었습니다.
하지만 마니교도 결코 어거스틴이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해결시켜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신플라톤주의라는 철학을 만나게 되는데, 어거스틴은 이 신플라톤주의가 어머니의 신앙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주기를 희망하면서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신플라톤주의는 절대적 존재가 있음을 가르쳤고, 악은 다른 근원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 존재로부터 멀리 벗어난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그렇지만 또 하나의 의심이 어거스틴에게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조잡한 언어와 폭력과 거짓의 사건이 가득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이 질문에 해답을 준 것은 그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암브로시우스’였습니다. 당시 아들과 함께 밀라노에 머물고 있던 모니카는 어거스틴에게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제발 들어보라고 재촉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수사학 교수로서 당시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한 연설가의 예배에 참석하기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는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으러 간 것이 아니라, 그의 설교 방법을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 갔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시간이 흐르면서 수사학 교수라는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자의 모습으로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통해 어거스틴은 성경에 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지적 난제들이 해소가 됩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종류의 난제들이 그에게 남아있었습니다. 미지근한 신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어머니의 신앙을 받아들인다면, 평생을 헌신하여 육체적 정욕과 야망들 뿐만 아니라 수사학 교수라는 직업도 버려야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그는 아직까지 육체적 정욕의 유혹에 심하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는 “나에게 정결과 순결을 주시옵소서. 그러나 조급하게 이를 허락하지는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곤 했다고 후일에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선택하기로 한 그의 내면에는 영적 전투가 펼쳐졌습니다. 그는 이미 기독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서두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지적 난제들 뒤에 숨어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스어로 된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작품들을 라틴어로 번역한 유명한 철학자가 교회에 출석하여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또 두 명의 고위 관리가 아타나시우스가 쓴 책을 읽고 세상의 관직과 명예를 버리고 신앙인의 길을 택했다는 소식도 그에게 전해졌습니다. 이때 어거스틴은 친구들의 무리, 혹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밀라노의 정원에 숨었는데 여기서 결정적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정원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자신의 죄의 비참함을 느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와중에 근처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음성은 바로 “톨레 레게”라고 하는 “집어 들고 읽어라”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은 세 번 들려왔고, 그가 정원에서 읽고 있다가 내려놓은 책을 다시 집어 들고 방금 읽던 부분을 찾아 바울의 말을 읽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성경 본문인 로마서 13:13-14 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구절을 통해 어거스틴은 극적 회심을 경험하게 되고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고 수사학 교수를 사임합니다. 그는 수도사로서 은둔하기로 결정하고 북아프리카로 어머니와 함께 떠납니다. 신앙인이 되길 바랐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이루어지게 된 겁니다. 이렇게 그는 교회에서 유명한 인사가 되었고, 북아프리카의 힙포에서 그는 목회자가 되었고 힙포의 주교가 됩니다.
이 어거스틴을 통해 교회는 큰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초대교회의 정통 교리들을 집대성하고 정리하여 지금까지도 우리는 어거스틴의 영향력 아래에 좋은 교리를 배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특히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을 통해 예정론을 확증한 것이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펠라기우스는 지나친 지적 호기심을 가져 인간의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였고, 이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잘못된 가르침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가르침에 맞서 어거스틴은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존재이며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이 필요하다는 정통 교리를 확립하게 됩니다. 바로 어거스틴도 그의 신앙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죄의 책임은 인간에게로 돌리고, 구원을 위한 은혜는 하나님께로 돌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이 어거스틴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것이 루터와 칼빈이며 현재 이 종교개혁가들의 가르침을 계승받은 우리가 여전히 인간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정통 교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초대교회의 신학을 가장 꽃피운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거스틴에게 로마서의 말씀을 주셔서 말씀을 통해 극적인 회심을 이루시고 그를 통해 교회에게 큰 유익들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수호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초대교회가 걸어온 길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우리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예배나 성례에 있어서 연약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고, 교회가 타락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을 통해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올바른 가르침을 교회가 고수할 수 있도록 하셨고, 교회를 계속해서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교회사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보호하셨으며,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보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교회가 걸어온 잘못된 길을 통해 현재 우리를 반성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강의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족하지만 오늘 저를 통해 우리는 콘스탄틴 이후의 초대교회사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수호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과 같은 지도자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를 수호하려고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성경을 우리의 유일한 규범으로 두고 성경에 따라 교회를 수호하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35> 현대교회는 초대교회와 똑같은 문제를 겪기도 하지만, 초대교회가 겪지 못한 많은 도전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A.I.와 기독교, 트렌스젠더와 같은 성적 지향과 도전에 직면해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지혜롭게 성경에 따라 초대교회에서 나타났던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교를 제압한 것이 아니라 복음과 따뜻함으로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교회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저희의 노력과 열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저희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지키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저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날마다 교회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간도 보이진 않지만 항상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말씀을 통해 느끼며 하나님께 찬양하는 한 주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지켜주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주일까지 함께하셔서 다함께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주일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으로 오늘 모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