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요나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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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요나 1:11-15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2022. 2. 8
오늘 본문을 놓고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볼 때에, 우리가 바다의 모습에 대해서 한번 집중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바다의 모습을 먼저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그리고 15절에는,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라고 말합니다.
바다의 파도가 점점 더 무섭게 요동을 치다가 마침내 그쳤어요. 오늘 이 바다의 모습을 우리가 염두에 두고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1절에 보면, 바다의 파도가 점점 흉용해집니다. 지금도 무서운데 더 무서워졌어요. 집채만한 파도가 배를 금방이라도 덮칠 듯이 요동을 칩니다. 왜 파도가 이렇게 더 무서워졌을까요? 이유는 하나죠. 요나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애초에 요나만 아니었으면 바다가 요동칠 이유가 없어요. 선장과 사공들 모두 평안하게 배 타고 다시스로 갔을 겁니다. 그런데 불순종한 한 사람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겁니다. 요나가 불순종하고 도망치다가 하필 배를 타는 바람에 그 배에 탄 사람이 다 죽게 된 거예요.
오늘 본문 앞 내용을 보면, 선장이 요나를 잠에서 깨웠죠. 너는 도대체 이 상황에 어떻게 잠을 자고 있을 수가 있냐? 얼른 일어나서 네가 믿는 신에게 구하여라. 일어나서 기도하라고 선지자를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아요.
또 그 뒤에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딱 걸려서 너는 도대체 누구냐? 물어보니까 요나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자기 스스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하는 말이 이거예요. 내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쳤기 때문에 이 풍랑이 온 것이다.
요나는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왜 이 일이 일어났는지. 자기 때문에 일어난 거죠. 그런데 여러분, 알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알면 고쳐야죠. 지금이라도 순종해야죠. 그런데 순종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상황이 흘러갑니까? 상황이 더 악화돼요. 오늘 11절에 나오잖아요.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순종하지 않으니까 바다가 점점 더 요동을 칩니다.
그래서 11절을 쭉 이어서 보면,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물어봐요. 너를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하겠느냐? 여러분,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해집니까? 요나가 순종하는 것이죠. 그 방법 밖에는 없어요. 요나도 그것을 알아요. 내가 순종해야만 바다가 잔잔해진다는 것을. 내가 순종하고 니느웨로 가지 않는다면 갈 때까지 풍랑이 오고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하지만 요나가 순종하지 않죠. 12절에 보면, 요나가 사람들에게 바다가 잔잔해질 방법을 알려주는데, 전혀 엉뚱한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것이 무슨 방법입니까?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라. 나를 바다에 던져버려라,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다.
이런 이상한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냥 요나가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싫은 겁니다. 차라리 내가 바다에 던져져서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순종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요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요. 자기들이 살 방법을 들었는데도 그 방법을 곧바로 실행하지 않아요. 요나만 죽으면 상황이 나아진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차마 산 사람을 바다에 던질 수가 없어서 힘껏 노를 젓기 시작합니다. 어떻게든 육지로 가려고 노를 저어요.
여러분 이 장면이 머리에 그려지십니까?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희생시킬 수 없어서 사력을 다해 노를 젓는 사람들. 이 장면이요. 얼핏 보면 아주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감동적인 장면이에요. 자신이 저지른 일에 어떻게든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이거든요. 그러나 진실을 알고 보면, 이 장면은 결코 아름다운 장면이 아닙니다. 이것은요 감동 드라마가 아니라, 그저 재난 다큐멘터리예요.
한 사람이 재난을 불러왔고, 그 재난이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 재난을 해결할 분명한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외면하고 차선책을 말하고 있죠.
그런데 이 장면에서 요나가 얼마나 완악하냐면, 죽으려면 그냥 자기 스스로 바다에 뛰어내리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또 싫은 거예요. 자기 스스로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나를 던져라. 너희가 살고 싶으면 나를 바다에 던져라.
여러분, 요나와 예수님을 한번 비교를 해볼까요?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아무런 잘못도 없고 죄도 없으신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죠. 인류의 죄를 홀로 책임지셨어요. 책임지실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하셨습니다.
반대로 요나는 죄가 있죠. 그 죄 때문에 재난이 왔어요. 그 재난을 해결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돼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죠. 책임을 남들에게 미루고 있어요. 자기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지 않고, 남들의 손에다가 맡긴 겁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죠. 바다가 점점 흉용하여져서 배가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긴박한 순간에 신속하게 이 일을 해결을 해야 하는데, ‘나는 모르겠다, 너희가 알아서 해라~’ 이러고 있어요. 이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책임을 지려면 끝까지 져야지 끝에 가서 책임을 전가한다면 이것은 책임을 진 게 아니에요. 성경에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순종해서 바다를 잠재우든지, 아니면 스스로 끝까지 책임을 지고 바다로 뛰어 들든지. 여러분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제가 자살을 부추기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올바른 책임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책임을 져야 할 때, 그 책임의 방향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했지만, 사실 이것은 전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방법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요나의 이 잘못된 책임의 방향으로 말미암아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해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11절에서 흉용해진 바다가 또 한 차례 더 흉용해집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에요. 왜 요나를 바다에 안 던지냐? 하고 하나님이 바다를 더 흉용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풍랑의 모든 초점은 요나에 맞춰져 있어요. 풍랑이 온 것도 요나 때문이고, 풍랑이 더 흉용해진 것도 다 요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요나에게 올바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더 큰 풍랑으로 책망하고 계십니다. 이래도 네가 순종하지 않을래? 이래도 안 할래? 더 더 큰 풍랑과 시련을 주셔요.
우리가 그 풍랑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쫓아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 길이 잘못된 길일 수 있어요. 이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방법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어쩌면 그 길이 나를 더 흉용한 바다로 끌고 가는 사망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시간에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결국에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리고 바다가 잠잠해집니다. 오늘 제목이죠.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여러분, 이것은 요나에게 있어서 풍랑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풍랑은 그쳤지만, 풍랑만 그친 것이 아니라 요나의 인생까지 같이 끝나버린 겁니다. 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만 것입니다. 결국에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친 결과가 바로 이것이에요. 사망입니다. 아직 그의 숨이 끊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생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 방향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나를 살리고, 가족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생명의 길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생명의 길로 맡은 책임을 다하며 담대하게 나아가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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