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환난 때에 깨어 있으라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요나 1:4-5
“환난 때에 깨어 있으라”
2022. 1. 21
오늘 본문을 놓고 “환난 때에 깨어 있으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 본문은 요나가 배를 타고 도망을 가던 중에, 하나님이 던지신 바람으로 말미암아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게 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보다 민족의 안위와 개인적인 감정을 더 우선시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도망쳤어요. 하지만 하나님에게서 도망칠 수가 없죠. 하나님이 요나를 쫓아오셔서 바다에 큰 바람을 던지십니다. 그래서 그 풍랑에 떠밀려 배가 거의 깨질 지경이 됐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 부분을 말씀 드렸었죠. 배가 거의 깨질 지경이 되었다. 이 말이 다르게 번역을 하면 어떤 말이 됩니까? “배가 깨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이 됩니다. 배가 생각을 해요. 내가 깨져야겠구나.
하나님이 바다에 바람을 던지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게 하기 위해서죠. 그런데 배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요나를 바다에 빠지게 하려고 자기 스스로 깨져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낱 미물인 배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순종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불순종하고 있어요. 아이러니한 일이죠.
자,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이처럼 아이러니한 장면이 나옵니다. 풍랑이 너무도 거세고 배가 깨질 지경이 되니까 사공들이 하는 행동을 보세요. 오늘 본문 5절에 봐 볼까요?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사공들이 어떻게 행동합니까?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환난을 맞이한 사람의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자기들이 믿는 신을 부르고,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는 거예요. 사공들은 배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해서 물건들을 버렸습니다. 이 물건들은 저 멀리 다시스에 가져다 팔 상품들이었고, 또 그동안에 먹을 식량들이었어요. 이것들이 없으면 사공들은 쫄딱 망합니다. 그리고 혹여나 살아나더라도 쫄쫄 굶어야 돼요. 그럼에도 지금 당장 살기 위해서 그 물건들을 아낌없이 바다에 던졌습니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자, 그런데 지금 요나는 어떻습니까?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사공들은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요나는 자고 있어요. 사공들과 완전히 상반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둘 중에 누가 더 정상으로 보이십니까? 폭풍 속에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하고, 잠을 자는 사람. 이 둘 중에 누가 정상이에요? 당연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정상이죠. 반대로 요나는 비정상. 어떻게 지금 상황에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정상이 아니에요.
사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망친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죠. 어떻게 하나님의 선지자가 불순종하고 도망을 칠 수가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어요.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망치더니 지금은 풍랑 속에서 잠을 잡니다. 비정상적인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지금 이 일들이 사실은 어떻게 일어났어야 합니까? 애초에 요나가 명령에 불순종해서는 안 됐죠. 비록 하기 싫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명령에 순종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어요. 자, 그러면 이제 불순종하고 배를 타러 도망쳤죠. 그래도 아직 선지자로서의 사명감이 남아 있었더라면, 배를 타러 욥바에 왔을 때, 이때서라도 돌이켜서 배를 타지 말고 돌아왔어야겠죠. 그것이 정상이에요. 그런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어요.
자, 이제는 요나가 배를 타고 항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풍랑이 찾아왔어요. 여러분, 그럼 이 풍랑 속에서 요나가 어떻게 행동을 했어야 하겠습니까? 무엇이 정상적인 모습일까요?
당연히 지금 이때에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정상이지 않겠어요?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니느웨로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이렇게 부르짖어야죠. 그것이 선지자로서 당연한 모습일 겁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것마저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깨어서 부르짖어야 할 때에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환난 때에 결코 이 요나와 같이 잠을 자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깨어서 기도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돼요.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는데, 배가 곧 산산이 깨어질 지경인데,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자다가 죽는 겁니다. 저 깊은 배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쳐온 풍랑을 앞에 두고 망연자실 해서 자포자기 해버린다면, 그것은 그냥 풍랑에 몸을 맡기는 일입니다. 풍랑은 우리의 사정을 봐주지 않아요. 인정사정 없이 휩쓸어버립니다.
요나는 자포자기 했어요. 살기 위한 어떤 몸부림도 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만히 배 밑바닥에 누워서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깊이 잠이 들었다고 말하는데, 성경에서 잔다는 말은 곧 죽었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일 때가 많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요나는 숨만 붙어 있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인생을 놓아버린 삶은 이미 죽은 삶입니다. 환난 앞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내다버린 인생, 그것이 지금 요나의 인생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이런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풍랑 가운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거친 풍랑 속에서, 우리는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릴 필요 없어요. 육지가 어디에 있는지, 별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런 것을 찾을 필요 없습니다. 또한 우리 짐을 바다에 던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 주님만 찾으면 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도저히 살아날 길이 보이지 않는 환난이라도, 우리가 깨어서 주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부르짖는다면, 반드시 주님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깨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풍랑과 환난을 말씀 한 마디로 평정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 놀라우신 응답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