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역사의 주인공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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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요나 1:14-16
“역사의 주인공이 되리라”
2022. 2. 11
오늘 본문을 놓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요나서 강해를 통해 계속해서 요나의 행적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요나와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집중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배에 타고 있는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본래 이 사람들은 여호와를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풍랑이 찾아왔을 때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향해서 부르짖었었습니다. 1장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여호와를 전혀 알지 못한 채로 각자 자기들이 믿는 신을 부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제 누구를 부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불러요.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이죠. 다른 신들을 찾던 사람들이 풍랑을 통해서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로 변화된 겁니다.
이처럼 변화는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되었던 바울이나, 단번에 자기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던 베드로처럼, 어느 한 순간에 사람은 변화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변화의 현장에서, 정작 하나님의 선지자는 어떻습니까? 누구보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야 할 선지자는 지금 인생을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요나는 지금 이 순간에 굉장히 황당한 심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방인들이 여호와를 부르짖고 있으니까요.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젖어 있는데, 이방인들이 여호와를 부르짖는 모습이 얼마나 황당하게 보였겠습니까?
여호와의 구원도 이스라엘의 것이고, 여호와의 축복도 이스라엘의 것이고, 여호와를 부르짖는 것 자체도 이스라엘만 할 수 있는 것인데, 이방인들이 그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성경에는 안 나왔지만, 요나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니, 이것들이 나를 바다에 던지라니까 던지지는 않고 여호와를 부르짖다니?’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요나는 그저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친 것뿐이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에 전파된 겁니다.
물론 지금 사공들이 여호와에 대한 경건한 믿음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죠. 풍랑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위대한 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르짖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을 살펴보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부르짖어요.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지금 사공들이 부르짖는 것은 하납니다. ‘우리가 요나를 바다에 던진다고 해서 우리에게 그 죄를 묻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요나를 죽인 책임을 우리에게 지우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14절에 보면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말아’달라는 말을 쓰는데요. 무죄한 피를 돌린다는 말은,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인 일에 대한 복수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말라는 말은, 우리에게 요나의 복수를 하지 말아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면서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하는가 하면,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이 말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사실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뜻이라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이것은 지금 사공들이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요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여호와께로 돌리는 변명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저 살고 싶은 겁니다.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죄에 대해서 보복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자기들이 하는 이 행동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이라는 주장을 펴는 겁니다. “여호와여 이 사람을 바다에 던지는 것이 당신의 뜻이지 않습니까? 이 사람을 바다에 빠트리시려고 이렇게 풍랑을 일으키신 것 아닙니까? 우리가 그 뜻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살려주세요.” 이런 심정으로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믿음이 없습니다.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과 살고자 하는 간절함만이 있을 뿐이에요.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입니다. 이방인의 입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나온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에요.
여러분, 지금 여호와의 능력을 체험한 이 사람들이 나중에 살아서 다시스로 가게 되면, 이 사람들을 통해서 다시스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엘서 2장 3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여러분, 여호와의 이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입니다. 믿음도 어쨌든 알아야 믿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 여호와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통해서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곳에 그 이름이 전파되고, 그곳에 믿는 자들이 생겨나게 될 겁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일어나게 된 일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여호와를 피해서 도망쳤을 뿐인데, 그것이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여호와를 알리고, 변화되게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순종할 때에도 확장되지만, 불순종한다 할지라도, 그 불순종을 통해서까지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어떻게서든 이루어져요. 사공들이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고, 힘껏 노를 저어도 풍랑을 이길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들의 온갖 방해를 덮고 위대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계획 안에서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변화되고, 땅이 뒤집어지고, 성령의 불이 임하는 그 놀라운 사건의 현장 속에서 그 사건의 산 증인이 되고, 놀라운 간증의 주인공이 되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