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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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요나 1:7-10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2022. 1. 28
오늘 본문을 놓고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배에 탄 사람들이 제비를 뽑아서 누가 이 재앙의 원흉인지를 확인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을 부르고, 또 물건들도 다 바다에 던졌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도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생각했겠죠. 아, 이거는 자연적인 풍랑이 아니구나. 이것은 분명히 신이 진노하신 것이구나. 이것을 깨달았을 거예요. 선장이나 사공들이나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폭풍이 오면 뭔가 징조가 있을 텐데 전혀 그런 것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쳤을 뿐만 아니라 그 위력도 배가 깨질 지경이 되도록 엄청난 폭풍이거든요. 그래서 아, 이것은 자연적인 폭풍이 아니라 신이 내린 재앙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 겁니다.
자, 그러면 문제는 이겁니다. 신이 누구 때문에 화가 났는가? 누구 때문에 이 재앙이 왔는가? 이것이 문제예요. 그래서 제비뽑기를 하는 겁니다. 문제를 알아야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누가 문제인지를 찾으려는 거예요.
그래서 이 풍랑 속에 배가 사정없이 흔들리는데 사람들이 기둥을 잡고, 벽을 잡고 둘러앉아서 제비를 뽑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제비를 뽑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요나가 딱 걸려버렸어요. 아마 사공들도 내심 짐작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혼자 배 밑바닥에서 자고 있으니까, 말은 안 해도 아마 저 사람이 원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딱 뽑힌 거예요. 혹시나가 역시나. 그래서 이제 추궁을 하는 겁니다. 도대체 이게 누구 때문이냐? 너는 생업이 뭐고, 나라는 어디고, 민족은 어디냐? 추궁을 해요.
그러니까 요나가 다 실토를 합니다. 진작에 실토를 할 것이지, 제비가 뽑히니까 이제 말을 해요. 만약에 제비가 안 뽑혔으면 끝까지 말을 안 했을 거 아닙니까? 사람이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얼른 실토를 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을, 끝까지 버티고 있다가 이제서야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정직하게 말을 해야 할 때,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 풍랑이 왔을 때 곧바로 요나가 말을 했다면,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던지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서 물건들을 샀는데, 그걸 다 잃어버렸으니 이제 살아나도 선장이며 사공들이며 다 망한 겁니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죄가 있다면 요나랑 같은 배를 탔다는 게 죄죠. 그 이유만으로 망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나 한 사람으로 인해서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볼 수가 있어요. 여러분, 혹시라도 다른 사람한테 돈 빌린 것 있으면 빨리 갚으세요. 어, 저 사람 나한테 돈 빌려준 것 까먹고 있는 것 같은데? 돈 달라고 할 때까지 버텨 볼까? 안 됩니다. 정직해야죠. 안 그러면 제비뽑기에 뽑혀서 요나처럼 바다에 던져지는 수가 있어요. 정직하게. 신실하게.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나는 정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비에 뽑혔고,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요나가 하는 말을 봐 볼까요? 오늘 본문 9절과 10절인데요.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요나가 세 가지를 말했죠. 첫번째는 그의 출신이고, 두번째는 그가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입니다. 먼저 첫번째로, 요나의 출신은 히브리죠. 히브리 사람. 그리고 요나가 하는 일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자기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어요. 나는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지금 이 말이 요나에게 어울리는 말입니까?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말은 하는데, 지금 그의 모습은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이 아니에요. 세 번째로 한 말에 보면,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였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서로 모순되는 말을 하고 있어요. 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인데, 지금 여호와를 피해서 도망치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분명히 지금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황당했을 겁니다.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신을 경외하는 자가 어떻게 신을 피해서 도망칠 수가 있을까?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 놀라운 것은 요나가 지금 하는 이 말에 어떤 부끄러움이나 수치스러움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불신자들 앞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인데 예배 드리기 싫어서 지금 도망치고 있어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못하죠.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있겠어요? 얼마나 그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말입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요나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여전히 여호와를 경외하고 있거든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이 충만해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상하죠. 하나님을 경외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할 텐데, 요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명령에는 불순종합니다.
이것이 요나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신앙은 있지만, 그 신앙이 삶에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말씀을 믿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지만, 주님처럼 살지 않는 겁니다. 이것이 요나의 현실이었고, 이스라엘 전체의 현실이었습니다.
제사를 열심히 드리고, 절기도 열심히 지키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교만이 가득하고, 그들의 삶은 약하고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고아와 과부를 외면하는 악으로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신앙을 잘 지킨다고 생각해요. 삶에서 전혀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지만 정작 경외하는 자의 삶을 살지 않는, 그런 이중적인 신앙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러한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면, 오늘 그것을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입으로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입술의 고백과 삶이 하나로 일치되는 거룩한 일생을 통하여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