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하나님 중심의 기도

요나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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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욘 2:6-10 “하나님 중심의 기도” 2022. 2. 22 조정수
오늘 본문을 놓고 “하나님 중심의 기도”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요나가 드리는 이 기도에 회개가 없다는 것을 함께 봤었는데요. 요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도망쳤으면, 당연히 회개를 하는 것이 먼저임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왜 회개를 하지 않는가 하면, 자기가 잘못했다는 인식 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잘못한 게 없으니까 회개를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2장 3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하나님이 자기를 바다에 던지셨다고 말을 하죠.
여러분, 하나님이 던지셨습니까? 아니죠. 요나가 사공들에게 나를 던지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요. 그래서 사공들이 바다에 던졌어요. 애초에 요나가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던져질 일도 없었어요. 결국에 바다에 요나를 던진 것은 요나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스스로 바다에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2장 4절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자기 발로 도망쳐놓고, 딴 소리를 하죠. 하나님이 나를 쫓아내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내몬 것 아닙니까? 이게 요나의 생각이에요.
자기 잘못은 없고, 이게 다 하나님 탓이라는 거죠. 그래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생명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이미 시작부터가 잘못된 기도이기 때문에 그 기도의 내용도 사실 올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두 가지가 잘못된 기도예요. 첫째로 회개가 없는 기도이고, 둘째로 ‘나’ 중심의 기도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였어요? “하나님 중심의 기도” 우리가 기도할 때 반드시 그 기도가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예배도 그렇고, 찬양도 그렇고. 뭐든지 하나님 중심이어야 하죠. 그런데 요나의 기도는요. 하나님 중심이 아닙니다. 나 중심이에요.
먼저 한번 오늘 본문에 ‘나’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지 봐 보시겠습니까? 나, 내가, 나의. 이런 말이 6절부터 9절까지 총 10변 나옵니다. 반대로 하나님, 주, 이런 말은 다섯 번이 나와요. 그러면 1절부터 보면 다 해서 몇 개씩 될까요? 나중에 한 번 시간 나실 때 세보세요. 나는 몇 개고, 하나님은 몇 갠지. 나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일차원적으로 본다면, 이것만으로도 기도가 벌써 나 중심이죠. 물론 이런 것만으로 기도가 나 중심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을 봐야죠. 그런데 내용을 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요. 내용을 보면 더 심각합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봐 볼까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요나가 영혼이 피곤할 때 여호와를 생각했습니다. 영혼이 피곤할 때. 여기서 피곤하다는 말은 원어적으로 봤을 때,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탈진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온 몸에 힘이 사라지고, 호흡할 수 있는 힘까지도 없어서 모든 희망이 사라진 상태.
요나가 가라앉았을 때 그런 상태였어요. 그런데 그때 요나가 누구를 생각합니까? 여호와를 생각합니다.
여러분, 요나가 그래도 선지자는 선지자죠. 죽을 위기 속에서 그래도 하나님 여호와를 생각하고, 여호와께 기도를 드려요. 이것은 참 본받을 만 합니다. 우리가 위기 상황에서 다른 무엇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바라봤어요.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것은, 그가 죽을 위기가 닥쳐서야 하나님을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 전에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기회가 수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외면하고 무시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의 자세라고 볼 수가 없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언제라도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 그것을 즉각적으로 들을 수가 있어요. 엄한 데를 보고 있으면 타이밍을 놓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요나는 외면했죠. 심지어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쳤어요. 그리고 뒤쫓아오신 하나님에게서 피하기 위해서 결국에는 스스로 바닷속으로 자신을 던졌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로서의 직무를 버린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바닷속에서 생명을 잃을 위기가 되니까 그제서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 중심의 기도가 아니라 나 중심의 기도를 해요.
8절을 봐 볼까요? 요나 2: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절도 보면요. 요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의 기도가 나 중심의 기도인 이유가 여기 8절과 9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지금 보면 요나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들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죠.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들은 은혜를 저버리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서원을 갚겠습니다. 이렇게 주장을 해요.
그런데 이 기도 속에 너무도 큰 오류가 있습니다. 우선 요나는 자기가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와는 다르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요나도 지금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고 있어요. 그게 뭘까요? 무슨 우상이나 이방 신을 숭상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분명히 요나가 헛된 것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4장에 가서 보면요. 그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데, 그것이 바로 박넝쿨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뜨거운 햇볕에서 보호하시기 위해 박넝쿨이 높이 자라게 하셔서 그늘을 드리워주셨어요. 그리고 다음날 벌레를 예비하셔서 그 벌레로 박넝쿨을 갉아먹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니까 요나가 막 화를 내요. ‘내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이러면서 하나님께 대듭니다.
요나가 이 박넝쿨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죠. 박넝쿨을 하나님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거저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 박넝쿨을 더 소중히 여기고 숭상을 하는 겁니다. 그는 내가 거짓된 것을 숭상하는 자들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 역시도 거짓된 것을 숭상하는 자입니다.
박넝쿨이라고 비유적으로 나오지만, 그 박넝쿨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상징합니다. 나에게 주신 생명, 나에게 주신 건강, 그 은혜가 곧 우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2주 전에 딸을 낳았는데요.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그런데 제가 이 딸에 정신이 팔려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딸이 저에게 우상이 되는 겁니다. 우상이 별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이 곧 우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상에 빠질 수 있어요. 나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어쩌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지금 바라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나의 영혼이 지치고 생명이 끊어질 그 때에 가서야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하나님을 생각하고, 나의 마음을 잡아끄는 모든 것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 중심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올려 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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