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순종의 세 가지 요소

요나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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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요나 2:10-3:4
“순종의 세 가지 요소”
2022. 2. 2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순종의 세 가지 요소”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요나서를 쭉 설교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이 요나서를 볼 때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요나서의 초점이 이스라엘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구원하시려고 요나를 니느웨에 보내시는 게 아니에요. 요나가 니느웨에 가는 것을 도망칠 정도로 싫어하죠. 그런데 그만큼 싫어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순종하는 모습을 요나와 이스라엘에게서 보고 싶으신 거예요.
제가 요나서 1장을 설교할 때 제목이 혹시 기억나십니까? “깨질지라도 순종하라.” 요나가 타고 있는 배가 마치 하나의 인격체인 것처럼 스스로 ‘내가 깨져야겠다’라고 생각을 했죠. 생명이 없는 한낱 미물에 불과한 배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위하여 스스로 깨지려고 하지 않습니까? 사실은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가 이러한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순종이 없다면 제사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은 지금 이 요나와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을 회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겁니다. “정말 가기 싫고, 정말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이러한 자세를 하나님은 바라셨을 거예요.
하지만 요나가 순종하지 않았고, 풍랑 가운데서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내 바닷속으로 던져져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야 하나님께 기도하고, 명령에 순종하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왔죠. 오늘 본문인 2장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지금 보면, 하나님이 물고기에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냥 물고기를 조종하신 게 아닙니다. 말씀을 주셔서 물고기가 순종하게 하신 겁니다.
이 장면 역시도 한낱 미물인 물고기조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도 순종하고 물고기도 순종해요. 그럼 이제 누가 순종해야 할까요? 요나가 순종해야죠. 그래서 요나에게 순종할 기회가 다시 주어집니다.
10절에서는 말씀이 물고기에게 임했다면, 그 바로 밑에. 3장 1절에 요나에게 말씀이 임합니다. 1절을 봐 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을 보니까.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에게 임한 말씀은 처음 임했던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선포하라는 말씀이에요. 처음 임했을 때는 요나가 어떻게 했습니까? 일어나서 욥바로 내려갔죠.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합니까? 일어나서 니느웨로 갑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방향을 이번에는 제대로 찾아서 갔습니다.
여러분, 순종의 첫걸음은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의 첫번째 요소입니다. 방향.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신 방향은 니느웨였어요. 비록 그 전에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 방향을 요나가 향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두 번째 순종의 요소는 뭘까요? 순종의 요소에 대해서 많은 목사님들이 많은 말씀들을 하셨지만, 저는 오늘 이 요나서의 본문에서 우리가 캐치할 수 있는 요소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첫번째는 방향이었구요. 두 번째는, 바로 그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방향을 알기만 하고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순종이 아니죠.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향대로 가야만 순종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 가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교회 가지 않으면 그것은 주일을 지킨 것이 아니죠. 에배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가야 합니다. 행해야 돼요. 이것이 순종의 두 번째 요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두 번째 요소까지는 요나에게 있습니다. 니느웨로 가야 한다는 방향을 알았고, 실제로 니느웨로 갔어요. 두 가지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마지막 세 번째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세 번째가 과연 무엇일까요? 요나가 지키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 세 번째를 한 단어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분량” 여러분, 한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순종의 분량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인잔치 때 항아리의 물을 아구까지 채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채워야 하는 분량이 있습니다. 그 분량은 우리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니느웨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뜬금없이 니느웨가 얼마나 큰지를 설명하는데요. 그 크기가 사흘 동안 걸을 정도로 크다, 라고 설명을 합니다. 왜 갑자기 이 얘기를 할까요? 아무 이유 없이 하는 게 아니죠.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크다는 말은, 그만큼 걸으라는 얘기입니다. 사흘 동안 걸으면서 말씀을 선포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정하신 분량입니다.
그런데 바로 밑에 4절에 보면, 요나가 얼마 동안 외쳤습니까? 4절을 봐 볼까요?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요나가 얼마 동안 외쳤습니까? 하루 동안. 하나님의 분량에서 불과 3분에 1밖에 채우지 않았어요. 사흘을 아구까지 채워야 하는데 반도 못 채웠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요나가 가지지 못한 세 번째 요소입니다. 방향을 알았고, 그 방향을 향하여서 갔지만, 3분의 1밖에 가지 않았습니다. 요나가 외친 그 하루는, 요나 자신이 정한 분량이었습니다. 요나는 생각했겠죠. “내가 할 만큼 했다. 이만큼만 해도 다 한 거다.”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어요. 반도 못 채웠으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예배 드리기 위해서 예배당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제로 예배당에 나왔더라도, 예배가 마칠 때까지 온전히 그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예배를 드렸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주일에 담임목사님이 한참 말씀을 전하고 계신데, 중간에 나가 버리면 그것을 주일성수라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든지 분량이 있습니다. 예배에도 분량이 있습니다. 우리는 11시 20분 전부터 기도하고 찬양을 하죠. 이 기도가 예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의 축도가 예배의 마침입니다. 그 분량을 온전히 채울 때, 우리는 예배를 드렸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분량을 채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만하면 됐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서 4장 13절에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하여, 우리가 스스로 멈추거나 지체하지 말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비록 그 길이 지겹고 지루하고 힘들고, 때로는 낙심이 되는 험난한 길이라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며 그 길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정진하며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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