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Notes
Transcript
<새벽 설교>
요나 4:6-11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2022. 3. 11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이제 요나서 강해 마지막 시간인데요. 요나서를 먼저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일단 요나서는 구약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굉장히 특이하고 독특한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가 감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망을 친다는 점입니다. 구약에서 도망을 치는 선지자가 또 한 명이 있죠. 바로 엘리야인데.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이세벨이 엘리야 너를 반드시 죽이리라, 협박을 하니까 그게 무서워서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도망을 쳐서 어디에 도착을 합니까? 호렙산에 도착을 하죠. 호렙산은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으로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그래서 호렙산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라는 상징적인 장소예요. 엘리야가 그곳으로 도망쳤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러 갔다는 의미이겠죠.
여러분, 엘리야는 이세벨에게서 도망쳐서 하나님을 만나러 호렙산에 갔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어때요? 반대로, 하나님에게서 도망쳐서 다시스로 가려고 했죠. 구약 역사상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친 선지자는 요나가 유일합니다. 참 안 좋은 의미로 대단한 양반이에요. 아무리 그렇다고 하나님 앞에서 도망을 칠 수가 있을까?
두 번째로, 요나서가 독특한 점은요. 요나서의 구조입니다. 요나서의 구조가 상당히 독특해요. 일반적인 선지서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첫번째는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는 내용이 나오구요. 두 번째는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촉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에, 회개하면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내용이 나와요. 이것이 일반적인 선지서의 구조입니다. 죄 고발, 회개 촉구, 회복 약속. 이게 일반적인 구조인데, 요나서는 어느 것 하나 들어 있지 않아요. 완전히 새로운 구조입니다.
먼저 요나서의 첫 부분을 보면,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엉뚱하게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니느웨의 죄를 고발해요. 요나서 1장 2절에 이렇게 말하죠.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는데, 그 악독이 이스라엘의 악독이 아니라 니느웨의 악독입니다. 시작부터가 굉장히 파격적이죠. 마치 하나님의 관심이 이미 이스라엘에서 떠난 것 같은 뉘앙스예요.
또 이뿐 아니라. 회개에 대한 촉구를 해야 하는데, 그 회개 촉구도 어디에다 합니까? 이스라엘이 아니라, 니느웨에 가서 회개 촉구를 해요. 본래는 이스라엘에서 “너희 이스라엘아 너희는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돌아와라!” 이렇게 외쳐야 하는데, 엉뚱하게 니느웨에서 외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특한 점은,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약속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아모스 선지자. 아모스가 기록한 아모스서를 봐 볼까요? 아모스 마지막 장인 9장을 보면 9장 끝부분에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메세지가 있습니다. 아모스 9장 15절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땅에 심으시고, 다시는 뽑히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회복되리라는 약속이에요. 아모스는 이렇게 회복의 메세지를 마지막에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요나서는 그게 없어요. 회복의 메세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오늘 본문 마지막절 11절을 봐 볼까요? 11절을 우리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누구를 아끼겠다고 하십니까? 이스라엘이 아니라, 니느웨. 이스라엘의 원수인 니느웨를 아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역사가 엉뚱하게 니느웨에게 향하는 겁니다.
이것이 요나서에만 있는 가장 독특한 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셔요. 니느웨를 아끼겠다는 말로 끝맺으십니다. 왜요? 왜 니느웨를 아끼십니까?
요나가 박넝쿨 하나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오직 박넝쿨에만 시선을 뺏기고 그것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뜨거운 햇볕에 괴롭지 말라고 박넝쿨을 예비하셨어요. 그랬더니 요나가 좋아하죠. 크게 기뻐하였더니. 얼마나 좋았으면 크게 기뻐하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다음날 그의 감정이 어떻게 변합니까?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셨고, 또 해가 뜰 때에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셔서 요나의 머리에 쪼이셨더니, 요나가 스스로 죽기를 구하며 성을 냅니다.
하나님이 박넝쿨을 주실 때는 크게 기뻐하더니, 그 박넝쿨이 사라지고 뜨거운 동풍이 부니까 돌변해서 다시 성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예비하사, 라는 단어에 잠시 집중을 하면요. 요나서에는 예비하신다는 단어가 총 네 번이 등장을 합니다. 첫번째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고요. 두 번째는 박넝쿨을 예비하셨고, 세 번째는 벌레를 예비하셨고, 마지막 네 번째로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요나를 위하여서 특별히 예비하신 것들이에요. 요나를 구원하시려고 큰 물고기와 박넝쿨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를 받았을 때는 요나의 상태가 괜찮았어요. 물고기를 받았을 때는 그 뱃속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또 박넝쿨을 받았을 때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벌레가 오고, 또 뜨거운 동풍이 오니까 요나의 상태가 어떻습니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죽기를 구하면서 성을 내죠.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똑같은데, 무엇을 주시느냐에 따라서 요나의 상태가 달라집니다. 좋은 것을 주시면 좋아하고요. 안 좋은 것을 주면 안 좋아져요. 요나의 신앙이 1차원적이라는 것이죠.
좋으면 좋고, 안 좋으면 안 좋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여러분, 우리는요. 쓰면 쓸 수록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을 알죠.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를 힘겹게 하고 지치게 만드는 고난일수록 우리의 신앙을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좋은 연단의 과정이라는 것을 압니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도 우리의 머리 위에서 뜨겁게 쪼이고, 또 너무도 매섭게 우리를 때리는 바람이라서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할 때에,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1차원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2차원, 3차원, 육적인 신앙의 차원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 하늘에 소망을 두는 신령한 차원의 신앙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그러한 신령한 신앙의 차원에 이르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니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회복하여 주십니다. 오늘 요나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그 회복하심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니느웨를 향하여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시선은 이스라엘을 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 못 가서 이스라엘은 멸망을 합니다. 오늘 이 요나서의 사건으로부터 약 30년의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아끼신 이 니느웨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옵니다. 거대한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을 쳐서 멸망을 시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박넝쿨만 붙들고 있지 않고, 과감하게 박넝쿨을 버리고, 박넝쿨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께로 시선을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니느웨가 가축들까지도 철저하게 회개하였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회복하심이 이스라엘에 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아끼시고,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니느웨가 멸망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국동제일교회가 철저히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끼심을 받고, 회복의 놀라우신 축복을 받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하나님께서 아끼시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