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능력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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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예레미야 1:4-10
“말씀의 능력”
2022. 3.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말씀의 능력”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예레미야를 택하시고 이제 때가 되어 그를 사용하시려고 부르시는 겁니다.
그런데 5절에 보니까 언제 이미 예레미야를 택하셨어요?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이 이미 예레미야를 엄마 뱃속에 생기기도 전부터 알았고, 태어나기 전에 그를 성별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선지자가 될 운명이었던 것이죠. 싫든 좋든 태어나면 선지자를 해야 돼요.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 생각이고, 예레미야는 생각이 다르죠. 내가 왜 선지자를 하냐? 예레미야는 아나돗 땅에서 아버지가 제사장으로 일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시대가 얼마나 패역하고 혼탁한 시대인지를 잘 알아요. 아, 지금은 말씀이 먹히는 시대가 아니구나. 이미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보고 선지자를 하라니. 자동적으로 거부가 나오죠. 나 못합니다. 지금은 말씀이 통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하나님. 그리고 저는 예루살렘의 사독 게열의 주류 제사장 집안도 아니고, 아나돗 땅의 몰락한 제사장 집안 출신입니다. 내가 말씀을 선포한다고 해서 누가 듣겠습니까? 정치적으로 계산이나 하고, 곧이곧대로 안 들을 겁니다. 나 못합니다.
이렇게 긴 거절의 말을 짧은 문장으로 함축해서 하죠. 6절에 보니까,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함축하고 함축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앞에 먼저 하는 말이 있죠. “슬프도소이다” 이 말을 우리말로는 “슬프도소이다” 이렇게 번역을 했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로 “아하흐” 라는 말입니다. 아하흐. 이 말은 뜻이 있는 말이 아니고, 감탄삽니다. 아하흐~ 이렇게 탄식하는 소리예요. 아하흐~ 우리 말로 하면 “아이고!” “아휴!” 이런 소리죠.
예레미야가 지금 앓는 소리를 하는 겁니다. 아이고~ 아휴~ 이렇게 앓는 소리를 내고 있어요. 그러면서 뒤에 말하는 겁니다. 아하흐~ 나는 아이라서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여러분, 예레미야가 지금 얼마나 하기 싫은지 아시겠죠. 막 앓는 소리를 내면서 못하겠다고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는 겁니다. 나는 너무 어립니다. 말도 못 합니다!
그런데요. 학자들은 예레미야가 이때 당시 최소 17살 이상 됐을 거라고 추측을 합니다. 17살 이상, 아마도 20살쯤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것도 많은 나이는 아니죠. 하지만 이 정도 나이면 충분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많아요. 다윗도 그랬고,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도 십대 후반의 나이였습니다. 사무엘도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까?
또 지금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한 이 시대의 왕인 요시야 왕도 그래요. 여러분, 요시야 왕이 몇 살 때 왕이 된지 아십니까? 요시야 왕은 여덟 살에 왕이 됐어요. 여덟 살이면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뭘 알겠습니까? 그래도 왕의 자리에 올라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니까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예레미야는 그래도 스무살 가까운 나이인데, 충분한 나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레미야가 뒤에 덧붙인 말이 있죠. 나는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나는 아이라서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말을 할 줄 모른다고 변명을 합니다. 과거에 모세도 하나님께 똑같은 변명을 했었죠. 출애굽기 4장 10절에 보면, 모세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이렇게 못하겠다고 변명을 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셔요? 특단의 조치를 내리시죠. 모세 대신 말 잘하는 아론을 같이 보내셔요. 모세 너는 아론에게 할 말을 알려줘라. 그러면 아론이 너의 입을 대신할 것이다. 모세가 말을 잘 못한다니까 아예 말 잘하는 사람을 붙여줘버립니다. 그러니까 더는 변명을 못하고 애굽으로 갈 수밖에 없죠.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예요. 예레미야가 내가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변명을 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9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에다가 말씀을 주시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예레미야가 말을 못한다고 하니까 아예 말씀을 예레미야 입에다가 주십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이 능력을 주신 겁니다.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선포할 수 있도록 그 입에 능력을 주신 거예요.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읊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에게는 아론을 붙여주셨다면, 예레미야에게는 말씀의 능력을 주신 겁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하는 로보트가 아니에요. 자신의 생각, 자신의 감정, 자신의 믿음에 따라 복합적으로 말씀을 정리해서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 그 말씀을 자신의 언어로 변환해서 말하는 거예요.
물론 이렇게 할 때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오류가 생길 수 있죠. 너무 자기 생각이 들어갈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강해서, ‘야, 이건 좀 아닌데..’ 자기 맘대로 순화시켜서 말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또는 반대로,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말씀을 다 전하기가 싫어서 줄이고 줄여서 대충 전하는 수도 있을 거예요. 요나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죠.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고 하셨는데, 니느웨에 가서 딱 다섯 마디만 외쳤지 않습니까?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이 말만 외치고 왔어요.
이런 경우처럼, 선지자의 성향에 따라서 선포되는 말씀의 뉘앙스라든지 분위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길게 하든, 짧게 하든, 정성을 다해서 하든, 대충 하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는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요. 오늘 여기 모인 우리 성도님들도 저를 신뢰해서 오신 것이 아니죠.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계신 것 아닙니까?
설교자가 아니라, 설교자를 통해서 선포되는 그 말씀을 신뢰하고, 사모하기 때문에 이곳에 모이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아무 능력이 없어요. 설교자는 그냥 전달자일 뿐입니다.
오직 말씀에 능력이 있고, 말씀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단지 아나돗 땅의 몰락한 제사장의 아들일 뿐이에요. 출신성분 자체가 내세울 게 없어요. 그렇다고 연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을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에요. 뭐 하나 뛰어난 구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내로라하는 제사장들과 정치인들 앞에서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능력에 힘입어서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능력이 없지마는,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므로, 말씀에 힘입어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8절 말씀과 같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8절 말씀을 같이 읽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8절을 같이 읽습니다. 시작,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아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그 능력의 말씀을 붙잡고, 오늘 하루 담대히 살아가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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