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인가?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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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예레미야 2:4-8
“누구의 잘못인가?”
2022. 4. 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누구의 잘못인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예레미야 강해 여섯 번째 시간인데요.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이 사랑스러웠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신 장면을 함께 나눴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운 그 광야에서 백성들이 지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과 가까웠던 그 시절을 하나님이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억 뒤에 오늘 이제 무슨 내용이 시작됩니까?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는 내용이 시작됩니다. 다른 누가 고발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직접 그 죄를 고발하십니다.
그토록이나 예쁘고 사랑스럽던 백성들이 지금은 죄악으로 가득하죠. 그 죄를 하나씩 말씀하시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내 사랑하는 자녀가 왜 이렇게 돼버렸나?
여러분, 요새 금쪽같은 내새끼 프로그램 많이들 보시죠? 오은영 박사님 나오셔서 아이들 코칭하고 고쳐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그런데 거기 보면, 자녀 잘못은 90프로가 누구 책임입니까? 부모 책임이죠. 부모가 자녀를 잘 못 키운 거예요. 너무 방치한다든지, 너무 오냐오냐 한다든지, 어쨌든 부모 잘못이 큽니다.
하나님도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혹시 내 잘못인가? 질문을 하셔요. 5절을 봐 볼까요?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이렇게 질문을 하십니다. 너희 조상들이 도대체 왜 나를 멀리 했을까? 혹시 나에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아서 그랬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그랬을까?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셨으면 이런 질문까지 하실까요?
하나님이 백성들을 인도하시면서 가만히 방치하지도 않으셨고, 너무 속박하지도 않으셨어요. 때로는 따스하게 보듬으시고, 또 때로는 책망과 훈계로, 또 때로는 따끔한 회초리로 최상의 양육을 하셨습니다. 오은영 박사님보다 레벨이 높으시죠. 최상의 전문 양육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커서 보니까 완전히 불량한 인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누구 자못일까요? 하나님 잘못일까요? 아니면 백성들 잘못일까요? 오늘 말씀 제목처럼,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여러분, 누구 잘못입니까? 당연히 백성들 잘못이죠.
하나님은 잘못하신 것이 없어요. 금쪽같은 내새끼에서는 부모들이 잘못을 했지만, 하나님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 죽어가던 백성들을 구출해 내셨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배가 고프면 만나를 주시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메추라기도 주시고, 반석에서 물도 내주시고, 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하셨잖아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모든 것을 다 주셨어요. 백성들이 하나님께 돈을 드린 것도 아니고, 그냥 주시는 대로 받은 것뿐이죠. 그런데 받은 그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아니라 헛된 것에다가 감사를 했습니다.
5절 끝에 보세요.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생명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구원 주신 이도 하나님이신데, 그 받은 것을 다 헛된 우상들이 준 것으로 착각하고 거기 가서 헛되이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밑에 6절에 보면, 더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는 백성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과거에는 무슨 일만 있으면 하나님부터 찾았던 백성들인데, 지금은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6절을 말씀을 봐 볼까요? 6절을 우리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아멘.
과거에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이토록 찾았습니다.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 광야와 사막과 온갖 험한 곳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찾지 않죠. 왜 찾지 않습니까?
6절을 잘 봐 보세요.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광야에 있을 때, 구덩이에 있을 때, 사망의 그늘진 땅에 있을 때. 다시 말해서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을 때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풍족하죠. 밑에 7절을 보면요, 백성들이 지금은 아주 살만 합니다.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보세요.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풍족한 복을 주셨거든요. 그런데 그 풍족함이 젖어드니까 백성들이 어떻게 돌변합니까? 7절 후반절에 보니까,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백성들이 그 풍족함에 젖어서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더럽고 역겨운 것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무엇으로 더럽게 했을까요? 우상으로 더럽게 만든 겁니다. 가나안 민족의 우상들과 음란한 문화를 가져와서 하나님의 기업을 더럽힌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8절에 또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일반 백성들이야 뭘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 쳐도, 제사장들은 그러면 안 되죠. 또 율법을 다루는 자들과 관리들, 선지자들. 이 사람들은 그래도 민족의 리더들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되는데, 하나도 다를 것이 없어요. 똑같습니다.
제사장들이라도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인데, 제사장들도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해요. 관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백성들의 관리로 세워주셨으면, 하나님께 충성을 해야 되는데 하나님께 반역을 해요. 그리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말씀을 선포합니다.
아주 총체적 난국입니다. 총체적 난국.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감이 안 와요. 암세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퍼져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고쳐야 될지 모르겠어요.
뇌에도 아메포가 있고, 심장에도 있고, 허파에도 있고, 하다못해 새끼 발가락에까지 있어요. 한시바삐 수술을 해야 살 텐데, 전체적으로 시급하지 않은 데가 없으니까 모든 부위를 다 동시에 수술을 해야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수술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이? 죽겠죠. 그런데 그렇다고 가만히 놔둘 수도 없어요. 가만히 놔둬도 죽는 것은 마찬가집니다.
수술을 하든지 가만히 두든지. 하나님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수술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메스를 드셨어요.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암세포를 제거하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 수술이 무엇입니까? 심판이죠.
이 백성을 바벨론이라고 하는 메스로 쪼개고 갈라서 아예 체질을 바꾸기로 하셨습니다. 물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유다 민족은 멸망을 하게 됩니다. 사망해요. 그러나 죽는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찍이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예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사야 6장 13절에 심판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6장 13절에,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혜파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아멘.
이사야는 예레미야보다 100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미 100년 전에 예언을 했어요.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그루터기가 바로 거룩한 씨다.
거룩한 씨가 무엇입니까? 새롭게 싹을 틔울 수 있는 회복의 소망입니다. 멸망의 심판이 오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반드시 회복의 씨앗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에서 모든 암세포가 사라지고 나면, 모든 우상과 헛된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그 육신이 다시 생명을 얻고 새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판의 진정한 뜻입니다. 심판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입니다. 물론 최선은 미리미리 검진을 받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균형잡힌 식사를 통해서 몸을 잘 관리해야죠. 암세포도 조기에 발견하면 간단한 수술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의 상태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혹시 내가 헛된 것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지, 신앙을 점검하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고,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통해서 건강한 영의 체질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래야 영의 수술대에 오르지 않아요. 이스라엘은 그 수술대에 이제 올라갔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하나님이 수술을 시작하셔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수술 받지 맙시다. 평소에 신앙 관리 잘해서, 건강한 영으로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행복하고 평안한 인생길을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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