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하나님

요나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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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설교>
요나 4:1-4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하나님”
2022. 3. 3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분이신 줄로 믿으십니까? 아멘. 그 크신 은혜와 자비로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로 믿으십니까? 여러분, 그러면 하나님께를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의 원수도 사랑하시는 줄로 믿으십니까?
우리가 이 질문에는 아멘을 하기가 쉽지 않죠. 나의 원수들,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비난하는 자들이 그냥 다 망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그들까지도 사랑하셔요. 오히려 어쩔 때 보면 더 복을 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원수들의 자녀가 형통하는 것 같은 배 아픈 모습을 보게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이 내 원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인정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요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하나님이 나의 원수를 사랑하실 수가 있을까? 어떻게 우리 민족이 아니라 다른 민족, 그것도 원수의 나라를 사랑하실 수가 있을까? 요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 요나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요나의 마음 상태가 매우 안 좋습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용납하신다는 사실이 매우 싫고 성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2절에서 요나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죠. 뭐라고 기도를 합니까?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지금 보면 요나가 하나님 앞에서 도망친 이유를 자기 입으로 실토를 합니다. 그런데 그 도망친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기 때문에 도망을 쳤다고 말해요.
여러분, 이것이 도망을 칠 이유가 됩니까? 하나님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분이라면, 우리가 그 앞에서 할렐루야 찬송을 해도 모자랄 판에, 도망을 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일까요?
그런데 요나는 도망을 칩니다. 왜요? 하나님의 그 은혜와 자비가 우리 이스라엘에게만 베풀어져야 하는데, 원수 니느웨에게 베풀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도망을 친 것이죠.
여러분, 요나서를 자세히 보면요. 요나의 심리상태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오늘 본문에서 보는 거처럼 화를 내는 상태이고, 또 하나는 감사를 하는 상태입니다. 감사는 언제 했습니까? 2장에서 했죠. 물고기 뱃속에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게 감사를 드렸어요. 요나서 2장 9절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나에게 베풀어지니까, 그때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합니다. 역시 하나님,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나를 구원하시는군요. 감사합니다. 감사 기도를 드렸어요.
그런데 그 은혜와 자비가 니느웨를 향하니까 어떻게 돌변합니까? 매우 싫어하고 성을 내는 악한 심령으로 돌변해요. 이것이 요나의 이중성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의 이중성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만, 우리 민족에게만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기를 원해요. 하나님의 축복, 형통, 건강, 물질, 구원. 하여튼 좋은 건 무조건 나에게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반대로 심판, 멸망, 재앙. 이런 나쁜 것은 무조건 원수에게 내리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이중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중성을 깨트리기 위해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고유의 권한이죠. 우리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가 없어요. 왜 나만 사랑하지 않으시고, 나를 못살게 구는 저 사람도 사랑하실까? 따질 수가 없어요.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겁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죠.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전혀 만족함을 모르고, 물이 없다고 성을 내고, 먹을 것이 없다고 성을 내고, 또 고기가 없다고 성을 냅니다. 그리고 이제는 원수를 사랑한다고 또 성을 내죠.
얼마나 크게 성이 났으면 심지어 내가 죽는 것이 낫겠다고 나를 죽여달라고까지 말을 해요. 오늘 본문 3절을 봐 볼까요?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나를 죽여 주소서. 이것이 선지자가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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