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기에 좋았더라(3) 땅, 하나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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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땅에 머물러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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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하나님의 것

성경은 온통 땅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땅과 하늘과 바다를 만드셨고, 그중에 에덴이라는 한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땅 위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각기 지음받은 대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반역한 인간은 그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땅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서 그들이 살고 있는 땅 마저 망가뜨렸습니다. 결국 온 땅과 모든 생명체가 인간과 함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로 다시 시작된 인류도 바벨탑 사건으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고 흩어졌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던 사람들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가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시작하십니다. 그에게 약속하신 것은 바로 땅과 자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에덴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애굽을 떠났고 마침내 그 땅을 차지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땅을 또다시 잃어버리게 됩니다. 구약성경은 그렇게 끝납니다.
신약성경에서 약속의 땅은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언약의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후손, 새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사람들은 예언자들이 꿈꾸고 소망했던 새로운 약속의 땅을 향해 새로운 모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새로운 공동체(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공동체에 속한 우리들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어 장차 오게 될 새 하늘과 새 땅, 약속의 땅을 미리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만을 위한 사명이 아닙니다. 온 세상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꿈꾸며 살아내야 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상, 그리고 하나님과 세상이 서로 사랑하고 돕고 배려하며 완전히 하나 됨을 이루는 세상을 소망합니다.

땅에 속한 인간

흙으로 지어진 존재, 흙에서 살아야하는 존재, 흙을 기반으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존재.
나그네 인생 - 잠시 동안 주어진 땅에서 머무는 인생
오늘 본문으로 가봅시다.
예레미야는 고향을 떠나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빨리 돌아올 것만 기다리지 말고 오히려 그 땅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을 살라고 요구합니다(렘 29:4~7). 내가 선택한 땅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허락된 땅에서 뿌리를 내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땅, 환경에 뿌리를 내리려는 마음이 있어야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렘 29:4~7

약속의 땅을 잃어버리고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살았을때 이야기

예레미야 27장에서 주변 나라에서 예루살렘에 모인 대표들은 반역을 꾀했고 선지자들은 바벨론으로부터의 빠른 귀환을 예언했다(29장). 선지자 하나냐와 같이(28장) 대표들은 바벨론 포로를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반역의 목소리가 있었고 유다와 바벨론에 불안이 있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일관적이다. ‘바벨론의 통치에 항복하라 그리고 바벨론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라.’ 오직 외국에서 ‘세우고 심는 것’을 통해서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10–14절에서 읽고 좀 더 확장된 내용을 예레미야 30–33장에서 읽는다.

선택된 그 곳, 지금 거하고 있는 그 곳에 뿌리를 내려라. 비록 그 곳이 내가 선택한 곳이 아니로, 내 마음에 드는 곳이 아니라도...

틴데일 구약주석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주석)
〈4–7〉 이어지는 명령들은 예레미야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가리키는 칭호인 ‘만군의 여호와’(NRSV) 혹은 전능하신 여호와(NIV, TNIV)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또한 외국 나라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유다에도 예루살렘에도 한 장소에 묶여 있지 않으신다. 백성들에게 명령이 주어진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자녀들은 또한 결혼해야 한다. 그래서 손자가 있을 것이다. 바벨론에 남은 자들은 수가 증가해야지 감소해서는 안 된다.
명령형들은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향에 있는 것처럼 삶을 영위하라! 그러나 삶의 장소는 외국이며, 심지어 이방 나라이다.
더구나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자신들의 원수인 바벨론(7절), 곧 세속적인 힘과 우상의 궁극적인 예인 바벨론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이 주어진다(렘 51–52장; 마 5:44을 보라)!
이 명령이 암시하는 바는 백성들이 약속의 땅 밖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상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기도를 들으시지 않으신다. 더구나 만일 바벨론에 평강과 번영이 있다면 포로들 또한 이 안정된 사회로부터 이익을 얻을 것이다(딤전 2:1–2 참조).
손자들을 갖는다는 전망은 바벨론 포로가 곧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장 후반에 언급된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와 대조된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가 삼대의 기간인 70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선포한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들을 2년 안에 되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선포하는 하나냐의 메시지와 대조된다(28:2–4).
주어진 자리에서 피조물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라. 이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집이다. 이 집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틴데일 구약주석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의미)
바벨론에 사는 포로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들은 원수의 땅에서 정착해야 한다는 것이며,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포로는 70년간 지속될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 자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이들에게 주실 메시지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 이것을 증명한다.
분명히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이시고 한 땅이나 한 장소에 제한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심지어 거짓 신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주장되는 땅에서도 들려질 수 있다. 좀 더 낙천적인 메시지를 주는 듯이 보이는 거짓 선지자들은 잘못이었다. 이들은 단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심판의 깊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예레미야 1:10–11에서 언급된 ‘세우고,’ ‘심고’ 하는 일은 기대하지 않은 환경(바벨론) 속에서 일어날 것이고, 새 삶이 나타날 것이다.
희망과 미래라는 말(11절)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영원히 거절하셨다고 생각한 포로들의 귀에는 음악 소리같이 들렸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원칙

1. 지속 가능성(신 22:6~7)

어미 새와 새끼 새가 함께 있을 때, 어미 새를 잡지 말고 새끼 새만 잡으라는 명령. 얼핏 잔인한 것 처럼 여겨지지만, 생명의 지속성을 놓고 보면 어미를 살려두는 것이 마땅하다. 어미가 사라진 새끼는 결국 죽고 말 것이다. 그러니 둘 다 죽게 하기 보다는 다시 생명을 낳을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중요하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피조세계를 지으셨고 유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 창조세계가 지속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본분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하면서 우리의 먹거리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절제(레 19:9~10)

모퉁이 남기기를 통해 가난한 이웃과 동물들을 배려하는 삶은 열매를 나 혼자 독점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땀 흘려 수고하여 거둔 열매지만, 그것은 나 혼자서 이룬 업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이 마음을 두고 있을 대상들,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 힘 없는 동물들을 위해서 남겨두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남기는 모퉁이는 어떤 것이 있는가?
모퉁이를 남기는 삶은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는 분임을 믿는 믿음이다. 땅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이 땅의 자원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3. 안식(레 25:2~7)

안식년 제도를 통해 땅을 쉬게 하라. 안식년은 사람이 쉬는 때가 아니다. 땅이 쉬는 것이 목적이다. 땅을 쉬게 함으로써 땅이 원래 가진 생산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땅도 쉼이 없다면 고갈하고 고통당한다. 안식년은 땅을 하나님과 관계 맺는 대상으로 여긴다. 땅이 하나님 앞에서 안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땅이 자연스럽게 내어놓는 식물과 열매는 주인 만이 아니라 모든 가족, 노예, 가축, 들짐승이 먹도록 놓아두어야 했다(레위기는 주인과 가족도 포함하지만, 출애굽기는 가난한 사람과 들짐승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안식년에는 모든 빚이 탕감되어야 했다. 빚을 탕감해줌으로써 부득이하게 빚을 지고 노예가 되었던 사람들이 다시 한 인간으로서 존귀함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된다. 두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한 채권자에게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분명하게 고백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한다. 이것을 탕감해주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지실 것임을 믿으로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로기 70년을 땅 입장에서 바라보는 분문이 있다. 예레미야 34:8~11에 의하면, 초기에는 안식년을 지켰지만, 이후에 그것을 지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시기는 바로 그 안식년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벌이라는 것이다.
Lexham 성경사전 (땅의 안식과 추방)
성경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역사의 어느 시점에 실제로 안식년을 준수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지만, 예레미야 34:8–10에 나오는 시드기야의 히브리인 노예 해방은 그 관습을 도입하려는 부분적인 시도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성경 내러티브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종들을 놓아주는 일에 불순종했고 거부했다는 점에 주목하라(렘 34:11). 이러한 무시한 결과로,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이 무시했던 안식년을 그 땅이 모두 지키는 만큼의 시간 동안 그 땅에서 추방되었다(레 26:34–35. 비교, 대하 36:21). 추방에서 돌아온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종들을 풀어주고 땅을 쉬게 하겠다고 맹세했다(느 10:31).
땅의 안식을 허락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억지로 땅의 안식을 허락하셨다는 해석이다. 이스라엘이 황폐화한 결과 땅이 오히려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예레미야는 그렇게 해석한다.
땅도 안식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 앞에서 땅도 거룩해야 한다. 우리 인간이 땅이 안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땅과 하늘과 바다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땅, 창조 세계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추구하느라 온 땅과 세상을 망가뜨리는 삶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창조 세계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나오는 자원으로 이웃을 돌보며 생명을 지키는 데 사용하게 하소서. 땅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안식을 취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소서. 온 땅과 만물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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