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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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5:20-25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백성”
2022. 6. 24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백성”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21절 말씀을 봐 볼까요?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어리석은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리석고 지각이 없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인 장애인이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명령하셔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듣겠습니까? 귀머거리 앞에서 아무리 말해봐야 어떻게 듣겠어요?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런데 그것을 지금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셔요. 듣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하십니다.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불합리하게 보이십니까? 듣지도 못하는데 들으라고 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유다 백성들은 영적인 장애인들입니다. 영의 귀가 닫힌 거예요. 육신의 귀는 멀쩡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요. 다만, 그들의 영의 귀가 닫혀 있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하는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뿐이죠.
여러분, 장애인은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고를 당해서 후천적으로 육신에 장애가 생기거나, 아니면 유전적인 문제로 인해서 선천적으로 육체적인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장애인이죠. 장애인 중에 아무도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없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청각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청각장애인이 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도 장애인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차원으로 오면, 문제가 달라져요. 육신의 장애인이 되는 것은 싫어하지만, 영적인 장애인이 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에요. 자기들 스스로 영적 장애인이 됐어요. 충분히 볼 수 있음에도 스스로 눈을 가리고, 들을 수 있음에도 귀를 가려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자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놀라운 이적이 일어나면 그것을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있죠.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보지 않습니다. 그냥 놀라는 걸로 끝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교훈을 얻거나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갖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지자들의 말씀을 육신의 귀로는 들어도, 한 귀로 흘려버리거나 혹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들어요.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열심히 들어도, 참된 선지자들의 말은 거부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영적 장애인입니다. 본다고 다 보는 게 아니에요. 듣는다고 다 듣는 게 아닙니다.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않는다면 그가 바로 장애인입니다.
복음서에도 보면, 많은 장애인들이 나오는데요. 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앉은뱅이들이 나오죠. 그 사람들은 육신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는 정상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한눈에 알아보고,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을 향하여 귀를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하여 육신의 나음을 얻게 됐어요.
대표적으로 나병환자가 있죠. 마태복음 8장에 보면,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 절하며 “주여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고백하였더니, 그의 육신이 깨끗하여졌습니다. 그의 영의 눈과 영의 귀가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그렇지를 못해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에 어떻게 되는가 하면,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들어야 하나님을 경외함이 마음에 생겨날 텐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니까 경외가 없는 겁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22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앞에서 떨지 않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어찌하여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면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모래로 바다에 한계를 정해놓으셨는데, 그 한계를 파도가 넘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죠. 파도가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선을 넘지 않아요.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요, 그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버립니다.
23절을 봐 볼까요? 23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유다는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파도도 넘지 못하는 선을 넘어버려요. 너무나도 어리석게, 그것이 죽는 길인 줄도 모르고 선을 넘어가버립니다.
왜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서서, 이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었어요? 그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볼 수 있어야 돼요. 들을 수 있어야 됩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장애인이 됐어요. 보려고 하면 충분히 볼 수 있어요. 들으려고 하면 들을 수 있어요. 영적 장애는 불치병이 아닙니다. 충분히 고칠 수 있어요.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말씀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나의 시선을 세상에서 조금만 옮기면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거창한 일이 아니에요. 시선을 1도만 틀면 됩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던 시선을 1도만 옆으로 돌리면 바로 거기에 십자가가 있어요. 나를 위하여 지신 그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나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그러지 못했어요. 거짓 우상들과 거짓 예언에 온 정신을 빼앗겨서 그것만 보고 그것만 들었습니다. 치료할 수 있음에도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그 분을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영의 눈으로 볼 수 있어요. 그 분이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 나에게 맡기시는 사명, 나를 통하여 이루시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가 체험하며 느낄 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들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우리 주님을 보고 듣고, 기쁨으로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