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을 당할 때에 누가 나를 구원할까?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8 views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렘 2:26-28
“환난을 당할 때에 누가 나를 구원할까?”
2022. 4. 26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환난을 당할 때에 누가 나를 구원할까?”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누가 나를 구원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지극한 상식이죠. 그런데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는 유다 백성들이 모르고 있어요. 누가 우리를 구원하랴? 백성들은 하나님에게서 구원이 온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들, 이방 신들에게서 구원이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무런 미련 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나라들, 애굽과 앗수르를 섬기고, 그 나라들이 믿는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어요. 왜 죄책감이 없겠습니까? 잘못을 했다는 인식조차 없기 때문에 죄책감이 없는 것이죠. 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요. 내가 뭘 잘못했냐?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잘못을 하고 있으면서도 잘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없어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죄를 범했으면서도 그게 죄라고 생각을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요. 2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백성들이 뭘 하고 있습니까? 나무를 향하여 아버지라 말하고,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고 말을 하고 있죠. 이것이 백성들이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이유입니다. 우상을 아버지로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는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겁니다. 나무로 만든 우상, 돌로 만든 우상. 이것들이 내 아버지고, 진정으로 나를 구원하는 구원자라고 생각하니까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거예요. 하나님이야 어찌됐든 우상이 더 중요하고, 우상이 인생의 최우선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우상을 믿고 섬기다가도 환난을 당할 때는 싹 돌변해요. 27절 후반절에 다시 보니까 환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여러분, 이것이 유다의 현실입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다가 필요할 때만 찾으면서 굽신거리는, 이것이 유다의 현실이에요. 아니, 우상이 아버지면 우상에게 도와달라고 할 것이지, 그럴 때는 꼭 하나님을 찾아요.
하나님을 무시할 때는 언제고, 왜 뒤늦게 하나님을 찾습니까? 여러분, 이것은요. 유다 백성들도 사실은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안다는 것을 뜻합니다. 백성들도 알아요. 환난 때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알면서도 하나님을 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의 뿔이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평소에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따른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왜 알면서도 죄를 범할까요? 그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우상을 따르는 것이 더 재밌고, 흥분 되고,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기에도 편하고, 또 돈이 되니까 우상을 따르는 거예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물을 마시기 위해서 애굽으로 가고 앗수르로 가고 이방 신들에게 가잖아요. 거기에서 얻어지는 한 방울의 물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상을 따를 때 주어지는 그 한 방울의 유익을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평상시에는 살다가 정작 환난이 닥치면, 그때서야 하나님을 찾아요. 한 방울의 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일이 닥치면, 그때서야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면서 백성들을 돌보셨기 때문에 그것이 통했죠. 언제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용서하고 구원해주시니까 계속 그렇게 사는 겁니다. 하나님이 또 구원해주시겠지. 하나님이 또 해결해 주시겠지. 그런 마음이 유다에 가득한 겁니다.
그러나 이제 더는 구원이 없죠. 하나님이 이제는 더이상 참지 않으십니다. 북이스라엘도 그래서 멸망했잖아요? 하나님이 진노의 불을 내리셔서 깡그리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남유다의 차례가 된 겁니다. 바벨론이라고 하는 강대한 심판의 도구를 통해서 멸망하는 차례가 온 거예요.
오늘 본문 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28절을 우리가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하나님께서 이제 유다를 포기하셨어요. 그래서 이제는 더이상 내가 너를 구원할 것이 아니라, 네가 믿는 너의 신들이나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는 신들이 있지 않냐? 그 신들이나 찾을 것이지 나는 왜 찾아? 이런 말씀이에요.
아무 것도 선한 것이 없고, 아무 공로도 없는 백성들을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으시고 돌봐 주셨는데, 이제는 손에서 놓아 버리십니다.
여러분, 심판은 멸망을 당하는 것이 심판이 아니에요. 진정한 심판은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는 것이 진정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손에서 놓아버리시는 것, 하나님의 내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는 것, 나를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무서운 심판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 심판을 당했어요. 아직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심판 당한 겁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어요. 너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이제는 나를 찾지 말고 너의 신들을 찾으라. 이것이 그들을 버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보다 무서운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지 않으시는 것보다 처참한 일은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예배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기도해도 듣지 않으시고, 예배해도 보지 않으신다면 우리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에야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를 비출 때에야 우리 인생은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나무도 아니고 돌도 아니고, 세상의 그 어떤 보화도 아닙니다. 오직 나를 살리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줄로 믿습니다.
환난의 때에 우리를 구하실 분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유다 백성들도 그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환난의 때에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난의 때뿐만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변함없이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신실한 자녀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