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심판 예언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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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15-18
“세 번째 심판 예언”
2022. 5. 31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세 번째 심판 예언”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예레미야의 세 가지 심판 예언을 보고 있는데요. 첫번째와 두번째 예언을 봤고, 이제 세번째 예언을 오늘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어찌됐든 유다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리기 위한 그 방법이 아이러니하게도 심판에 대한 예언이에요. 너희가 심판을 당할 것이다. 너희가 멸망을 당할 것이다. 계속해서 부정적이고 안 좋은 말만 합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데, 정작 백성들은 그 말을 듣기를 싫어하죠. 네가 뭔데 우리가 망한다고 계속 재수 없는 소리를 하냐? 너 매국노 아니냐? 그러면서 핍박을 합니다.
예레미야 입장에서는 답답해요. 제발 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를 해야 살 텐데, 아무리 외쳐도 듣지를 않아요.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에 귀를 기울이고, 아무런 위기의식 없이 살아갑니다.
예레미야 눈에는 앞으로 다가올 재앙이 보이거든요. 북방에서 이미 사자가 수풀을 나왔어요. 그리고 이제 뜨거운 바람 같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유다 땅에 재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듣지 않지만, 그래도 예레미야는 다시 한 번 심판 예언으로써 백성들에게 경고를 합니다. 한 번 해서 안 되고, 두 번 해서 안 되면, 세 번이라도. 경고를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세 번째 예언인데요.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이렇게 예언을 시작합니다.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지금 보면, 경보가 발령이 됐어요.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는데, 이 소리는 적이 쳐들어왔다는 경보입니다. 북방에서 적군이 이제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뜻하는 것이죠. 지도상에 보면, 단 지파는 어디 있냐면, 유다 바로 위에 있습니다. 나라가 북과 남으로 분열이 될 때, 단 지파는 여로보암을 새로운 왕으로 모시면서 북이스라엘이 됐죠. 북이스라엘의 가장 남쪽, 남유다와 붙어 있어요. 남유다의 바로 위에 있는 단에서 경보가 발령이 됐습니다.
이제 정말로 재앙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15절을 이어서 보면,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데요. 에브라임은 단 지파 바로 옆에 있습니다. 단 지파가 왼쪽에 있고, 바로 오른쪽에 에브라임이 있어요. 그리고 그 밑에 유다가 있습니다.
단에서 먼저 경보를 발령하고, 곧바로 뒤이어서 에브라임에서 또다시 경보를 발령합니다. 이는 곧 재앙이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단에서 먼저 재앙을 발견했고, 이어서 에브라임도 발견을 했어요. 그래서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조금만 있으면 유다에서도 보이겠죠. 그런데 보일 정도로 가까이 온다면, 그때는 이미 늦어요.
13절에서 우리가 봤던 것처럼, 적군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릅니다. 물론 정말로 독수리보다 빠를 수는 없겠지만, 독수리에 비유할 정도로 말들이 굉장히 빠르게 달린다는 겁니다. 그토록 빠르게 달려오기 때문에, 눈에 보일 정도면, 이미 도망치기에는 늦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들이닥쳐요.
자, 그런데 그토록 무섭게 달려오는 적군이 유다에 쳐들어오면 어떤 행동을 합니까? 오자마자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니에요. 17절에 보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싼다고 말씀합니다. 17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17절 시작,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바벨론 군대가 굉장히 교활합니다. 군대가 몰려와서 바로 침공을 하는 게 아니라, 예루살렘을 포위를 해요. 그리고 가만히 기다립니다. 가만히 기다리면 성 안에 먹을 것이 떨어지고 하나 둘 굶어 죽지 않겠습니까? 그냥 밖에서 포위만 하고 있으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기는 거예요.
실제로 나중에 바벨론 군대가 와서 1년 6개월 동안 포위를 합니다. 그리고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예루살렘을 무너트리고 멸망을 시킵니다. 실제 역사예요. 그런데 그 실제 역사를 지금 예레미야가 30년이나 일찍 예언을 하는 겁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어요. 여기에는 어떤 과장이나 거짓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오직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백성들은 어떻게 들을까요? 거짓으로 듣겠죠. 지금 얼마나 평안하고 살기 좋은데, 혼자서 망한다고 난리를 치니까, 관심 끌려고 일부러 헛소리를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예레미야 강해를 처음 시작하면서 예레미야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었죠? 예레미야가 어떤 인물입니까?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이잖아요. 아나돗은 정치적으로 볼 때 정치적 유배집니다. 다윗 왕 때 이제 다윗이 늙어서 후계를 정해야 하는데, 이 당시에 후계자가 두 명이 있었어요. 솔로몬과 아도니야 두 사람이었습니다.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켰다가 죽었고, 또 다른 아들들도 이런저런 일로 다 죽었거든요. 그래서 딱 두 아들이 남았습니다. 이 때 사실 아도니야가 더 차기 대권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하들이 아도니야 측에 붙었는데, 이때 제사장 아비아달도 아도니야를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왕이 됐어요? 솔로몬이 왕이 됐죠.
그래서 아도니야를 지지했던 아비아달은 좌천되어서 고향인 아나돗 땅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래서 아나돗이 정치적 유배지의 상징이 되었어요. 그런데 예레미야가 바로 이 아나돗 출신입니다. 더구나 제사장의 아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볼 때 예레미야는, 몰락한 제사장 가문에서 어떻게든 출세 한 번 해보겠다고 막 헛소리를 하면서 인지도를 높여보려고 하는 거짓 선지자로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진실을 외치고 떠들어도 귀담아 듣지 않는 거예요.
요새 시의원이다 시장이다 해서 곳곳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인사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귀 담아 듣는 사람이 있습니까? 팻말도 들고, 무슨 무슨 일을 하겠다고 써있는데, 제대로 보지도 않아요. 어차피 표 하나 더 얻겠다고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아니까 관심을 안 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예레미야가 하는 말과 행동이 백성들에게는 표 하나 얻어보겠다고 가짜 공약을 남발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무시하고, 또 때로는 선을 넘는 말을 한다 싶으면 핍박을 하는 겁니다.
그런 억울한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오늘도 호수에 돌을 던지는 심정으로 외치고 또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호수에 돌을 던져봐야 한 번 퐁당 하고 말죠. 물 몇 방울 튀고 끝이에요. 금방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잠잠해지고 맙니다.
여러분, 어쩌면 신앙생활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열심히 주일을 지키고, 새벽을 지키고, 보지 않아도 될 손해를 보면서 나의 믿음을 지키는 생활이, 그냥 막연히 나 혼자만의 발버둥으로 여겨질 때가 있을 수 있어요. 10년, 20년. 열심히 신앙생활 했는데, 실제적으로 내 삶이 얼마나 변화되었나? 그동안 쌓은 기도는 얼마나 응답이 있었나?
호수에 돌은 많이 던진 것 같은데, 그 돌이 다 어디로 가 버렸나? 퐁당퐁당 몇 번 물만 튀기고 아무런 변화도 없잖아요. 그래서 때로는 낙심이 되고, 신앙생활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느꼈을 외로움과 허무함을 오늘날에 우리도 동일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던진 돌멩이가 호수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호수 표면은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우리가 던진 돌멩이,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에요. 착실하게 쌓이고 있습니다.
기도만 그럴까요? 우리의 섬김과 수고와 헌신, 또 정직함으로 보는 손해와 주를 위하여 포기한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가 잠을 자면 한 시간 두 시간 더 잘 수 있죠. 세상의 관점으로 본다면 육체가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새벽예배 드리는데 허비한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비한 게 아니에요. 쌓은 겁니다. 어디에요? 하늘에.
우리가 드리는 시간과 수고와 섬김,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버려지지 않고 다 하늘에 쌓여지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당장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오늘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쌓인다는 믿음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아니 수십 번이라 할지라도 외치고 선포하는 예레미야와 같이 뚝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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