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않으시는 하나님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11:9-17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
2022. 10. 11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11장을 계속해서 보면서, 언약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죠. 그런데 그 언약을 백성들이 제대로 지키지 않고, 계속해서 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두 번 참고 또 참으셨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백성들에게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8절에 보면, 언약의 모든 규정대로 그들에게 이루게 하였다고 말씀을 하셔요. 이것은 언약을 어길 때 저주가 임한다는 언약 규정이 이제 그대로 시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십 가지의 저주가 그 규정대로 유다 백성들에게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저주의 내용을 보면, 너무나도 무서운 것들뿐이라서 그 중에 하나만 당해도 제대로 된 생활이 불가능할 정돕니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아서 일평생 가난할 것이며, 몸에 염병이 들고 온갖 질병이 들 것인데,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 씨를 뿌려도 메뚜기가 다 먹을 것이며, 자녀를 낳아도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머리가 되지 못하고 꼬리가 되리라. 이러한 끔찍한 저주가 수십 가지가 기록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저주가 하나도 아니고, 이 저주가 모두 전부 다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 수가 없죠. 생활이 안 돼요. 차라리 죽고 싶은 그런 엄청난 고통을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끝없이 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요. 정말 무서운 사실은, 하나님의 저주가 여기에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가장 무서운 저주가 남아 있어요.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우리가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아멘.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저주입니다. 사실 아무리 무섭고 고통스러운 저주를 당하더라도, 회개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건져주시죠. 그래서 사사 시대를 보면, 몇 번이고 이방 민족에게서 백성들을 구원해주시지 않습니까? 노예가 되어도,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희망이 끊어진 겁니다.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셔요. 그래서 오늘 제목이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제목이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었죠. 저주의 언약을 이루시기 때문에 제목이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한 발 더 나가서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어떤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것이죠. 만약에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새벽에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힘들도 지칠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시리라는 믿음 때문인데, 그것이 다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갈수록 가관입니다. 14절에 가서 봐 볼까요?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또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중보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시죠.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여러분, 중보기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들 아시죠? 누군가 아플 때 성도들이 합심해서 그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요. 심지어 멸망할 민족이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백성들이 언약을 어기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바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이 백성을 진멸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해요. 진노를 거두시고, 과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던 그 약속, 너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리라 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사, 이 백성을 용서해주시라고 간구합니다. 중보기도를 한 것이죠.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출애굽기 32장 1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아멘.
모세 한 사람의 중보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한 민족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중보기도의 힘이 그만큼 대단한 것입니다. 내가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내 가족이 살고, 내 교회가 살고, 내 민족이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 14절에 의하면, 이제 중보도 할 수가 없어요. 백성들의 기도를 듣지도 않으시고, 예레미야의 중보까지도 듣지 않겠다는 선포입니다.
그래서 지금 백성들은요, 이미 영적으로 죽은 상탭니다. 육신은 아직 살았으나, 영은 죽은 거예요. 여러분, 영의 죽음이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끊어지면 영이 죽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잖아요. 하나님과의 소통창구가 바로 기도인데, 그것을 끊으신 거예요.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한 간접 소통창구까지도 막혔어요. 완전한 단절, 완전한 죽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저주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저주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미 이전에 한 번 중보기도를 하지 말라는 명령을 예레미야에게 하셨었습니다. 예레미야 7장 16절에 기록되었는데요.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이미 이렇게 한번 명령을 하셨어요. 그런데 이때는 중보기도를 하지 말라는 명령만 하셨어요. 백성들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어요? 백성들 스스로 기도하면, 그 기도는 들으시겠다는 것이죠. 중보기도는 안 들어도, 백성들 자신의 기도는 들으시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백성들이 기도합니까? 기도하지 않아요. 기도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이 소통창구를 끊어버리셨어요. 이제는 백성들이 부르짖어도 그 기도가 상달되지 않습니다.
그 많은 저주가 임하여도 이제는 그것들을 이겨낼 방도가 없는 것이죠. 너무나도 서글프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총과 축복을 누리던 백성들이 이제는 중보기도조차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어요.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본래 어떤 민족이었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민족이었습니다. 또 16절에서는요? “그의 이름을 일컬어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또 그 이름을 좋은 열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셨던,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민족이 더 이상 좋은 열매를 맺지 않아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습니다.
여러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어떻게 됩니까? 마태복음 7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열매를 맺지 못하면, 도끼에 찍혀서 베어지고, 불에 던져져 불살라집니다. 이것이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의 최후입니다.
구원의 여지가 없어요. 기도가 상달되지 않기 때문에, 여지 없이 멸망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는 언약을 어긴 데서 시작이 된 겁니다.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우상에게 분향하며 섬겼기 때문에, 끔찍한 저주와 기도의 단절과 멸망이 닥쳐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과 율례의 말씀들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모든 율법의 요구에서 자유케 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아무런 의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천국 백성이 되었으면, 우리는 마땅히 천국의 법도를 지켜야 돼요. 천국 시민으로서 준법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열매 맺지 않으면 찍혀서 불에 던져지는 거예요.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계속해서 거룩해져 가야 합니다. 성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성화는 거룩할 성, 될 화. 거룩하게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거룩함은 곧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에, 성화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 놓여 있어요. 세상의 누구도 이미 하나님의 성품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부지런히 말씀과 기도로 나 자신을 연단하며, 선행과 전도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힘쓰며 성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화는 인간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애초에 성화를 이룰 수가 없어요.
믿음으로써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 도우심을 받는 자만이 오늘 거룩해져 가는 그 연단의 여정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며, 우리의 믿음과 전도와 봉사와 선행의 열매를 풍성히 맺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간구하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친히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복되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