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을 때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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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9:1-6
“떠나고 싶을 때”
2022. 8. 19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떠나고 싶을 때”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떠나고 싶을 때. 이것은 지금 예레미야의 심정을 표현한 말이에요. 예레미야가 지금 백성들을 떠나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고,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니까, 사명자로서 너무 허망한 거예요. 자기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사역을 잘 못했나? 내가 잘했으면 백성들이 회개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찾아오는 거죠.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통곡을 하면서 울어요. 1절을 봐 볼까요?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예레미야가 백성을 위해서 주야로 울어요. 하루종일.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머리가 물이 되고 눈이 눈물 근원이 된다고 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울고 나서, 밑에 2절에 보니까, 예레미야가 무슨 말을 해요?
“내가 광야에서 나그네가 머무를 곳을 얻는다면 내 백성을 떠나 가리니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요 반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내가 광야에 나그네가 머무를 곳만 얻으면 내가 당장에 내 백성을 떠나 가리라. 떠나고 싶다는 겁니다. 사명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떠나버리고 싶다는 거예요. 나그네가 머무를 곳이라는 것은 여행객들이 임시로 하룻밤 겨우 묵을 만한 임시거처를 말합니다. 바람도 숭숭 들어오고, 그냥 밤이슬만 피할 수 있는 그런 곳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임시거처만이라도 내가 얻으면 당장에 떠나겠다는 겁니다. 그만큼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거예요.
이놈의 백성들, 말도 안 듣고, 2절 말씀에 다시 보면,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요 반역한 자의 무리가 됨이로다.” 말도 안 들을 뿐만 아니라 다 더러운 범죄자들이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더 있기가 싫은 거예요. 여기 더 있다가는 자신감만 곤두박질치고, 눈물만 줄줄 흘러요. 사역도 되지를 않고. 그러니 내가 여기 더 있어봤자 뭐하냐는 것이죠. 이렇게 하루종일 울면서 힘들어할 바에야 차라리 떠나자! 이런 마음이 드는 겁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을 겁니다. 일이 힘들고, 마음이 다 소진되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냥 아무 근심걱정 없이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면서 여유를 즐기고 싶은 그런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한 며칠 휴가를 다녀오기도 하고, 기분전환 삼아서 여행도 가고 하지 않습니까? 휴가를 다녀오면 그래도 어느 정도 힐링도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되잖아요.
그런데 예레미야는 지금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휴가를 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아예 사표를 내고 싶다는 겁니다. ‘나 선지자 그만 할랍니다. 그냥 다 내려놓고 떠날랍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마음상태라는 거예요.
이런 예레미야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동안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겠어요? 지금 예레미야가 있는 곳을 봐 보세요. 주변에 범죄자들밖에 없어요. 같이 말씀을 나누고, 간증을 나누고, 신앙생활을 함께 할 사람이 없습니다.
3절을 봐 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지금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거짓을 말하며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해요.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성도의 교제를 하겠어요?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누가나 디모데 같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곁을 지키고 있어서 외롭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예레미야는 자유의 몸이면서도 마치 외딴 섬에 있는 것처럼 외로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너무 불쌍해요.
오늘 본문 4절에도 보면,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 백성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는지, 이웃도 믿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 형제마저도 믿지를 못합니다. 자기 가족도 믿지를 못해요.
또 5절에는요. “그들은 각기 이웃을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혀로 거짓말하기를 가르치며 악을 행하기에 지치거늘.” 악을 행하고 또 악을 행하다가 이제는 지친다는 겁니다. 얼마나 악을 행하는지 지칠 정도로, 그 정도로 악을 행해요.
예레미야가 그런 곳에 있습니다. 범죄자들 속에 있어요.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있는 예루살렘이 지금은 범죄자들의 소굴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그것을 오늘 본문 6절에서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6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네가 사는 곳이 속이는 일 가운데 있도다 그들은 속이는 일로 말미암아 나를 알기를 싫어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지금 예레미야가 사는 곳이 어떻다고 말씀하십니까? 그곳이 속이는 일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셔요. 예레미야가 있는 예루살렘, 유다 땅이 속이는 일 가운데 있도다. 영어성경은 이것을 “You live in the midst of deception” 이라고 번역합니다. 이 말은 “네가 속임수 중앙에 살고 있다.” 이런 말이에요. 네가 속임수 중앙에 살고 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선한 곳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악하고 악한 죄악의 한가운데 살고 있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이 선한 곳이어야 하는데, 죄악만 가득해요. 그런 곳에서 살고 싶겠습니까? 떠나고 싶죠. 그냥 광야에서 나그네가 머무는 임시처소라도 하나 얻어서 혼자 살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떠날 수가 없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사표를 내고 싶은데, 하나님이 사표를 안 받아주셔요. 죄악 가운데 예레미야를 놔두고, 거기에서 계속 살게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인생이 힘들다고 해서 떠날 수가 없어요. 현실도피라고 하죠. 현실도피를 할 수 없어요. 도망쳐 봤자 여전히 현실입니다. 내일이면 또 출근해야 되고, 자녀를 양육해야 되고, 가정을 돌봐야 돼요. 아무리 힘들어도 인생을 살아내야 합니다.
떠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문제가 그대로 있어요.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떠나고 싶은데, 떠날 수가 없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예수님이 그 답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멘.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쉬고 싶으냐? 다 내게로 오라. 너희가 떠나고 싶으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육신의 문제는 휴가를 가면 풀 수 있습니다. 휴가를 간다든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든지 하면 힐링이 돼요. 그러나 영적인 문제는 그런 것으로 풀 수가 없어요. 오직 주님께로 갈 때에만 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떠나고 싶으십니까? 떠나세요. 휴가도 가고, 인생의 쉼을 얻으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영의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떠나더라도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휴가가 끝나면 돌아와야 하듯이, 우리는 우리 인생을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인생이 힘들고, 속고 속이는 죄악의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더라도, 살아가야 돼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길고 긴 고통의 인생길에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는 휴가를 가서는 얻을 수 없어요.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 앞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주님을 찾고, 주님을 만날 때,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에게 새힘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떠나고 싶을 때, 주님을 찾으십시오. 포기하고 싶을 때, 주님을 붙드십시오. 주님을 찾고, 주님을 붙들어서, 참된 영의 안식을 얻고, 놀라운 회복의 은혜를 맛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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