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5:7-9
“내가 어찌..”
2022. 6. 17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내가 어찌..”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내가 어찌.. 이 말씀은 오늘 본문에 두 번 나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토해내는 모습을 함께 봤었습니다. 이 유다 땅에 의인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용서하겠다고 하셔서 열심히 의인을 찾았지만 끝내 의인 그 한 명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백성들의 사악함만을 발견을 했었죠. 그래서 예레미야가 너무도 상심을 하고 좌절을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사악함만 가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7절을 보면요.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하나님께서 절대로 유다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말씀이에요. 그러면서 용서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이것은 우상숭배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또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먹이셨는데, 먹고 힘을 얻고는 간음을 하며 창기의 집에 모여요. 여기서 간음은 영적인 간음이죠. 본남편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우상의 신당에 모여 제사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또 8절에도 보면요. “그들은 두루 다니는 살진 수말 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백성들을 말에다 비유를 합니다. 살진 수말과 같다. 여러분, 이 수말을 누가 이렇게 살이 찌게 먹이셨습니까? 하나님이 먹이셨죠. 7절에서 말씀하시잖아요.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이 먹이고 입히고 돌보셨어요. 그래서 아주 보기 좋게 살이 올랐습니다. 그러면 그 기력을 가지고 선한 일에 힘을 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멍에를 메고 밭을 간다든지, 전쟁터에 용감하게 장수를 태우고 나간다든지, 그래야 하는데, 뭘 합니까?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르며 소리지르는도다.” 이 수말들이 힘을 딴 데다 쏟아요. 자기 아내가 아니라 이웃의 아내에다가 힘을 쏟습니다. 간음을 하는 거죠.
여러분, 이것 역시도 비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힘을 쓰는 게 아니라, 우상을 따르는 데 힘을 쓴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절대로 용서하실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9절 말씀에서 다시 한 번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9절 말씀을 우리가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아멘.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죠. “내가 어찌..” 7절에서도 하셨던 말씀인데요.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여러분, 지금 이것은 비슷한 말을 먼저 앞에서 하고, 그 뒤에 다시 한번 함으로써 의미를 강조하는 수사법입니다.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시고, 뒤에 “내가 어찌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라고 덧붙이시면서 그 뜻을 한층 강조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강조하십니까?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시죠.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뜻을 강조하셔요. 그리고 강조하시는 이 두 말씀 사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상숭배가 들어있어요.
내가 배불리 먹였으나, 그들이 간음을 하며 살진 수말과 같이 이웃의 아내를 따르는 그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결국에 하나님께서 이토록 강조하시면서 분노하시는 이유는, 백성들의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영적인 간음을 하는 이 백성들에게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한 명의 의인도 없이, 완전히 타락해버린 이 민족에게 이제 참지 아니하시고 진노의 불을 쏟아낼 것을 선포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다시 찬찬히 보면요. 용서할 수 없다는 분노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감정이 느껴져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하고 싶어 하시는 긍휼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무엇이 목적입니까? 구원하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백성들을 구원하고 싶으셔요. 용서하고 싶으십니다. ‘내가 너희를 용서하고 싶다. 너희가 조금만 너희 죄를 뉘우치고, 나에게 돌아온다면 내가 용서할 수 있을 텐데. 많이도 아니고, 단 한 명의 의인만 있어도, 내가 너희를 용서할 텐데.’
하나님은 정말로 용서하고 싶으셔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 한 명이 없어서. 살진 수말 같이 간음을 하고 있어서. 그래서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인 동시에 눈물의 말씀입니다. 용서하지 못해서 너무도 슬프고 비통한 마음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그 심정을 한번 헤아려보십시오. 자기 자식을 살리고 싶으나 죽여야만 하는 그 심정. 영원한 멸망에 처하지 않도록 그들을 쳐서 돌이키게 하시려는 그 아픈 심정.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라는 말씀이 아니었을 겁니다. 오늘 제목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어찌..” 오늘 본문에서는 이 말 뒤에 “너를 용서하겠느냐?” 라는 말이 붙었죠.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그런데 이 말이 아니라 사실은 다른 말씀을 하고 싶지 않으셨을까요?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씀이 이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용서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내 백성, 내 자녀가 멸망 당하지 않고 그냥 살게 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그냥 죽게 놔두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보듬어 안고 싶은 마음, 이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나 그 마음을 억누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벌하지 아니하겠느냐?”
두 번을 반복함으로써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다. 너희는 반드시 멸망당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지, 또한 얼마나 우리를 구원하고 싶어하시는지.
그 마음의 크기를 우리는 짐작도 할 수 없어요. 영원 전부터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우리가 따라서 해보는 거예요. 저를 따라서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내가 어찌..” “하나님을 버릴 수 있으리요?”
“내가 어찌..” “하나님을 외면할 수 있으리요?”
“내가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아멘. 우리는 하나님을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기억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