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좋게 여기는 백성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5:26-31
“그것을 좋게 여기는 백성”
2022. 6. 28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그것을 좋게 여기는 백성”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유다 백성들이 영적인 눈과 귀가 닫혀 있어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바람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마음대로 하나님을 반역하며 범죄하였다는 말씀을 함께 봤었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에 이어서, 유다가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2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셔요.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이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셔요?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다. 그런데 그 악인이 마치 새 사냥꾼처럼 덫을 놓아서 새를 잡듯이 사람을 잡는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덫은 미끼로 유인을 해서 새가 미끼를 물면 잽싸게 낚아채는 함정이죠. 이런 함정을 놓는 악인들이 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넘어뜨리고 재물을 빼앗는 함정을 파고 흉계를 꾸미는 악인들이 있어요.
그 악인들은 그러한 범죄를 통해서 재물을 쌓고 부자가 됩니다. 27절에 봐 볼까요?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범죄를 저지르면 저지를수록 재물이 번창하고 거부가 됩니다. 큰 부자가 돼요. 아니, 범죄를 하면 그 죗값을 받아 망해야 정상인데, 범죄를 저지를수록 번창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도나도 범죄를 저지르게 되겠죠. 범죄를 안 하면 바보가 되는 겁니다. 그런 사회가 돼버렸어요. 그래서 27절에 말씀하잖아요.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백성들의 집에 속임이 가득합니다. 선한 생각을 하지 않고, 온통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빼앗을 수 있을까 악한 꾀를 생각해요. 속임이 가득합니다.
28절부터 보면, 그 악한 꾀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죠. 28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 이것은 이때 당시에 실제로 지도자들이 저지르던 범죄들입니다.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를 마음대로 뒤바꾸는데, 특히 고아의 송사나 빈민의 재판을 자기들 마음대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죠. 돈이 있으면 돈을 받고 유리한 판결을 받아내요. 반대로 돈이 없으면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내가 피해잔데, 오히려 내가 가해자로 몰려서 처벌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요.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그런 사람들을 정부에서 도와주기는커녕 더 못살게 만들어요. 가진 자는 더 많이 갖고 살지고 윤택하게 되지만,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고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겁니다.
사회에 정의가 없어요. 27절에 말하는 것처럼, 속임이 가득합니다. 지도자들이나 몇몇의 집만 속임이 가득한 게 아니에요. 그냥 유다 전체에 속임이 가득한 겁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있는데요. 오늘 본문에서 사회 지도층이나 부자들만 악하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똑같이 악합니다. 가난한 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서 그들이 의인이라는 것이 아니에요. 지난 시간에도 계속 말씀드린 것처럼, 유다 땅에 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다 그 놈이 그 놈이에요.
괴롭히는 지도자들이나 당하는 빈민들이나 똑같이 악인들입니다. 다만 빈민들은 힘이 없어서 당하고 있을 뿐이죠. 만약에 이 사람들이 힘을 갖게 된다면, 이 사람들은 착하게 살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힘을 가지면 똑같이 남들을 괴롭힙니다. 아니, 오히려 더 악독하게 굴어요. 내가 당한 것이 있으니까, 억울해서라도 더 악랄하게 이웃을 괴롭히게 됩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31절에서 증언하고 있어요. 3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선지자들은 거짓 예언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범죄를 저질러요. 이 사람들이 사회 지도자들이죠. 그러면 일반 백성들은 어떨까요? 그들의 범죄에 저항을 할까요?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촛불시위를 할까요? 그렇지 않죠. 31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백성들이 그것을 좋게 여깁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사회 지도자들이 덫을 놓고 악한 꾀로 범죄를 저지르며 약자들을 괴롭히고 빼앗는 것을 백성들이 좋아해요. 오늘 말씀 제목이 그래서 뭡니까? “그것을 좋게 여기는 백성”
범죄하며 남을 짓밟는 것을 좋게 여깁니다. 내가 당할 때는 싫지만, 내가 하는 입장이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다 그것을 한다는 것이죠.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안 하는 게 바보예요.
유다가 그런 사악한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정하고, 악랄하고, 빼앗을 기회만 노리는 그런 사악한 사회.
여러분, 그런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누군가 정의를 부르짖는다 해도 아무도 그것을 듣지 않아요. 오히려 소리 내지 못하게 때리고 입을 막습니다. 여러분, 그런 사회가 오래 가겠습니까? 오래 가지 못해요. 반드시 무너집니다. 북이스라엘이 그래서 무너졌고, 이제 곧 남유다도 무너지게 됩니다.
나라 자체가 멸망하게 생겼는데, 그 안에서 한 푼이라도 더 갖겠다고 싸우고 비방하고 헐뜯는 것은 헛되고 헛되고 헛된 일입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죽어서 각각 천국과 지옥에 떨어졌는데, 부자가 갖고 있던 그 많은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었습니까? 죽을 때 갖고 갈 것도 아니고, 돈으로 천국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헛되고 헛되며 헛된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그런 사악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장관이 되고를 떠나서, 사회 전체가 점점 더 악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고, 과학은 점점 더 발전하는데, 도덕과 윤리는 점점 퇴보합니다. 돈의 가치는 올라가고, 그래서 코인이다 뭐다 난리를 하죠. 그런데 사람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희망을 가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31절 끝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정의가 없고 희망이 없는 땅에서 범죄하며 사는 자들이 마지막 때가 오면, 그때는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그때에는 돈도 소용이 없고, 권력도 명예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 때가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을 하며 살아요. 거짓 예언만 믿고, 평강하리라는 생각에 빠져서 계속 범죄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 때가 너무나도 빨리 옵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도적같이 찾아옵니다. 그 때는 이미 늦어요. 어찌할 방도가 없어요.
오직, 미리 깨어서 준비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이 사회가 희망이 없고, 정의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깨어서 희망을 품고, 정의를 지켜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굽어살피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우리가 하늘의 소망을 품고, 거룩한 백성으로서 정의를 지키며 주의 율례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가서는 안 돼요. 남들이 다 나를 바보라고 놀려도, 사실은 내가 바보가 아니라 저들이 바보예요.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멸망의 길을 가는 저들이 바보입니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라, 지혜의 근본을 가진 지혜자들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곧 지혜의 근본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바보 같을지라도, 우리가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정직하게, 정의를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길이고, 진정으로 사는 길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좋게 여기는 백성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돈보다 사람의 가치를 높게 여기며, 내가 번창하는 것보다, 이웃의 어려움을 돌보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