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할례를 받지 못한 자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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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6:9-15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한 자”
2022. 7. 8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한 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귀가 있기는 있는데,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봐 볼까요?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귀가 있다고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죠. 귀가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할례는 껍데기를 벗겨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귀가 할례를 받는다는 말은, 귀를 덮고 있는 영적 껍데기를 벗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영적 껍데기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14절을 가서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나와 있습니다. 14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평강하다 평강하다, 거짓 예언을 하죠. 그런데 백성들은 그 거짓 예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것만 들어요. 참된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거짓 예언만 듣습니다. 이 거짓 예언이 바로 백성들의 귀를 덮고 있는 영적 껍데기입니다. 이 껍데기가 자체적으로 필터링을 하는 거예요. 평강하다는 말은 통과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은 걸러냅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듣기에 좋은 말은 듣지만, 정작 나를 살리는 쓴소리는 거부하는 겁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 껍데기를 없애버려야 하는데, 없애지를 못해요. 귀가 할례를 받아야 하는데, 할례를 받지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듣지 못하는데서 끝이 아니죠. 10절 말씀을 다시 보면, 10절 뒤에 이 껍데기가 또 무슨 역할을 합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 껍데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들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꼭 나를 욕하는 소리처럼 들리게 만들어요. 그래서 더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게 되는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여러분, 도대체 왜 백성들이 이렇게 됐을까요? 왜 그들의 귀가 거짓 예언만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욕하는 소리로 듣게 되어 버렸을까요?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지도자들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거짓 선지자들과 삯꾼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잘못 가르쳐서 그럴까요? 아니면 왕이 나라를 잘 못 다스려서 그럴까요? 아니면 백성들이 머리가 미련해서 그럴까요?
사실 이 문제는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요. 민족 전체의 잘못입니다. 민족 전체. 오늘 본문 13절을 봐 볼까요?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전부 다 탐욕을 부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도자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정치가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반 백성들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유다 민족 전체가 똑같이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의 종류만 다를 뿐이지, 모두가 다 범죄자들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에 비추어 말하자면, 모두가 다 ‘귀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듣지 못하여서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고, 내 욕망을 충족해줄 수 있는 세상이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에요.
그런데 그런 자들이 유다에만 있었을까요? 신약시대에 가서도 여전히 넘쳐납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귀가 할례 받지 못한 채로 살아가죠.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로 사울이 있지 않습니까? 사울은 율법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였지만 복음은 듣지 않았죠. 복음이 마치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소리처럼 들려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잡아가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거꾸러졌잖아요. 그 자리에 거꾸러져서 눈이 보이지 않게 됐어요. 그리고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가 하나님의 종 아나니아를 만나 안수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사도행전 9장 1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아멘.
사울이 안수를 받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자,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졌습니다. 오늘 예레미야 본문의 말씀에 비추어 본다면, 사울의 눈이 할례를 받은 겁니다. 그동안에는 그의 눈에 덮여 있는 껍데기가 율법주의만 보게 하고, 복음을 왜곡하여 받아들이게 하였었는데, 이제 그 껍데기가 벗어져서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영적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귀가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눈이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입 역시도 할례를 받아서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귀와 눈과 입이 욕심으로 가득차서 영적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두지 않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벌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셔요.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벌하십니다.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 무서운 징계를 받기 전에, 귀가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귀뿐 아니라 눈과 입, 손과 발, 아니 그의 전체가, 그의 영이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만 듣던 귀를 조금만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열고,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에 조금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세상을 말하던 입으로 조금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할례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는 이미 영에 할례 받은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죠. 우리의 영이 더욱 주님을 바라고, 주님을 듣고, 주님을 말하여서 더욱 더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정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가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를 사랑하며, 빛난 면류관을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남들은 세상을 붙들고 살아갈지라도, 우리는 험한 십자가를 붙들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국동제일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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