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4:29-31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2022. 6. 10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역시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예레미야가 본 혼돈의 환상의 한 장면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레미야가 유다에 임하는 심판이 너무도 참혹하고 끔찍해서, 도저히 어떻게 설명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문학적으로 묘사를 했죠. 유다가 마치 태초의 혼돈과 공허함과 같은 그러한 그런 모습이 되고 말았다. 사람도 다 사라지고 땅은 다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환상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어지는 본문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 29절에 이렇게 말하는데요. “기병과 활 쏘는 자의 함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읍 사람들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사는 사람이 없나니.”
기병과 활 쏘는 자, 바벨론 군대죠. 바벨론 군대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함성을 지릅니다. 그런데 모든 성읍 사람들이 단지 그 함성만 듣고 도망을 가요. 군대가 공격을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함성만 질렀는데, 그것을 듣고 도망을 갑니다.
그러니까 지금 백성들이 얼마나 전쟁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는지 아시겠죠? 미리 알았다면 준비를 하고 마음의 대비를 해서 맞서 싸울 텐데, 그동안에 항상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면서 너무도 방심을 하고 있었어요.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설마 적군이 쳐들어오겠어?’ 너무나 태평하게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적군이 몰려오니까 깜짝 놀라서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가는 겁니다. 집이며, 재산이며 다 내팽개치고, 심지어 가족까지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가요.
그런데요.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 길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죠. 시편 3편에서 고백하는 바와 같이, 구원은 여호와께 있는 것입니다. 시편 3편 8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사실 시편 3편 전체가 지금 유다 백성들이 부르짖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시편 3편을 한번 찾아볼까요? 시편 3편 1절부터 8절을 우리가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성경 806쪽에 있는 시편 3편. 다 찾으셨으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맣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아멘.
여러분, 이 시편 3편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서 도망칠 때 지은 시입니다. 사랑하는 자기 아들과 그의 군사가 다윗을 죽이려고 몰려와서 생명을 잃을 위기에 있을 때 다윗이 고백한 것입니다. 참으로 이 고백은 다윗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설마 아들이 반역을 일으킬 것이라고 꿈에나 생각을 했을까요? 전혀 몰랐죠.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당한 겁니다. 아무런 방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감히 대항을 하지 못하고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 도망을 치는 경중에도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간구했어요.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다윗의 그 간구가 하나님께 닿았기 때문에, 다윗은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직 구원은 여호와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유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유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도 바벨론 군대가 갑자기 들이쳤어요.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당한 겁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은 다윗과는 전혀 다르죠. 다윗은 하나님을 구했지만, 유다 백성들은 무엇을 구했습니까? 오늘 본문 30절을 보면, 이들은 주변의 다른 나라들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30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네가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지금 이 말씀은 비유로 하는 말씀입니다. 멸망을 당한 자는 유다를 가리키죠. 그런데 유다가 막 치장을 해요.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리고 화장을 합니다. 왜 화장을 하는가 하면, 연인들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는 겁니다. 유다의 연인들. 애굽을 비롯한 주변의 이방나라들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바벨론이 쳐들어오니까 유다가 이방나라들의 도움을 구한 겁니다. 술집 여인이 화장을 하고 눈웃음을 하면서 아양을 떠는 것처럼, 유다가 이방나라들에게 제발 좀 구해달라고 꼬리를 흔드는 것이죠.
그러나 그 나라들이 도움을 주지 않아요. 오히려 멸시를 하고 심지어 생명을 찾습니다. 생명을 찾는다는 말은, 생명을 노리고 빈틈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다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을 한 겁니다.
나를 살려줄 자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나를 죽이는 자들이에요. 그런 자들에게 목숨을 구걸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돼요? 31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죠.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유다에 임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여인이 해산하는 모습에 비유를 합니다.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다.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다. 백성들이 지르는 비명이 마치 아이를 낳는 여인의 비명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큰 고통이 온 성에 가득해요. 그런데 아이를 낳던 여인이 결국에 어떻게 됩니까? “그의 손을 폈다” 라고 말하죠. 그의 손을 펴고. 여기서 손을 편다는 것은 이제 숨이 끊어져서 손에 힘이 풀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를 낳느라 고통스러워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는데, 이제 숨이 끊어져서 온몸에 힘이 탁 풀렸어요. 그래서 손이 펴지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숨이 끊어지는 그때 여인이 하는 말이 있죠.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이것은 여인의 유언입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마지막 말이 너무나도 허망하지 않습니까? 한때는 열방을 지배하며 위대한 나라로 우뚝 서 있었는데, 그의 최후가 너무나도 비참합니다.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이 말을 보다 히브리 원문에 가깝게 직역을 하면 이런 말입니다. “나의 숨이 약해져 간다.” 유다의 숨이 약해져 갑니다. 그래서 손아귀에 힘도 풀리고, 처량하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의지한 결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때에 우상을 의지하고, 다른 나라를 의지한 결과 그의 숨이 약해져 가고, 결국에는 숨이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환난을 앞에 두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시편 3편의 다윗의 고백과 같이,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해야 합니다. 천만 명이 나를 에워싼다 할지라도, 도저히 살아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로서.”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주의 복을 받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