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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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3:1-5
“가짜 회개”
2022. 5. 3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가짜 회개”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회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진짜 회개가 있고, 가짜 회개가 있어요. 진자 회개는 뭘까요? 진정으로 내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진짜 회개이죠. 그러면 가짜 회개는 뭐겠습니까? 진정한 죄 자백이나 뉘우침이 없이, 그냥 모양만 있는 회개가 가자 회개겠죠.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고 해놓고는 속에는 우상이 있는 거예요. 딴 마음을 품은 겁니다. 그러면서 나는 회개했다. 하나님께 돌아왔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 백성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짜 회개를 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 1절을 봐 볼까요? “그들이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의 비유를 사용해서 하나님과 백성들의 관계를 설명하십니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는데요. 남편은 하나님이고, 아내는 유다 백성들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결혼생활을 하다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바람에 이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됐어요. 그런데 거기서 잘 사는가 싶더니, 또 거기서 불륜을 저질러서 두 번째 이혼을 했어요. 그러면 그 아내가 본 남편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그 아내를 다시 받아주시겠습니까? 반대로 성별을 바꿔서, 그런 남편을 받아주시겠습니까? 뭐, 사람에 따라서 받아줄 수도 있고, 안 받아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다시 받아준다고 한다면, 그냥 받아줄 수는 없죠. 조건을 걸어야 됩니다. 어떤 조건일까요? “당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죄를 범하지 말아라. 그것을 약속하면 받아주겠다.” 이런 조건을 걸어야죠. 이것도 정말 많이 봐준 겁니다. 이미 남남이 됐는데, 죽든지 살든지 신경 쓸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다시 받아준 것 만으로도 얼마나 많이 봐 준 겁니까?
긍휼을 베풀어서 다시 받아줘요. 자,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러면 정신 차리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가정에 충실하고 배우자에게 감사하면서 살아야 정상입니다. 그것이 진짜 회개이죠. 그런데 유다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짜 회개를 한다는 거예요.
1절 끝부분을 다시 봐 보면,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하나님이 질문하시는데요.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유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시도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이 사람 저 사람, 이 신 저 신. 많은 우상들을 돌고 돌더니 슬그머니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해요.
지금까지 밖에서 마음대로 살더니 왜 다시 돌아오려고 할까요? 다른 우상들을 찾아다닐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무슨 이유로, 무슨 낯짝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올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알 수가 있는데요. 먼저 첫 번째 이유는, 이 백성들이 수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유다 백성들은 벼룩만도 못해요. 얼마나 낯짝이 두꺼운지 자기들이 배신한 하나님께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봐 볼까요?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으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죠.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유다 백성들이 수치를 모릅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해요.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너무도 죄송스러워서 감히 돌아올 생각을 못해야 맞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한 얼굴로 돌아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황당하신 거예요. 아까 1절에서 말씀하시잖아요.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네가 어떻게 돌아올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는 말씀이죠. 참 낯짝도 두껍구나. 네가 정말 창녀의 낯을 가졌구나.
유다 백성들은 정말 수치를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생각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자, 그러면 두 번째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요. 백성들이 이제 밖에서는 더이상 볼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뭔가 더 얻을 것이 없어요. 이것을 바꿔 말하면요. 하나님께 있는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 돌아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본남편이 갖고 있는 재산, 하나님의 품에 있을 때 누리던 풍요와 복을 다시 누리기 위해서 돌아오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4절과 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4절과 5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이것이 유다 백성들이 가진 마음입니다. 자기들이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도리어 자기들이 하소연을 합니다. 아버지, 도대체 언제까지 화를 내실 겁니까?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지 않습니까? 한없이 그렇게 노여움을 계속하실 겁니까? 끝까지 노녀움을 품으실 겁니까? 이렇게 하소연을 해요.
이 말만 들으면 꼭 하나님이 잘못한 것 같죠. 아니, 내가 잘못했나? 하나님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잘못 없어요. 백성들이 잘못했죠. 자기들이 결혼생활을 깨고 딴살림을 차린 거잖아요. 그것도 한 살림도 아니고, 두 살림 세 살림, 수십 살림을 차렸어요. 그리고 더 유익을 볼 게 없으니까 이제서야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그러면 최소한 미안한 척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겉으로 미안한 척이라도 해야 될 텐데, 그런 것도 없어요. 오히려 자기들이 큰소리를 칩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그렇게 화를 내실 겁니까? 이제 그만하시죠?” 이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받아주시겠습니까? 절대로 안 받아주시죠. 회개를 해야 받아주실 텐데, 이것은 회개가 아니에요. 진정한 마음의 뉘우침도 없을 뿐더러, 겉으로 회개의 모양조차도 없어요. 완전히 가짭니다. 여러분, 그냥 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 그게 회개가 아닙니다. 예배당에 나온다고 회개가 아니고, 헌금 많이 한다고 회개가 아니에요. 그 안에 진정으로 나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겠노라는 결단이 없다면 그것은 가짭니다.
좀 전에 5절 말씀 후반절을 다시 봐 보세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하면서도 그들이 또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겠다고 말하면서도 또 무엇을 행합니까? 악을 행해요. 악을 행하여 욕심을 이룹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전혀 뉘우침도 없고, 정직하게 살 생각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려고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죄를 다 자백하고, 앞으로는 하나님만 따르면서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돌아오는 게 아니에요. 죄는 죄대로 계속해서 지으면서 옛날 청년 시절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같이 누리겠다는 욕심 때문에 돌아오는 겁니다.
밖에 돌아다녀 보니까 별 거 없거든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보다 큰 복이 없어요. 그걸 알고 다시 돌아오려는 겁니다.
진정으로 회개를 해도 받아줄까 말깐데, 딴 마음을 품고 있으니 어떻게 다시 받아주겠습니까? 절대로 받아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회개함에 있어서 진실된 회개를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만 하는 가짜 회개 말고, 모양만 있는 그런 회개 말고, 진짜 회개.
내 안의 욕심을 버리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며,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먼저 따르는 낮은 자의 회개를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찬송한 가사처럼,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주소서.”
내가 주께로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되고 진실된 회개하는 심령으로, 주께 나아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너른 품 안에서 호흡하며, 차고 넘치는 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