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첫 번째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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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11:18-23
“예레미야의 첫 번째 탄식”
2022. 10. 14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예레미야의 첫 번째 탄식”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두 번의 탄식 중에 첫 번째 탄식 단락입니다. 사역이 힘들고 너무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하나님께 탄식을 해요. 누구나 하나님께 한숨을 쉬면서 하소연을 하고 싶을 때가 있죠. 지금 예레미야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탄식을 하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 18절을 먼저 보면요.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 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
지금 이것이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탄식의 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여주셨어요. 그런데 그 행위의 내용이 너무도 악한 거예요. 그래서 탄식을 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그들의 행위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밑에 19절에 나오는데요. 19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여러분, 충격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어요. 예레미야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닌데, 죽이려고 합니다.
물론 이 당시에 살아가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죽일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예레미야가 안 좋은 소리만 하고 다니거든요. 실제로 나라를 팔아먹지는 않았지만, 꼭 매국노 같은 소리를 하고 다녀요. 나라가 망할 것인데, 바벨론 군대가 와서 망할 것이고, 군대의 칼에 맞아 죽고, 성읍이 파괴되고, 다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이런 말을 하고 다니니까 좋게 보이겠습니까?
저런 소리를 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시도 때도 없이 몇 년 동안이나 그러고 다니니까 더는 못 참겠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이 말씀에 보면, 저들이 예레미야에게 요구한 일이 있었죠.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아마도 예전부터 요구했던 것 같아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런 괴상한 예언 좀 하지 말아라.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다 죽는다는 그런 예언 좀 하지 말아라. 이런 말을 진작부터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듣지를 않으니까 참다 못해서 죽이려고 계략을 꾸미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21절에 보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느 지역 사람들이에요? 아나돗이죠.
아나돗이 어떤 곳입니까? 바로, 예레미야의 고향입니다. 예레미야의 고향. 예레미야 1장 1절에 보면, 예레미야를 이렇게 소개해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예레미야는 아나돗 출신입니다. 그것도 그냥 일반 백성이 아니라,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 출신이에요. 그런데 그런 예레미야를 타지역 사람도 아니고, 같은 고향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세상에 그럴 수가 있을까요? 아무리 예레미야가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같은 고향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동네 제사장의 아들이에요. 오늘로 치면, 동네 목사님 아들이죠.
교회 다니면서 어려서부터 봤을 것 아닙니까? 목사님 아들이니까 보면 사탕도 주고, 자기 자녀들과도 같이 어울려 놀다가 시간이 늦으면 자기 집에 데려가서 밥도 먹이고 했을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런 아이를 죽이겠다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예레미야의 모든 것을 아주 비인간적으로 없애버리겠다고 하는 겁니다.
19절을 다시 보면, 예레미야가 자기 자신을 도살 당하러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다고 말을 하는데요. 도살 당하는 어린 양, 그만큼 비인간적으로 끔찍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가축을 죽이는 것처럼, 그러니까 저들이 예레미야를 사람으로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또 그 뒤에 보면 예레미야를 해하기를 마치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는 것과 같이 죽일 것이며,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고 합니다. 이것은 죽이는 차원을 넘어서, 아예 예레미야의 흔적 자체를 지워버리겠다는 말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데, 예레미야는 아예 그 이름도 남지 않도록 말살을 시켜버리겠다는 겁니다. 예레미야가 했던 말이며, 행적이며, 그의 집이며, 그 모든 것을 다 이 땅에서 지워버린다는 것이죠.
이것을 예레미야가 알게 되고는 하도 기가 막혀서 지금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밑에 20절에 보면, 하나님께 이렇게 요청을 하고 있어요.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통함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복을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예레미야가 어떤 요청을 하고 있습니까? 주의 보복을 요청하고 있죠. 저들에게 보복을 내리실 것을 내가 보리이다. 저들이 하나님의 보복을 당해서 망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겁니다.
백성들을 살리겠다고 눈물 흘리면서 사역하고 있는 예레미야가 오죽했으면 이런 말을 할까요? 오죽했으면 보복해달라는 요청을 하겠습니까?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치가 떨리는 그런 심정이 아니었겠어요? 예레미야도 사람이에요. 무슨 선지자가 그래? 하고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내면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가족들, 친구들, 직장동료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문제를 일으킬 때 얼마나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합니까? 그럴 때 우리는 화를 내고 싶어도 제대로 낼 수가 없죠. 예수님께서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그 말씀 때문에, 꾹꾹 눌러 참고, 속으로 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냥 참을 것이 아니에요. 오늘 예레미야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억울함이 있고, 화가 올라올 때 그것을 하나님께 하소연하십시오. 하나님게 다 털어놓으세요.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하고 하소연하십시오.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그런데 여러분, 이런 저주의 기도가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일까, 의심이 생길 수도 있겠죠. 마음으로 짓는 죄도 역시 죄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 역시도 죄에 해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화가 난다 할지라도, 원수의 멸망을 바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은혜를 주실 것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원수를 철저히 징계하시되, 그로 말미암아 저들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은혜를 주실 것을 구하십시오. 나를 아프게 한 저들이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음으로써 나의 아픔을 공감하고, 나에게 용서를 구할 때, 나 또한 저들을 용서함으로 말미암아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하소연하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나를 저버리는 자다, 또 나를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자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너희의 원수는 곧 나의 원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를 대적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에게 원수가 있습니까? 그 원수들이 모두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우리가 그들을 저주하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릴 저주를 준비해 놓으셔요. 예상하지 못한 때에 무섭게 저주를 내리십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언약을 어길 때 내리는 저주를 봤었죠? 평생토록 가난하며, 자녀들이 잡혀가며, 불치병이 걸리는 온갖 저주가 있는데, 이러한 저주 가운데 하나만 내려도 원수는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냥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어쩌면 그 사람이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고향 사람들이었어요. 예레미야가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따지겠습니까? 아니면 법원에 고소장을 내겠습니까?
그냥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방법입니다.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하소연하고 또 하소연하십시오. 그들을 벌하시고, 그들을 회초리로 징계하셔서, 그들이 마음속 깊이 회개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회개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시라고,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니라.” 아멘.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벌하시는 해가 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몰라요. 그러나 반드시 그때가 와요. 지금은 내 원수가 너무도 완악하고 악독해서 조금도 변화될 것 같지 않아 보여도, 그 때가 오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모든 원수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아 거꾸러지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여러분 앞에 용서를 구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서 여러분의 원수가 여러분의 믿음의 동역자가 되고, 함께 사랑으로 보듬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그런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