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종하는 습관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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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2:20-30
“청종하는 습관”
2023. 3. 16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청종하는 습관”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눠지는데요. 먼저 20절부터 23절까지가 한 단락이고, 24절부터 30절까지가 또 한 단락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단락에는 남유다의 19대 왕인 여호야긴에 대한 예언이 들어있어요. 어제 우리가 17대 왕과 18대 왕에 대한 예언을 보지 않았습니까? 오늘 이 두 번째 단락에 19대 왕에 대한 예언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17대 왕과 18대 왕의 예언이 끝나고, 19대 왕에 대한 예언이 시작되기 전에, 그 가운데 생뚱맞은 단락 하나가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 첫 번째 단락인 20절부터 23절의 내용인데요. 이게 갑자기 들어가 있어요. 왕들에 대해서 예언을 하다가 생뚱맞은 예언을 합니다. 무슨 예언인가 하면, 예루살렘 성에 대한 예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 성을 마치 사람인것처럼 의인화해서 예언을 하고 있거든요. 왜 왕들에 대해서 예언을 하다가 갑자기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 예언을 하는가 하면, 현재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강조하기 위해서 이것을 기록한 겁니다. 지금 너희가 얼마나 심각하고 긴급한 상황에 있는지 보라는 것이죠.
오늘은 시간관계상 이 첫 번째 단락만 살펴볼 텐데요. 먼저 오늘 본문 2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라.”
지금 보면, 예루살렘 성을 “너”라고 부르면서 명령을 합니다. 너는 외치며 소리를 높이며 외치라. 사람한테 하는 것처럼 성에게 명령을 내려요. 이것은 예루살렘 성에 명령을 내리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는 명령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백성들을 대표해서 이 명령을 받고 있는 거예요.
자, 이 명령을 다시 보면요.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세 개의 지명이 나옵니다. 먼저 레바논은 유다의 북쪽에 있는 산악 지댑니다. 어제도 봤듯이, 레바논은 백향목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그리고 바산은 동쪽에 있어요. 여기도 지대가 높은 고산지댑니다. 또 아바림은 남쪽에 있어요. 여기도 산악 지대예요.
그러니까 지금 북쪽과 동쪽과 남쪽의 높은 산악 지대로 가서 외치라는 명령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만방에 잘 들리도록 높은 곳에 올라가서 외치라는 거예요. 그런데 뭘 외치라는 것일까요? 20절에 보니까,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라.” 본래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 있었어요. 다시 말해서 동맹국들이 있었습니다. 남유다를 돕는 동맹국들. 군사동맹을 맺어서 같이 바벨론을 대항하는 몇 몇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군대를 당해내지 못하고 다 멸망해버렸어요. 그래서 이제 유다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높은 곳에 올라가서 외치라는 것입니다.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죠. 나 좀 도와달라고, 같이 바벨론이랑 싸워보자고 외쳐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이런 위기에 처하기 전부터 계속해서 회개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듣지 않았어요. 평안할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때 들었다면 지금 바벨론에 위협을 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벨론을 지배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듣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위협을 당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지 않는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고, 언제부터 안 들은 겁니까? “어려서부터” 듣지 않았어요.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 네 습관이라.”
어려서부터 아주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것이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습관을 들이는 게 쉽습니까? 습관 하나 들이려면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돼요. 그런데 예루살렘은 어려서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습관을 들였다는 겁니다. 습관을 들이려면 좋은 습관을 들일 것이지, 하필이면 이런 습관을 들여가지고, 멸망을 당하게 됐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청종하는 습관”인데요. 우리는 이 제목처럼 청종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잘 들어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을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습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반복해야겠죠.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끊임없이 반복하고 반복해야 습관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청종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습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레바논과 바산과 아바림에 올라서 다른 이방민족을 향해서 도와달라고 외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외쳐야 돼요. 그러면 반드시 돕는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어서 22절에, 계속해서 멸망에 대한 예언이 이어집니다.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예루살렘의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지고,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고, 예루살렘은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는 예언입니다. 여기서 목자들은 왕족들을 말합니다. 왕과 그 가문을 말해요. 그리고 사랑하는 자들은 귀족들을 가리킵니다. 권력자들이죠. 이들이 모두 멸망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은 수치와 욕을 당합니다. 뭣 때문에요? 그들의 모든 악 때문에.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언어유희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한글성경으로 보면 알 수 없지만, 히브리어로 보게 되면, 목자라는 단어와 악이라는 단어가 글자가 같습니다. 발음만 조금 다르고 자음이 똑같애요. 목자는 “로에”라는 단어이고, 악은 “라아” 라는 단어입니다.
예루살렘이 수치와 욕을 당하는 이유가 본래는 라아, 악 때문이죠. 그런데 이것을 로에라고 읽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루살렘이 수치와 욕을 당하는 이유가 로에, 목자 때문이다, 라고 읽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히브리식 언어유희예요. 로에와 라아를 일부러 대치시켜서 이렇게도 읽고, 저렇게도 읽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수치와 욕을 당하는 이유가 악 때문임과 동시에 목자 때문이라는 말도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에 예루살렘의 수치는 왕과 통치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남유다의 17대 왕과 18대 왕의 멸망을 예언하고 곧바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너희 왕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물론 왕들만의 잘못은 아니죠. 모든 백성들이 다 똑같이 죄인들이에요. 다만 백성을 대표하는 자로서 왕의 악을 고발하고 있는 겁니다. 왕은 권력을 누릴 권리도 있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질 의무도 있습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왕은 백성들의 가장 앞에서 본보기가 돼야 합니다. 축복의 본보기도 돼야 하고요, 심판의 본보기도 돼야 합니다. 이것이 왕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말년에 왕들을 잘못 만났어요. 줄줄이 사탕으로 악한 왕만 세워졌어요. 17대, 18대, 19대, 그리고 마지막 20대 왕까지. 전부 다 악한 왕들입니다. 그러니 나라가 제대로 서겠습니까?
동맹국들이 다 멸망했어도, 하나님만 붙잡으면 사는데, 여전히 다른 나라에 도움을 외치고 있고, 여전히 말씀을 청종하지 않습니다. 어려서 습관을 못 들였으면 성인이 돼서라도 습관을 들여야죠. 하다 못해 인생의 말년에라도 습관을 들이고 하나님을 찾으면 그 때에라도 반드시 돕는 은혜가 있을 것인데, 유다는 끝끝내 습관을 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청종하지 않고, 그대로 멸망합니다. 그때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오늘 본문 23절에는 그것을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에 비유하고 있어요.
우리 여자 성도님들, 아이를 낳는 것이 많이 고통스럽죠? 하지만 아이를 낳고 품에 안을 때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그런데 예루살렘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아니에요. 아이를 낳지도 않는데 그 고통을 당해요. 더구나 그 고통이 끝나지를 않습니다. 애는 안 나오는데 진통을 한 시간도 아니고, 두 시간도 아니고 열흘 동안 진통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런 소망도 없이 고통을 당하는 겁니다.
여러분, 안 믿는 자의 최후가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이 고통 속에 잠겨서 그대로 죽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청종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그 습관을 들여야 돼요. 어려서 못 했으면 지금이라도 그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 미리미리 습관을 들여서 혹시 미래에 고난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능히 그 고난을 이겨내고 세상 가운데 담대히 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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