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같이 되리라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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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6:1-15
“실로 같이 되리라”
2023. 5. 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실로 같이 되리라”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을 들은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이 때의 배경이 언제인가를 먼저 밝히고 있는데요. 1절에 보니까,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지금 보니까 이 때가 언젭니까?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 다시 말해서 여호야김이 왕이 된 때를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예레미야 25장은 여호야김 넷째 해에 말씀을 선포했거든요? 그러니까 3년 전으로 거슬러 온 거죠. 25장은 왕이 되고 4년째 되는 해였고, 26장은 그보다 3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3년 전, 여호야김이 왕이 된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여러분, 그런데 여호야김이 어떻게 왕이 됐는지, 기억하십니까? 여호야김은 남유다의 18대 왕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앞에 17대 왕이 여호아하스였어요. 여호아하스는 여호야김의 동생이었습니다. 막내동생이었어요. 왜 형이 아니라 막내동생이 왕이 됐는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막내동생이 왕이 됐습니다. 그런데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쳐들어와서 여호아하스를 포로로 끌고 가고, 그 자리에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방 나라의 왕이 유다의 왕을 무단으로 잡아가고, 또 무단으로 왕으로 세운 겁니다. 그렇게 해서 여호야김이 왕이 됐어요. 바로 이 때, 여호야김이 왕이 된 그 해에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겁니다.
이제 배경이 조금 이해가 되시죠? 애굽 왕 바로 느고에 의해서 여호야김이 왕이 된 해에 예레미야가 말씀을 선포하는데, 이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네가 성전에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특별히 누구를 향해서 선포하라고 하시는가 하면,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들에게 선포하라고 하셔요.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들, 여기에는 제사장들도 포함되고, 선지자들도 포함되고, 고관들도 포함되고, 일반 백성들도 포함됩니다. 율법을 따라서, 또 전통을 따라서 특별한 날이 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온 백성이 성전에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을 보면, 나름대로 백성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면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신앙이 좋은 게 아니죠. 지금 이 백성들은 신앙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게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내가 이만큼 신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한 마디로 보여주기식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모양만 있는 껍데기 예배를 드린다는 겁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고관들과 백성들 모두가 다 껍데기 예배를 드려요. 이것이 이때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예배는 잘 드리는데 그 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어요. 기도는 잘 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들어보면 다 중언부언하는 기돕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도 상달되지 않아요.
예레미야가 바로 그런 껍데기 예배자들을 향해서 말씀을 선포하는 겁니다. 자기 말을 선포하는 게 아니죠.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도 감하지 않고, 주시는 그대로 선포하는 겁니다.
자, 뭐라고 선포합니까? 3절을 봐 볼까요?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하나님이 먼저 선포하시는 말씀은, 너희가 회개하면 나도 뜻을 돌이키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기회를 주시는 것이죠. 너희가 지금이라도 회개해라. 그러면 나도 너희를 심판하지 않겠다.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요. 하지만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듣지 않아요. 그래서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그래서 밑에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사실은 기회를 많이 주셨습니다. 예레미야만 보낸 게 아니고,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셨어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선지자들뿐만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회개하도록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끝내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심판이 선포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 6절이 바로 그 심판의 메세지예요. 우리 6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제목이 “실로 같이 되리라” 인데요. 6절 말씀에서 가져온 겁니다. 실로 같이 되리라. 여러분, 실로가 어떤 곳일까요? 실로는 본래 성막이 있고, 언약궤가 있던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사사 시대까지만 해도 그랬어요. 엘리 제사장과 사무엘도 그래서 실로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4장에 가서 보면,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를 하고, 언약궤를 빼앗기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더이상 언약궤가 실로에 머물지 않아요. 블레셋 땅으로 옮겨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실로가 종교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몰락하게 돼요. 그리고 나중에 언약궤는 새로운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실로 주민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마음 아픈 일이죠. 그동안에는 실로가 가장 거룩하고 높은 곳이었는데, 이제는 이도저도 아닌 그냥 평범한 곳이 돼버렸어요.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인데, 블레셋과 전투를 하면서 집도 무너지도 땅도 황폐하게 돼버렸습니다. 완전히 몰락해버린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마치 이 실로와 같이 될 것이라고 선포를 하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성전이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황폐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성전이 사실 성전으로서 가치가 없죠.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이 떠나버리셨거든요. 하나님이 더이상 성전에 임재하지 않으셔요. 떠나버리셨어요. 그래서 성전으로서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아요. 이미 하나님이 떠나셨다고 예레미야가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고, 여전히 성전에 몰려와서 껍데기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거예요. 아예 이 성전이 실로와 같이 황폐하게 되리라고 직설적으로 강하게 선포하는 것이죠. “너희가 믿는 이 성전이 실로처럼 될 것이다. 언약궤가 떠나버린 실로처럼, 이미 하나님이 떠나셨다. 너희가 여기서 예배를 드려봐야 아무 소용 없다. 여기는 이제 곧 멸망할 거다.” 이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겠습니까? 화를 내겠죠. 그래서 8절에 보면, 백성들이 화를 내면서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8절에 보니까,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예레미야를 붙잡아 놓고 죽이려고 합니다.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밑에 9절도 봐 볼까요?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성전이 실로 같이 된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는 거죠.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어떻게 감히 성전을 건드려? 아주 그냥 죽여버려야겠다. 그래서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듭니다. 죽이려고.
이때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고관들이 백성들을 향하여 사형판결을 내립니다. 그것이 11절 말씀인데요.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
예레미야가 죽는 것이 합당하다고 사형판결을 내렸죠. 그런데 그 죄목이 뭡니까? 감히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한 죕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때 당시에 백성들의 신앙이 어떠한지를 알 수가 있어요. 지금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모독해서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모독해서 죄가 된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이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도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성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조상 때부터 복을 받고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아온 이 성이 중요하지, 하나님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예루살렘이 그동안에 가치가 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시는 집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미 하나님이 떠나버리셨는데 더 이상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실로에서 언약궤가 떠나니까 무가치한 땅이 돼버렸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안 계시면, 예루살렘도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그런데 그것을 백성들이 이해를 못 합니다. 하나님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땅에 집중을 해요. 아무 가치 없는 것을 붙들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 땅을 모독하는 예언을 했다고 사형판결을 내리는 겁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자기들 앞에 멸망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헛된 것만 붙잡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자칫 잘못하면 우리들도 이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비본질에 집중하면 우리도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그 선물에 집중하고 그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하나님이 떠나도 깨닫지 못해요. 그러다가 내가 받은 선물이 어느날 사라지면 엉뚱한 데다 화풀이를 합니다.
마치 박넝쿨이 말라죽자 하나님께 화를 냈던 요나처럼, 하나님께 화를 내고, 가족들에게 화를 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나 자신에게 잘못이 있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것을 잊고 살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실로가 아니라 거기 있는 언약궤를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성전이 아니라, 거기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성전이 무너져도 하나님만 거기 계시다면, 얼마든지 성전은 다시 세울 수 있어요. 우리 안에 주님만 계시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제목 “실로 같이 되리라.” 혹시 여러분 인생이 실로 같이 황무하게 되었습니까? 모든 것을 잃고 낙심이 되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님 한 분 만으로 우리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주님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껍데기 예배가 아니라 온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드리는 참된 예배를 드리며, 담대하게 이 땅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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