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목자의 최후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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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0:1-6
“거짓 목자의 최후”
2023. 2. 21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거짓 목자의 최후”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거짓 목자가 등장을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그 이름이 바로 등장을 하는데요. 1절을 보니까,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자, 누가 등장합니까? 제사장 바스훌이 등장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뭘 하는 사람입니까?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었어요. 성전의 총감독은 성전과 그 주변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총책임잡니다. 서열로 따지면, 대제사장 바로 밑에 서열이에요. 한 마디로 성전의 넘버 2죠.
이 사람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예레미야 19장 14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어디서 예언을 합니까?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예언을 하죠. 본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옹기를 깨면서 예언을 했다가, 장소를 옮겼어요. 여호와의 집 뜰에 와서 또 예언을 하는 겁니다. 밑에 15절에 그 예언의 내용이 있죠. 15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 성읍과 모든 촌락에 재앙을 내리실 거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이 예언을 바스훌이 들은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멘 해야죠. 그런데 바스훌은 노멘을 한 겁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한 말씀을 거부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밑에 2절에 보니까,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때리고 목에다가 나무 고랑을 채워서 베냐민 문 위층에 가둬버렸습니다. 물론, 본인이 직접 한 것은 아니고 아랫사람을 시켜서 했겠죠. 어쨌거나 바스훌의 명령으로 예레미야가 뚜드려 맞고, 목에 나무 고랑이 채워져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여기서 베냐민 문은 성전 북쪽에 있는 문을 말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베냐민 문 위층이라고 돼 있죠? 이것도 번역이 잘못 됐는데, 위층이 아니라 윗문이 맞는 번역입니다. 베냐민 문은 밖에서 성전 뜰로 들어오는 대문이라고 보면 되고, 윗문은 성전 뜰에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왜 윗문이냐면, 이 문이 더 지대가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요. 대문은 낮은 곳에 있고, 안으로 들어오니까 더 높은 곳에 현관문이 있는 거죠.
어쨌거나 이 윗문에다가 예레미야를 묶어놨어요. 목에 나무 고랑을 채워가지고. 예레미야는 그냥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한 것 밖에 없거든요.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범죄자처럼 뚜드려 맞고 결박이 됐어요. 기가 막히는 일이죠.
그래도 다행히 다음날 풀려납니다. 3절에 보니까,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서 풀어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하루만에 풀어주는데, 아마도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고, 겁을 주려고 했던 것 같애요. 때리고 하루 동안 잡아 놓으면 겁을 먹고 다시는 이상한 소리를 못하게 될 거라고 판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판단이 틀렸죠. 풀어주자마자 예레미야가 무슨 소리를 합니까?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엄청난 저주를 해요. 하나님이 너의 이름을 바꾸신다는 엄청난 말을 합니다. 여러분, 지난 시간에도 함께 봤었는데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의 이름이 뭘로 바꼈습니까? 죽임의 골짜기로 바꼈죠. 고대사회에서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라, 그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나중에는 지옥의 대명사로 쓰이게 됐잖아요. 게엔나, 라고 하는 골짜기의 이름이 지옥의 대명사가 됐어요.
오늘 본문에서도 이름이 바뀝니다. 바스훌에서 마골밋사빕으로. 여러분, 바스훌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파쉬후르” 라는 말이에요. 파쉬후르. 이 말은 “자유케 하다” 라는 뜻입니다. 좋은 이름이죠. 그런데 이 이름이 뭘로 바껴요? “마골밋사빕” 히브리어 발음으로는, “마고르 밋사비브” 라는 말인데, 이 말은 “사방에 두려움” 이라는 말입니다. 사방에 두려움이 둘러싸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 뜻이 굉장히 의미심장한 거죠. 본래는 그 이름이 자유케 하다, 아무런 어려움이나 족쇄가 없이 자유롭게 살던 사람이, 이제는 사방에 두려움이 우겨싸서 움직이지를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하고 정 반대죠.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목에 고랑을 채워서 결박을 했지만, 사실은 그 스스로가 두려움의 결박 속으로 자신을 가둬놓게 된 겁니다. 육신이 결박됐다고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에요. 그의 영이 결박될 때에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내가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내가 구원을 청하여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으실 때, 그의 인생은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스훌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성전의 총감독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였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둬놓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버림 받고,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한 사람의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그의 가족들과 그의 모든 친구들이 멸망하게 만드는 멸망의 통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4절부터 6절까지, 그 멸망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6절 말씀만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이 포로 되어 옮겨지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너의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그와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바스훌과 그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포로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한 누가 포로가 됩니까? “바스훌의 거짓 예언을 들은 모든 친구”들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스훌의 거짓 예언, 이것은 아마도 바스훌이 선지자도 아니면서 선지자 노릇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 권력에 취해서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거짓 예언을 남발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거짓 예언을 듣기 좋아한 자들까지도 같이 멸망을 시키시는 겁니다.
여러분, 마약을 파는 사람도 죄가 있지만, 마약을 사는 사람도 똑같이 죄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 사이비만 나쁜 게 아니라,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역시도 똑같이 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는 자유케 될 수 있어요. 요한복음 8장 32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시잖아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자유케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권력도 좋고, 명예도 좋지만, 그런 것으로 자유를 얻지 못해요. 오직 말씀, 오직 예수.
우리 목에 나무 고랑이 채워져 있든지, 베냐민 윗문에 결박되어 있든지, 우리가 어느 곳에서 어느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내 안에 말씀이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참된 자유와 평강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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