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15:1-4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2022. 12. 14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예레미야의 중보기도를 함께 봤는데요. 하나님께서 중보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가 기어이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했어요. 오늘 본문은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하나님의 답은 ‘NO 입니다. 예레미야의 중보기도를 단번에 거절하십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다. 여러분, 모세와 사무엘은 대표적인 백성의 중보자들입니다. 이 두 사람이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그리고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언제 기도했습니까?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숭배를 할 때 기도했죠. 출애굽기 32장 12절에,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했을 때, 그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언제 기도했을까요? 블레셋 군대가 침략했을 때 사무엘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블레셋을 쳐서 무찌르셨습니다. 사무엘상 7장 9절인데요.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아멘.
이처럼 한 사람의 중보자가 민족을 살릴 수 있습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바로 그 중보자였어요. 그런데 그런 위대한 중보자가 이 시대에 나타나더라도,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제 때가 너무 늦었어요. 아무리 대단한 기도의 사람이 나타나도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예레미야의 기도로 연명해 왔는데, 예레미야의 기도도 듣지 않으시니까 더는 방법이 없죠.
기도가 끊어진 민족에게는 소망이 없어요. 끔찍한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절을 봐 볼까요?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네 가지의 것으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음과 칼과 기근과 포로됨, 이 네 가지로 백성들을 심판하셔요. 하나님의 심판에는 자비가 없습니다.
죽음과 칼과 기근과 포로됨, 이 네 가지로 그물을 짜서 누구 하나 피해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이것을 밑에 3절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시는데요. 3절 말씀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이 말씀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죽이는 칼처럼 올 것이고, 그 칼에 죽은 시체를 개와 새와 짐승이 남김없이 먹어치우리라는 비유적인 표현이에요. 다시 말해서 시체조차도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심판당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라.” 성경에서는 종종 철저한 심판을 나타낼 때 네 번을 반복해서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고, 또 요엘서 1장 4절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요엘서 1장 4절에,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메뚜기떼가 덮쳐서 곡식을 다 갉아먹는데, 메뚜기떼만 오는 게 아니라,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 이 네 가지 떼가 순차적으로 와서 갉아먹어 버려요. 이처럼, 네 번에 걸쳐서 심판하신다는 것은 철저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네 가지로 벌하리라는 말씀 역시도, 철저한 심판을 의미하고 있어요. 이 심판이 이제 곧 내리게 되는데, 도저히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예레미야의 중보기도였는데, 그것마저도 막혔어요. 모세와 사무엘이 와도 안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레미야도 이제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근본적으로 구원은 누가 얻는 겁니까? 각 개인이 얻는 것이죠. 다른 누가 나를 구원할 수 없어요. 구원은 개인이 자기 스스로 얻는 겁니다. 어떻게요? 회개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거예요.
아무리 선지자들이 중보기도를 해줘도, 내가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내가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 다시 보면, 백성들이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라고 질문을 하는데요. 사실은 이 질문의 답이 분명해요. 여러분, 백성들이 살려면 어디로 나아가야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 앞이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으로 가서 그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해야만 살 수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백성들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과 칼과 기근과 포로됨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하나님이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
하나님이 므낫세의 죄 때문에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시는데요. 므낫세는 훌륭한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너무나도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버지인 히스기야가 없앤 바알 제단을 다시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위해 제단을 쌓은 왕이었어요.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겁니다.
그런데 그 죄가 므낫세 개인만의 죄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흐르고 흘러, 온 백성이 그 죄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8장 10절에 그것을 증언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밭을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온 백성이 다 범죄하고 있다는 겁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죠.
분명하게 이 백성들은 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대가가 바로 철저한 심판이에요. 백성들에게 심판이 들이닥쳐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또 일부는 포로로 끌려가고, 또 어떤 이들은 세계 여러 민족으로 흩어져 난민 신세가 될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자의 최후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 심판은 멈출 수가 없어요. 모세가 와도 안 됩니다. 철저하게 파괴되고 파괴되어서 멸망하는 것이 유다의 정한 운명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결국에 죽음 앞으로까지 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굴곡이 있고, 또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 문제의 해답이 우리에게 있어요. 그 해답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질문하게 될 때에, 그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중보기도나 위로나 구제가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는 없어요.
나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뿐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참되게 예배하며 진정으로 회개할 때만이 주님이 나에게 피할 길을 주십니다.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만이, 주님이 나에게 은혜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 인생의 해답이신 예수님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 내 삶에 묶인 것이 풀어지고, 막혔던 것이 뚫리는 형통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