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21:11-14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2023. 3. 10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에게 전하는 메세지입니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이 지금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오니까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서 하나님께 기도 좀 해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거기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대답을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함께 본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너희에게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두 길이 있는데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것이었죠. 마땅히 생명의 길을 골라야 하는데, 문제는 그 길이 너무나도 비겁하고 불명예스러운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 밖으로 나가서 항복하라는 것이었어요. 너희가 항복해야 산다. 안 그러면 칼에 죽고, 기근에 죽고, 전염병에 죽을 것이다. 이런 메세지를 예레미야가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메세지에 이어서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새롭게 메세지를 시작하는데요. 11절에 보니까,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
이것은 유다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말이라기 보다는, 유다 왕조를 향해서 선포하는 말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특별히 시드기야 왕을 비롯하여 왕궁에 사는 왕족들에게 선포하는 거죠.
밑에 2절에 뭐라고 선포합니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지금 보면 유다 왕의 집을 다시 무슨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요? “다윗의 집”으로 부르고 있죠. 여러분, 왜 유다 왕의 집이라고 불러놓고 또 다윗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지금 시드기야와 너무나도 비교되는 영광스러운 조상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시드기야는 바벨론 군대에 둘러싸여서 풍전등화의 위기 가운데 놓여 있어요. 그러나 그들의 조상인 다윗은 어땠습니까? 전쟁을 했다 하면 이기고, 아무리 어려운 적군이라도 능히 쳐서 승리하는 위대한 왕이었어요. 둘이 너무 비교되지 않습니까?
위대한 다윗의 혈통을 이었는데, 지금 시드기야는 너무나도 처량해요. 뿐만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지만,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마음에 버림을 받은 잡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정의롭게 판결을 했고,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져주었어요.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라는 명령이에요. 과거 다윗처럼 너도 정의롭게 판결하고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져주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무슨 엄청난 것을 바라시는 게 아니에요. 그저 왕으로서 할 것을 하라는 거예요.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고. 이게 뭐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런데 이것마저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드기야와 그의 집이 무슨 말을 합니까? 밑에 13절에 보니까,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13절을 우리가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골짜기와 평원 바위의 주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시드기야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죠. 지금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기도 좀 해달라고 요청까지 할 정도로 급해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태평하게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하고 있어요. 누가 내려오기는 누가 내려옵니까? 바벨론이 내려오죠.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을 하십니까? “나는 네 대적이라.” 하나님께서 유다의 대적이 되셔서 이곳에 내려와 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 볼 단어가 있는데요. 바로 “내려와서” 라는 단업니다. 내려와서. 지금 어디로 내려온다는 걸까요? 예루살렘이죠. 예루살렘에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서 예루살렘을 말할 때는 항상 “올라간다”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올라와, 올라오니. 이런 식으로 올라간다는 표현을 써요. 이것은 무조건입니다. 무조건 예루살렘은 올라가는 장소지, 내려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집이 있는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북쪽에 있든지 남쪽에 있든지, 지대가 높든지 낮든지, 이런 것은 상관없이, 무조건 예루살렘은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 높은 곳이에요. 그래서 예루살렘은 올라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성경에서는 예루살렘을 갈 때 항상 올라간다는 표현을 씁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하고, 동쪽에서 오는 사람도 올라간다고 표현해요. 그래서 열왕기상 14장 25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4장 25절에 보니까,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애굽의 왕 시삭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쳤다는 것입니다. 또 열왕기하 24장 10절을 보면요. 여기도 올라왔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열왕기하 24장 10절에,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여기도 역시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고 말씀합니다. 애굽은 예루살렘보다 남쪽에 있고, 바벨론은 북쪽에 있어요. 그런데 북쪽이든 남쪽이든 상관없이 모두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세상 어느 곳보다 높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본문에서 유다 왕의 집은 “내려온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여러분, 지금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왜 예루살렘에 내려온다는 표현을 쓸까요?
이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유다 왕의 집이 이제는 더 이상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성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본다면, 예루살렘에 올라오는 것이 맞아요. 그런데 신앙적인 것을 빼고, 단순하게 지리적으로만 본다면 내려온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이 북쪽에서 쳐들어오는데, 예루살렘 북쪽에는 감람산이 있어요. 감란산을 넘어서 산 밑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본다면, 내려온다고 하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결국에 오늘 본문에서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라고 하는 말은, 신앙이 없이, 그저 지리적인 것만을 놓고 하는 말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성으로 여기지 않아요.
과거에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골리앗도 물리치고, 적군도 물리쳤지만, 이제는 다 옛말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생각조차도 없어요. 그래서 예루살렘은 더 이상 높은 곳이 아닙니다. 감람산보다 낮고, 바벨론보다 낮고, 적군보다 낮아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요. 이 내려가다 라는 단어가 기록된 오늘 본문이 예레미야 21장 13절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내려가다 라는 단어가 욥기 21장 13절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장절이 똑같죠. 욥기 21장 13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스올에 내려가느니라.”
어디로 내려가요? 스올에 내려가느니라. 스올은 죽어서 가는 지옥을 가리킵니다. 지금 욥이 하는 말이거든요? 악인들은 잠깐 행복하게 지내지만 죽으면 스올에 내려간다는 말이에요.
이 욥기의 말씀과 오늘 본문의 말씀이 장절이 똑같은 것이 우연일까요?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교훈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땅이 세상에서 가장높은 곳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스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삶이 지옥과도 같은 삶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이것이 유다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싸워야 되는데, 그러지를 않아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 그가 물맷돌을 잘 던져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에 물맷돌 한 방에 이길 수 있었던 겁니다.
불가능한 싸움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승리합니다. 반대로 이길 싸움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지는 겁니다. 지금 유다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아요. 자기들 스스로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요. 그러니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승리할 길은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뿐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이게 아니라, “누가 올라와서 우리를 치리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곳은 세상 그 어떤 곳보다 높은 곳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곳이고,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높고 거룩한 곳에서 산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담대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