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를 깨뜨리라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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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19:1-15
“옹기를 깨뜨리라”
2023. 2. 17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옹기를 깨뜨리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토기장이의 비유를 함께 봤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다가 마음에 안 들면 뭉개버리고 다시 만들 수 있죠. 토기장이가 주인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토기장이의 비유를 이어서 또 다른 비유로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토기장이가 만든 옹기를 예레미야가 돈을 주고 사게 됩니다. 오늘 본문 19장 1절을 봐 볼까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라고 명령을 하셔요. 옹기를 사면 이제 그 주인이 바뀌는 거죠. 주인이 토기장이에서 예레미야로 바뀌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는 예레미야가 옹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주인이니까 어떻게 하든지 자기 마음인 거죠.
자, 그런데 옹기를 사고 나서 이제 뭘 합니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어딘가로 가라고 명령을 하시죠. 밑에 2절에 보니까,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어디로 가라고 하셔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라고 하십니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골짜깁니다. 그런데 이곳에 큰 소각장이 있어서, 동물이 사체나 쓰레기를 갖고 와서 불에 태웠어요. 그런데 여기서 쓰레기만 태워야 되는데, 쓰레기만 태운 게 아니라 또 뭘 태웠는가 하면, 사람을 태웠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내용이 나오죠. 밑에 4절과 5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백성들이 뭘 했습니까? 다른 신들에게 분향을 하고,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을 채웠어요. 인신공양을 한 거죠. 사람을 죽여서 신에게 바친 겁니다. 또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번제로 바쳤습니다. 자기 아들들을 불에 태워서 죽인 겁니다.
이 일들이 바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일어났어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혹은 힌놈의 골짜기라고도 하는데, 히브리어로 “게힌놈” 이라고 그래요. 게힌놈. 그런데 이것을 헬라어로는 뭐라고 부르냐면, “게엔나” 라고 합니다. 게엔나. 이것으로 영어식으로 하면 “게헨나”가 돼요.
이 게엔나는 신약에서 지옥을 일컫는 말로 사용이 됩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 보면,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여기서 지옥이 바로 게엔나입니다. 게엔나를 우리말로는 지옥이라고 번역을 했고, 영어성경에는 ‘헬’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fire of Hell’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본래는 게엔나가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장이 있는 계곡의 이름이었는데, 이제는 그곳이 영원한 형벌을 받는 지옥의 이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백성들의 시체로 가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봐 볼까요? “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죽임의 골짜기로 그 이름이 바뀌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름이 바뀌는 것은 정체성이 바뀌는 겁니다. 단순히 이름만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는 거예요.
보통 성경에서 이름이 바뀔 때는 더 좋은 이름으로 바뀝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사래가 사라가 되고,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처럼, 더 좋은 이름으로 바껴요. 더 좋은 비전과 성품을 갖고 발전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어떻습니까? 더 나쁜 이름으로 바뀌죠.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죽임의 골짜기로, 완전히 그 정체성이 바뀝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이 골짜기가 지옥의 대명사로까지 불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의 장소가 심판의 장소로 바뀌게 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대가가 어떤 것인가를 철저하게, 그 이름까지 바뀔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미 예레미야 7장에서 한 번 나왔던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7장 3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이처럼, 이미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죽임의 골짜기로 바뀔 것이라고 경고를 하셨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인신공양을 한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예레미야를 골짜기로 보내셨어요. 그것도 혼자 보낸 게 아니라,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같이 보내셨어요. 이 어른들은 백성들의 리더 그룹입니다. 리더 그룹을 함께 골짜기로 보내서 그곳에서 심판의 메세지를 듣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단지 말로만 하지 않아요. 아까 서두에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에게서 뭘 사왔죠? 옹기를 사 왔죠. 옹기그릇을 하나 사서 골짜기에 왔는데, 이 옹기를 갑자기 깨버립니다. 오늘 본문 10절과 11절의 내용인데요. 10절과 11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여기에서 옹기를 왜 샀는지 그 이유가 나오죠. 함께 가는 어른들의 목전에서 이 옹기를 깨버리기 위해서 산 것이죠. 사람이 옹기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붙여서 완전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이 백성과 성읍을 무너뜨리겠다는 메세지를 주기 위해서 이런 명령을 하신 겁니다.
한 번 깨진 옹기는 다시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본드로 잘 붙여도 소용이 없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그 심판에 죽어나간 백성들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해요. 무너진 성전이 다시 세워지지도 못하고, 성벽도 다시 세워지지 못합니다.
여러분, 성전과 성벽을 다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새로운 세대가 다시 기초부터 새롭게 쌓아야 되겠죠. 이미 심판 당한 기성세대는 할 수 없어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씀처럼, 이 땅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수족관에 물을 다 빼서 씻고 새로 물을 채우듯이, 오염된 이 땅을 피로 씻고, 새 노래로 노래하며 예배하는 다음세대가 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그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밑에 13절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이 골짜기에서만 끝나지 않죠.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 곳과 그 가운데 주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읍으로 도벳 같게 하 것이라.”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 성읍 전체로 확장됩니다. 그런데 또 예루살렘으로 끝이 아니에요. 온 유다 전체로까지 확장됩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선언한 모든 재앙이 이 성읍과 어디에 내려요? 그 모든 촌락에 내리게 됩니다. 모든 촌락, 유다의 모든 땅에 재앙이 내리는 것입니다. 이는 일부 백성들의 죄 때문에 무고한 백성들까지 연대책임을 지는 게 아닙니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모든 백성이 이 죄에 동참했기 때문에 모든 촌락에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죄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죄인 곁에 있으면 무죄한 자도 점차 죄에 물들어요. 마을에 100명 중에 99명이 죄인이면 남은 한 명이 버틸 수 있을까요? 반대로, 의인 99명이 있고 죄인 한 명이 있다고 한다면, 이 죄인 한 명이 의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인이 99명이 있어도 죄인 한 명만 있으면 그 한 명 때문에 모두가 다 죄인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죄에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죄가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의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데, 죄를 짓는 것은 너무나도 쉬워요. 그래서 바울도 이렇게 탄식을 했어요. 로마서 7장 21절에,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바울이 탄식합니다. 나는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데, 내 안에 악이 함께 있다. 그래서 내가 깨어있지 않으면 언제라도 내 안에서 악이 활동하게 될 수 있다. 이것을 탄식하고 있어요. 바울조차도 이렇게 탄식을 하면서 악을 경계했습니다. 우리는 더 철저하게 경계해야겠죠. 그러지 않으면 언제라도 악에 넘어갈 수 있어요.
유다 백성들은 모두가 악에 넘어갔습니다. 다들 악을 행하는데, 안 하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예요. 그러니까 다 거기에 빠져드는 겁니다. 누구 한 사람 깨어서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이 땅에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악을 경계하고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 동참하게 되고, 멸망에 처하게 됩니다. 내 옆에서 누군가가 악을 행한다면, 그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저 양이 주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깨진 옹기그릇이 되지 않도록, 돌이킬 수 없는 죄악에 빠져들지 않도록, 늘 깨어서 기도하며, 서로를 위하여서 중보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함께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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