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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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2:10-19
“왕들의 멸망”
2023. 3. 1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왕들의 멸망”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유다의 왕들에 대하여 그들의 운명을 예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레미야가 직접 시드기야 왕 앞에서 말씀을 선포했었는데요. 오늘 본문은 시간을 거꾸로 돌아가서, 과거에 선포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서를 비롯한 선지서는 이처럼 시간이 뒤죽박죽으로 기록이 돼 있어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선지서는 이렇게 시간이 미래로 갔다가 과거로 갔다가 왔다갔다 합니다.
어쨌거나 오늘 본문은 시드기야 왕 이전의 왕들에 대한 예언인데요. 오늘 본문인 10절부터 마지막 30절까지 총 3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에 두 명이 나와요.
먼저 등장하는 왕은 남유다의 17대 왕인 여호아하스입니다.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20대 왕이었으니까 시드기야보다 삼 대 앞의 왕이에요. 남유다의 17대 왕 여호아하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여호아하스 왕이 시드기야보다 동생이라는 것입니다.
남유다의 16대 왕이 요시야 왕이었는데, 요시야에게 아들이 네 명 있었어요. 요하난, 여호야김, 시드기야, 여호아하스. 이렇게 네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남인 요하난은 어렸을 때 죽었고, 남은 세 아들 중에 왕이 되어야 하는데, 형들을 다 놔두고 막내아들인 여호아하스가 왕이 됐어요.
왜 형들 대신 막내아들이 왕이 됐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성경에는 백성들이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왜 백성들이 여호아하스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여호아하스가 요시야의 뒤를 이어서 17대 왕이 됐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아하스에 대해서 뭐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까? 10절을 봐 볼까요?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고 누구를 위하여 슬피 울라고 하십니까? “잡혀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고 하십니다. 이 잡혀간 자가 바로 여호아하스 왕입니다. 왜 여호아하스가 잡혀간 자인가 하면, 그가 왕이 된지 3개월만에 애굽에 포로로 잡혀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으로서 최단기간 다스렸어요. 3개월밖에 못 다스렸습니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고 3개월이 지났을 때 애굽의 바로 느고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여기서 패배하는 바람에 포로로 끌려가요. 지금 이것을 예언하고 있는 겁니다.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여호아하스가 포로로 끌려가는데,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잡혀간 데서 죽어요. 이것이 열왕기하 23장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열왕기하 23장 3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여호아하스가 애굽으로 잡혀가서 거기서 죽었습니다. 이것이 남유다 17대 왕의 최후입니다. 오늘 본문 11절과 12절에 이것을 계속 반복해서 예언하고 있어요. 11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 본문에는 여호아하스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요. “살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살룸은 여호아하스의 본명입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그리고 여호아하스는 왕이 될 때 받는 통치명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왕들도 보면 왕으로서의 이름이 있고 본래 이름이 있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세종대왕의 이름이 뭔지 혹시 아십니까? 세종대왕은 우리가 잘 아는데, 본명이 뭔지는 잘 모르죠. 세종대왕의 본명은 “이도”입니다. 외자예요. 전주 이씨에 옷소매 도 자를 써서 이도.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에 보면, 왕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성경이 잘못돼서 그런 게 아니라 왕으로서의 이름과 본명을 번갈아서 부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어쨌거나 여호아하스가 애굽으로 잡혀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죽으리라고 예레미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누가 왕이 되는가 하면, 여호아하스의 형이 왕이 됩니다. 둘째 형이죠. 둘째 형인 여호야김이 왕이 돼요. 오늘 본문 13절부터 바로 이 여호야김 왕에 대한 예언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이 어떻게 왕이 됐는가 하면, 그가 스스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왕으로 세운 겁니다. 아까 제가 열왕기하 23장 34절을 읽었는데요. 이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이 말씀에 보면, 바로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가면서 그 자리에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웠어요. 그리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꿔버립니다. 내정간섭이죠. 다른 나라 왕이 우리 나라 왕을 자기 맘대로 세워 논 거예요. 거기다가 이름까지 바꿔 버렸어요. 이것은 나라가 애굽의 속국이 된 겁니다.
주권도 뺏기고 경제도 뺏기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니죠. 만약에 여러분이 여호야김 왕이라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바로 느고가 와서 내 동생을 잡아가고, 나를 왕으로 세워놓는다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굉장히 치욕스럽지 않겠어요? 그래서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정상이죠.
그런데 여호야김은 정상이 아니에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좋아했던 것 같애요. 그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성경에 없지만, 그가 왕이 되고나서 하는 행동을 보면, 왕이 된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열왕기하 23장을 다시 보면, 바로 느고가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그에게 조공을 바치게 했는데요. 은 백 달란트와 금 백 달란트를 바치게 했습니다. 백 달란트면 무게로 3.4톤입니다. 은 3.4톤과 금 3.4톤, 합쳐서 거의 8톤에 가까운 은금을 바치게 한 겁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이 두말 안 하고 이것을 갖다 바쳐요.
열왕기하 23장 35절에 이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조공을 바치려고 백성들에게서 돈을 걷었습니다. 안 그래도 나라가 전쟁에 패배해서 휘청거리고 있는데, 백성들이 돈이 어딨겠어요? 얼마 없는 것까지 싹싹 긁어들인 겁니다. 은 백 달란트와 금 백 달란트를 채워서 바로 느고에게 바친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안 그래도 백성들에게서 돈을 걷어들였는데, 오늘 예레미야 본문에 보면 여호야김이 무슨 짓을 합니까? 13절을 봐 볼까요? 13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여호야김이 조공을 바치고 나서 갑자기 집을 세웁니다. 건축을 한 거죠. 자기 왕궁을 더 화려하게 만들려고 건축을 하는데, 어떻게 건축을 했어요? “불의로” 했다는 것이죠. 정당하게 한 것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그 집을 세우고, 또 일꾼들을 고용해놓고 품삯을 주지 않았어요.
밑에 14절을 보면, 어떤 식으로 건축을 하였는지가 나옵니다. 1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을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왕이 나라의 형편과 백성들의 고통은 나몰라라 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있어요. 건축이 꼭 필요해서 하는 게 아니고, 나를 위하여, 자기 욕망을 위해서 건축을 해요.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짓고, 창문도 만들고, 특별히 백향목을 써서 만들죠. 나라에 돈이 많을 때야 비싼 백향목으로 건축을 하겠지만,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마당에 백향목을 수입해 온다는 것이 정상적인 일입니까? 비정상이에요. 여호야김이 도대체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그 아버지와 너무나도 비교가 돼요.
밑에 15절에 보면, 여호야김을 그의 아버지와 비교를 하고 있는데요.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여호야김의 아버지인 요시야를 지금 말하고 있는데요. 요시야가 정말 위대한 왕이었죠. 성경은 요시야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흠 잡을 데가 없는 왕이었어요. 특히 요시야 때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었는데, 이 율법책을 가지고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어요.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고, 우상제단을 파괴하고, 유월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기뻤던지, 열왕기하 23장 25절에서는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아멘.
요시야 왕을 정말 대단하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더라. 그만큼 요시야가 율법을 지키고 정의를 행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로 위대한 왕이에요. 그런데 그의 아들들을 보세요. 막내아들인 여호아하스나 둘째 아들인 여호야김이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막내아들은 왕이 된지 3개월만에 애굽에 끌려가 죽고, 둘째 아들은 왕이 되더니 자기 욕망을 위해서 불의를 행해요.
어떻게 그토록 정직한 왕에게서 이런 악한 아들들이 났을까요? 미스테립니다. 요시야가 개혁하고 부흥시킨 신앙이 어떻게 아들들에게는 전혀 전수가 되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을 잘 물려줘야 됩니다. 신앙보다 좋은 유산이 없어요. 집문서 물려주기 전에 신앙 먼저 물려줘야 됩니다. 안 그러면 여호야김처럼 다 탕진하고, 흥청망청 살다가 망하는 겁니다. 여호야김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합니까? 오늘 본문 19절에 그의 최후가 나와요. 19절에 보니까,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비참한 최후를 당해요. 적군의 칼에 죽고 예루살렘 밖으로 시체가 버려집니다. 실제 역사서를 보면, 여호야김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예루살렘 밖에 시체가 던져졌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고 되어 있는데, 무덤에 매장된 것이 아니고, 그냥 길바닥에 버려진 겁니다.
한 나라의 왕인데 너무나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자의 결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돼요. 아버지는 형통했는데, 자식들은 멸망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가진 것이 적어도, 풍족하지 않아도,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하며, 정직하게 신앙을 지키고, 나의 부모가 물려준 신앙을 나의 자녀에게 물려주며 굳건한 믿음의 가문을 이어감으로 말미암아 자자손손 형통함을 누리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