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받지 못하는 양육자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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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15:10-21
“양육 받지 못하는 양육자”
2022. 12. 27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양육 받지 못하는 양육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탄식하는 기도와 그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굉장히 고생이 많죠. 선지자 사역을 하고는 있는데, 백성들은 듣지를 않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대적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그래요. 실제로 예레미야 11장 19절에 보면,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까? 예레미야 11장 19절을 보면요. “나는 끌려서 도살 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자신이 마치 도살 당하러 가는 어린 양과 같다고 말할 정도로, 아나돗 사람들이 끔찍한 살인계획을 꾸몄어요. 다행히 하나님이 미리 알게 하셔서 그것을 피할 수가 있었죠. 그런데 이 외에도 예레미야가 모진 수모와 핍박을 많이도 당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레미야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꼭 매국노가 하는 일 같거든요. 나라가 망할 거라고 하고,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고 하고, 안 좋은 소리만 하니까 누가 좋게 보겠습니까?
그러니까 도저히 사역이 안 되는 겁니다. 사역이 너무 힘들어요. 그냥 몸만 힘들면 괜찮은데, 영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같이 영적으로 교제할 사람도 없고, 도와달라고 부탁할 사람도 없고,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람은 많은데, 내 사람이 없어요. 교제할 사람, 같이 동역할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바로 거기에서 무너지는 겁니다. 육신적으로도 힘든 데다가, 영적으로도 너무 외롭고 힘드니까 더이상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거예요.
지금 예레미야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너무 지쳤어요. 주저앉아서 다시 일어날 힘이 없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이렇게 하소연을 합니다. 10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지금 보면, 예레미야가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하소연을 하고 있죠.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이 말을 보다 히브리어 원문에 맞게 번역하면 이런 말입니다.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로 낳으셨도다.”
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낳는 바람에, 내가 온 세계와 싸우는 자가 됐다는 겁니다. 왜 나를 그렇게 낳으셔가지고, 일생 동안 싸우게 만드십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저주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원망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레미야를 낳은 것은 그의 어머니지만, 애초에 그를 지으신 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이 그를 지으셨죠. 하나님이 그를 낳으신 겁니다. 예레미야 1장 5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에, 모태에 생겨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택하셨어요. 그러니까 결국에 예레미야가 온 세계와 다투는 자로 태어난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낳으신 거예요.
예레미야가 그것을 하나님께 하소연 하는 것입니다. 왜 나를 이렇게 낳으셨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을 하십니까? 오늘 본문 11절부터 14절 말씀이 하나님의 대답인데요. 11절을 봐 볼까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아멘.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십니다. 첫 번째는 내가 너를 강하게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네가 복을 받게 할 것이다. 세 번째는, 원수들이 너에게 간구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어요.
강하여지고, 복을 받고, 그리고 예레미야와 다투고 있는 원수들이 예레미야에게 살려달라고 간구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약속이죠. 사실 이 중에 하나만 이루어져도, 엄청난 겁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위로를 받지 못해요. 엄청난 약속을 세 가지나 받았는데도, 여전히 그의 마음이 낙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5절부터 18절까지, 예레미야가 기도하는데요. 요약하면 이런 겁니다. 하나님,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돌봐주세요.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마시고, 좀 보살펴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고 있어요.
오늘 제목이 뭐였습니까? “양육 받지 못하는 양육자” 예레미야가 백성들을 양육하는 양육자로 일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양육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예레미야도 양육을 받아야죠. 누가 돌봐줘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요. 친구도 없고, 동역자도 없고, 심지어 자기 고향 사람들까지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누가 나를 돌봐주겠어요.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돌봐주셔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이 돌봐주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돌봐주지 않으시면 누가 나를 돌봐줍니까? 나를 좀 돌봐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이렇게 마지막에 기도해요.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예레미야의 심정이 느껴지십니까? 내가 이렇게 아프고 상처가 깊은데, 왜 하나님, 나를 고쳐주지 않으십니까? 왜 나를 돌봐주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뒤에 하나님이 마치 나에게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다고 말합니다.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이것은 시내에 당연히 물이 있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와서 보니까 물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당연히 있어야 되는데,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에게 생수를 공급해주신다고 믿었는데, 공급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보면, 하나님이 일찌기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내가 생수의 근원인데, 왜 나한테서 생수를 안 찾고 엄한 데 가서 웅덩이를 파느냐? 이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생수의 근원이셔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셔야죠.
그런데 예레미야에게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처럼 생수를 공급해주지 않으십니다. 양육을 해주지 않으셔요. 돌봐주시지를 않아요.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고, 감옥에도 갇히고,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내다버린 자식인 것처럼, 혹시라도 나를 잊어버리셨나? 싶어서 나를 기억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예레미야와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앞에서는 환하게 웃으면서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고, 어려운 사람들 찾아가서 돌봐주지만, 정작 자신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이 시대의 담임목사님들, 교역자들, 그리고 각 가정의 가장들, 크고 작은 한 공동체의 리더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에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돌봄을 받아야 하는데. 누가 그들을 돌봐줄까요? 당연히 우리 하나님이 돌봐주시겠지만, 다른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을 필요가 있어요.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서도 말을 하거든요. 17절에 보니까,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에 앉지 않고, 홀로 앉아 있다. 성도의 교제가 없다는 것이죠. 그것이 너무도 외롭다는 겁니다.
이처럼,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교제도 중요해요.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생수는 말씀과 성령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성도의 교제도 생수이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생수이고, 친한 사람들과의 기쁜 모임자리도 생수입니다. 그런 것 하나하나가 다 우리가 살면서 누려야 하는 것들이에요.
그런 것에서 우리가 위로를 얻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됩니다. 사역자들도, 가장들도, 리더들도 다 연약한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에, 양육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그들을 양육할까요? 누가 그들을 돌볼까요?
바로 여러분이 하셔야 됩니다. 자녀만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남편, 아내, 여러분의 부모님, 담임목사님, 그들을 돌봐주세요. 그들이 내가 모르게 아파하지는 않는지, 말 못할 고민이 있지는 않은지, 관심을 갖고 돌봐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홀로 앉아있지 않게, 외로움 가운데 있지 않게,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함께 앉아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게, 여러분이 돌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한 사람의 양육자가 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양육하고 돌보고, 위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국동제일교회가 건강하고 튼튼한 교회,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교회로 일어서는데, 앞장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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