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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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2:1-9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2023. 3. 14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계속해서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이전까지는 시드기야에게 직접 선포한 게 아니라, 시드기야가 보낸 두 사람을 통해서 선포를 했고, 그 말을 두 사람이 돌아가서 왕에게 전달을 했죠.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제는 아예 예레미야가 직접 가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봐 볼까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자,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유다 왕의 집으로 보내셔요. 유다 왕의 집, 왕궁이죠. 왕궁으로 가서 이 말을 선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왕궁으로 갑니다.
밑에 2절을 보면, 직접적으로 왕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2절을 봐 볼까요?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직접적으로 유다 왕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 같죠?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실제로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 앞에서 말씀을 선포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그냥 왕궁 앞에서 선포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왕이 없는데 ‘왕이여’ 라고 말을 하지는 않겠죠. 버젓이 왕이 있는데 엉뚱한 사람 보고 ‘왕이여’ 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마도 예레미야가 지금 시드기야 왕 앞에서 직접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봅니다. 자, 그런데 2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왕에게만 하는 말씀이 아니죠. 또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신하와 백성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죠.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지난 시간만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시드기야 왕과 그 왕족들에게만 선포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말씀을 들을 대상이 확대됐습니다. 왕뿐만 아니라, 그 밑의 신하들과 백성들까지 전부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이것은 그만큼 지금 선포할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자, 3절을 봐 볼까요? 무슨 말씀을 선포하는지, 3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확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아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하고,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야 하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에요.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백성들이 그렇게 살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정의와 공의는 내팽개치고,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이 탈취해요. 또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고 학대합니다. 그런데 이런 짓을 누가 하고 있어요? 왕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신하들도 하고 있고, 백성들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왕과 신하와 백성들 모두 이 말씀을 들으라는 거예요. 너희들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하는 이 말씀을 너희가 다 들으라는 겁니다.
사실 이 3절의 말씀은 오늘 본문 위에 예레미야 21장 12절의 말씀을 반복하면서 보다 강조하고 있는 말씀인데요. 예레미야 21장 12절을 보면, 비슷한 말씀을 먼저 시드기야 왕에게 했었습니다. 12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오늘 하시는 말씀과 비슷한 말씀을 하셨죠. 그런데 그 말씀을 오늘 반복하는 겁니다. 왕에게만이 아니라 신하들과 백성들 모두에게 이 말씀을 보다 강조해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절 말씀에 보면,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가 나오죠. 여기서 또 번역상의 아쉬움이 있는데요. 이방인,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이 어떤 사람을 가리킬까요? 이방민족을 가리킬까요? 오늘 본문에 나온 이방인은 히브리어로 “게르” 라고 합니다. 게르는 성경에서 보통 나그네나 객이라는 말로 번역을 합니다. 그리고 물론 여기에는 이방민족 사람이라는 의미도 포함이 돼요. 그런데 보다 정확하게는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서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서 ‘난민’이죠. 외국에서 와서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 이것은 유대민족이냐 이방민족이냐를 떠나서 집도 없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종합적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을 돌봐야 된다고 말하고 있어요. 신명기 24장 17절을 보면, 여기에는 이렇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신명기 24장 17절에,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여기서는 ‘객’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객과 함께 세트로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죠. 고아와 과부가 항상 뒤에 따라와요.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이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아무런 힘이 없어서 빼앗기기만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나라가 나서서 구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시편 146편 9절에는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편 146편 9절에,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여기서는 나그네라고 표현을 했어요. 그리고 역시나 고아와 과부가 함께 따라옵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사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유다의 상황이 바로 이런 상황이에요. 소망이 없어요. 악순환이죠.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더 버티지 못하고 죽습니다. 정직한 자는 점점 사라지고, 악한 자만 살아남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에 유다에는 정직한 자가 아무도 없어요.
악하고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아야 하는데, 눈앞의 재물과 명예과 권력에만 집중합니다. 이런 사회는 금방 멸망하고 말아요.
그래서 오늘 본문 5절부터 심판의 메시지가 시작이 되는데요. 5절에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이 집을 황폐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는데요. 그 앞에 무엇을 두고 맹세를 하셔요? “나를 두고” 맹세를 하시죠.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걸고 맹세를 하시는 겁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이 맹세를 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거스를 수 있어야 돼요. 하나님보다 높은 누군가가 하나님의 존재를 거스르고 이 맹세를 엎어야 됩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보다 높을 수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죠.
결국에 이 맹세는 아무도 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다 왕의 집은 반드시 황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황폐하게 되는가?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가고 레바논의 머리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
유다 왕의 집이 본래는 하나님께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와 같았어요. 그런데 이것을 광야와 같이, 주민이 없는 성읍 같이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길르앗과 레바논은 백향목의 원산집니다. 백향목이 유명해요. 우리나라에서 충주 하면 사과가 떠오르고, 의성 하면 마늘이 떠오르는 것처럼, 길르앗과 레바논 하면 자동적으로 백향목이 떠올라요.
그런데 유다 왕의 집이 이 크고 아름다운 백향목이 가득한 길르앗과 레바논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황폐하게 되어서 풀 한 포기 없는 광야와 같고 주민이 없는 성읍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밑에 7절에서 이어서 말씀하시는데요. 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6절에 나오는 길르앗과 레바논에 이어서 백향목이 등장합니다.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백향목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어요. 길르앗과 레바논을 말하고 이어서 백향목을 언급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왕궁이 백향목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백향목은 왕궁을 가리키고, 동시에 유다 왕의 집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7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군대를 준비하셔서 유다 왕의 집을 찍어 멸망시키겠다고 선포하고 계신 말씀입니다. 너무나도 무서운 말씀이에요. 그러나 애초에 백성들이 말씀을 지켰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 왕은 마땅히 왕으로서 해야 할 것을 하고 지켜야 될 것을 지켜야 됩니다. 또 왕뿐만 아니라 신하들도 마땅히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을 해야 하고, 백성들 역시도 자기들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서 지켜야 됩니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돌봐야 돼요.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뭅니다. 우리는 참되게 예배하는 예배자임과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봉사자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게 이 일에 동참하기 위해 미자립교회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있고, 또 어려운 이웃들에게 매년 사랑나눔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마도 우리 성도님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이웃들을 돌보거나 후원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지금 우리 김대일 담임목사님께서 튀르키예에 가셔서 구호사역을 하고 계신데, 이것도 약자들을 돌보는 일이죠. 재난을 당해서 삶이 무너진 자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겁니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우리의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왕은 왕으로서의 할 일, 신하는 신하로서의 할 일, 백성은 백성으로서의 할 일,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할 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자로서, 또 봉사자로서, 가정에서는 부모로서, 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직하게 정의를 지키며, 약자를 돌보며,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아름답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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