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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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0:7-18
“신앙의 굴곡”
2023. 2. 24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신앙의 굴곡”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신앙의 굴곡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심장 그래프를 보면, 심장 박동에 따라 그래프가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아래로 내려가기도 해요. 이처럼 우리 신앙도 올라가는 때가 있고, 내려가는 때가 있어요.
은혜를 받으면 올라가고, 시험이 찾아오면 내려가고, 다시 회복되어서 올라가다가도 또 실패를 맛보면 내려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항상 위로만 올라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거죠.
예수님은 안 그러셨을까요? 예수님도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시면서 신앙의 그래프가 위로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고 있으셨어요. 제자들의 믿음 없는 모습을 볼 때나 겟사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볼 때 예수님도 실망하셨거든요.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힘들고 괴로우면 우리의 신앙이 다운됩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고, 그리고 예레미야도 그랬어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레미야의 다운 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도저히 사명을 감당할 수 없고,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깊은 절망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뉘는데요. 먼저 7절부터 13절까지가 한 단락인데, 여기서는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단락인 14절부터 18절까지 내용을 보면, 갑자기 예레미야가 심경이 돌변해서 극심한 절망에 빠진 모습이 기록되어 있어요. 바로 여기가 예레미야의 밑바닥인 것이죠.
그래서 본래는 18절까지 오늘 다 봐야 하는데, 시간관계상 오늘은 첫 번째 단락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7절을 봐 볼까요?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주께서 나를 선지자 하라고 권유하시는 바람에 내가 어쩔 수 없이 선지자가 되었는데, 지금 내가 조롱 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권유다하는 말이 히브리어로 “파타흐”라는 말인데, 이 말은 “유혹하다, 꾀어내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선지자가 되도록 살살 꾀어서 결국에 조롱 거리가 되게 만드셨다는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죠. 애초에 예레미야는 선지자가 되기 싫었거든요. 억지로 선지자가 된 거예요. 그런데 선지자가 되고 나니까 지금 처지가 어떻습니까? 밑에 8절에 보니까,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됐어요.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백성들에게 파멸과 멸망을 선포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치욕과 모욕뿐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다 나를 조롱하고 모욕을 해요. 그러니까 너무나 마음이 괴로운 거죠. 그래서 선지자를 때려치려고 합니다. 내가 더는 못 하겠다. 선지자 그만 둬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을 먹기만 하면,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9절을 봐 볼까요? 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않으려고 마음 먹기만 하면, 마음이 불붙는 것처럼 괴로워서 그만둘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9절 말씀도 사실 번역이 잘못 됐습니다. 9절을 보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것만 보면 마치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있는 사명감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만두고 싶은데, 사명감 때문에 차마 그만두지 못하는 모습 같이 보여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사명감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9절을 보다 히브리어 원문에 맞게 번역을 하면 이런 말입니다. “그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서 타는 불처럼 된다”
내 마음이 불타는 게 아니에요. 말씀이 불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명감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예레미야는 그냥 선지자 그만두고 싶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안에서 불처럼 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그 괴로움으로 인하여 그만둘 수가 없는 겁니다. 그만둘려고만 하면 마음 속에서 말씀이 불타니까. 예레미야는 그만두고 싶어도 하나님이 그만두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말씀을 선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예레미야가 하소연을 하는 거예요. 밑에 10절에도 보면,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하소연을 하죠.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예레미야가 무리가 하는 말을 들었어요. 무리의 비방하는 말도 듣고, 또 사방이 두려워함 이라고 수군거리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방이 두려워함” 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골밋사빕”입니다. 오늘 본문 위에 나오는 말이죠. 20장 3절에 이 말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제사장 바스훌의 이름을 바꾸셨는데, 바로 “마골밋사빕”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셨죠. 마골밋사빕의 뜻이 뭐예요? “사방에 두려움”
거짓 목자인 바스훌이 “마골밋사빕”이 되었는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백성들이 누구를 마골밋사빕이라고 하고 있는 겁니까? 예레미야를 마골밋사빕이라고 수군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사람들이 나를 마골밋사빕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어요.
이것은 결국에 내가 아무리 말씀을 외치고 선포해도 백성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스훌한테 마골밋사빕이라고 했는데, 나를 마골밋사빕이라고 한다는 것은 내가 선포한 말씀을 가지고 나를 조롱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더 말씀을 선포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11절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다운 되었던 예레미야의 영이 회복이 돼요. 11절을 우리가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아멘.
정말로 괴로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여전히 갖고 있어요. 백성들이 아무리 나를 조롱하고 핍박하여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내가 승리하리라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밑에 13절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3절도 우리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아멘.
지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 노래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렇게 두 번을 반복해서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예레미야의 믿음이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나는 노래하리라, 나는 찬양하리라. 이러한 믿음이 예레미야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에는 굴곡이 있습니다. 괴로워서 내려가는 때가 있다면,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때가 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우리는 환난을 통해서 더 단단한 믿음을 갖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말 못할 아픔과 괴로움이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아십니다. 환난 중에서도 여러분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여러분의 마음 속에 타는 불과 같은 말씀을 주셔서 여러분을 다시 일어서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픔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생생하게 살아서 불붙는 것 같은 아픔 속에서도 여호와를 노래하고, 여호와를 찬양하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위를 향하여 얼굴을 들고 행진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