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장반지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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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22:24-30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2023. 3. 21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남유다의 마지막 왕들에 대한 예언 중에서 남유다의 19대 왕인 여호야긴 왕에 대한 예언입니다.
우리가 이 남유다의 마지막 왕들의 계보를 잠시 살펴보면요. 먼저 16대 왕이 요시야 왕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남유다 역사에 가장 위대한 왕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왕입니다.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니까 그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바알산당과 우상제단을 없애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대단한 왕이었어요.
이 요시야 왕에게는 아들이 네 명 있었는데, 그 중에 막내아들인 여호아하스가 뒤를 이어서 17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왕기하 23장을 보면, 여호아하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그가 왕이 된지 삼 개월 만에 애굽 왕 바로 느고에게 끌려가 죽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이 된지 삼 개월 만에 포로로 끌려가서 죽은 겁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이번에는 요시야의 둘째 아들이 왕이 됩니다. 여호아하스의 형이죠. 그런데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하면,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잡아 가면서 그 자리에 둘째 형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다른 나라 왕이 유다의 왕을 자기 마음대로 세워논 겁니다. 내정간섭을 한 거죠. 이 둘째 형이 바로 여호야김입니다. 18대 왕이에요. 여호야김 역시도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래도 여호야김은 11년을 다스렸어요. 굉장히 오래 다스렸죠. 그런데 여호야김은 사치가 심했습니다. 나라가 애굽과의 전쟁에서 져서 은과 금을 조공으로 바쳐야 했거든요? 그래서 나라가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데, 이 때 자기 왕궁을 더 화려하게 꾸미고 싶어서 건축을 합니다. 그것도 외국에서 비싼 백향목을 수입해 와서 건축을 해요. 엄청난 사치를 부린 겁니다.
그래서 이 왕도 최후가 처참합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와서 죽어요. 자기 동생은 먼저 애굽에서 쳐들어와서 죽었고, 본인은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죽습니다. 유대 역사서를 보면,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 왕의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 밖에 시체가 버려졌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끔찍한 최후를 당한 것이죠.
그리고 이 뒤를 이어서 여호야김의 아들인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름이 고니야라고 되어 있죠. 제가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유다의 왕들은 이름이 여러 가집니다. 왕으로서 가지는 통치명이 있고, 또 아버지가 지어준 본명이 있어요. 여호야긴은 통치명이고, 고니야는 아버지가 지어준 본명입니다.
어쨌거나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왕도 악한 왕이었어요. 아버지는 훌륭한 왕이었는데, 아들들은 전부 다 악합니다. 여호야긴도 너무나 악해서 심판을 당해요. 오늘 본문에 그가 무슨 심판을 당했는지 기록하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 24절을 봐 볼까요?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자,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버리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데요.
여러분, 인장반지는 도장 용도로 사용하는 반지를 말합니다. 반지에다가 인주를 칠해서 그대로 도장을 찍는 거예요. 이 인장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소지하고 있으려고 반지로 만들어서 손에 끼고 있는 겁니다. 이걸로 도장을 찍으면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절대로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자기가 갖고 있어야 돼요.
그만큼 인장반지는 그 주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목욕할 때도 벗지 않아요. 그 무엇보다 주인과 항상 함께하는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보물을 손에서 빼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아무런 미련 없이 빼버리겠다는 거예요.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 마음에 안 들면 버리는 겁니다. 여호야긴이 지금 너무나도 악한 왕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련없이 버리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 인장반지를 그냥 길바닥에 버리는 게 아니죠. 오늘 본문 25절을 보니까 이것을 누구에게 줍니까?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셔요. 25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하나님의 손에 있던 인장반지가 이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느부갓네살이 강해서 손에 넣은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 손에 주신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에요. 아무리 적군이 크고 강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될 수가 없습니다. 여호야긴 왕이 적군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이죠.
그래서 남유다의 19대 왕인 여호야긴이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왕들의 꼴을 한번 보세요. 다들 얼마나 비참합니까? 17대 왕은 애굽으로 끌려가서 죽고, 18대 왕은 예루살렘 성 밖으로 시체가 던져지고, 그리고 19대 왕은 바벨론으로 끌려 갑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왕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최후가 비참할까?
국력이 약해서 그렇습니까? 군대가 없어서? 아니면 나라에 돈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죠.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이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라에 아무리 돈이 많고 군사력이 강해도, 하나님이 손에서 빼어버리면 그의 최후는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진노의 심판을 당하여 멸망하는 것입니다.
여호야긴은 결국에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6절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이, 다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바벨론에서 숨을 거둡니다. 2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30절에서도 그의 최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요. 30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는 여호야긴에 대하여 그가 자식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자,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도 서러운데 자식도 없으리라고 선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봐서는 안 되고 상징적으로 봐야 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여호야긴은 자식이 있었어요. 역대상 3장에 보면, 여호야긴의 아들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3장 17절 1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은 그의 아들 스알디엘과 말기람과 브다야와 세낫살과 여가먀와 호사마와 느다뱌요.”
이렇게 일곱 명의 아들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장에도 예수님의 족보에 아들이 나와요. 마태복음 1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일곱 아들 중에 장남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상하죠. 아들이 일곱이나 있는데, 왜 오늘 예레미야서에서는 자식이 없을 거라고 말씀을 할까? 예언이 잘못 됐나? 성경이 틀렸나?
여러분,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상징적으로 해석을 해야 됩니다. 30절을 다시 자세히 보면, 후반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다시 말해서, 자식이 있기는 있는데, 그 자식들 중에 다윗의 왕위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입니다. 아들이 일곱이나 있지만, 그중에 아무도 왕위에 앉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식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진짜 자식이 없다는 게 아니라, 왕이 될 수 있는 자식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이해해야 됩니다.
어쨌거나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게 됩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너무나도 비참한 결말입니다. 물론 그가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다거나 고문을 당한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의 말년을 보면, 그가 오히려 회복되는 사건이 일어나거든요. 하나님께서 멸망한 유다를 새롭게 회복시키는 상징으로서 여호야긴을 죄수에서 자유인으로 회복시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예레미야 마지막 장인 52장 끝에 가면 나와요. 그가 잡혀간지 37년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37년 동안을 감옥에서 지냈어요. 37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수치와 조롱의 세월을 보낸 겁니다.
가장 고귀한 인장반지와 같던 자가 손에서 빼어버린 바 되니까 그런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인장반지로서 그 손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손에서 빼어버리지 않는 정직하고 신실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할 때만이 우리는 평안을 누리고 형통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주님 품에 꼭 붙어서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현재가 복되고, 우리의 미래가 복되고, 우리의 말년이 복된 형통한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