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반드시 도우시리라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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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1:1-2
“여호와께서 반드시 도우시리라”
2023. 3. 3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여호와께서 반드시 도우시리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시드기야 왕이 나옵니다. 시드기야 왕은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에요. 사실 아직 시드기야 왕이 등장할 때는 아닙니다. 아직은 요시야 왕이나 그 다음 왕인 여호야김 왕에 대한 예언이 나와야 순서상으로 맞거든요. 그런데 시간을 건너뛰어서 여호야김 다음 왕인 시드기야 왕이 갑자기 오늘 등장해요. 그것도 시드기야 통치 말년에 해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갑자기 시간을 건너뛰어서 시드기야 왕이 오늘 등장을 할까? 이것은 선지서의 특징입니다. 선지서는 시간순서대로 기록되지 않았어요. 뒤죽박죽으로 기록됐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거죠. 더 뒤에 일어난 일을 앞에 기록을 하고, 또 반대로 먼저 일어난 일을 뒤에 기록을 하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한 겁니다. 그래서 선지서는 역사 중심으로 보는 게 아니라, 메세지 중심으로 봐야 됩니다.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시는가? 이것이 중요해요.
예레미야는 지금 시드기야 말년, 곧 남유다의 최후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기록하면서 불순종한 자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남유다의 최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죠? 바벨론이 쳐들어오죠.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와서 성벽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죽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 최후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어요.
지금 바벨론 군대가 군사를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급박한 상황에 민족의 리더인 시드기야가 과연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야죠.
자, 오늘 본문 1절을 봐 볼까요? 시드기야가 과연 어떻게 하는가를 보겠습니다. 1절을 우리가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니라.”
지금 말씀을 보면,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두 사람을 보내요. 바스훌과 스바냐, 이 두 사람을 보냅니다. 여기서 바스훌은 예레미야 20장에 나오는 바스훌하고 다른 인물입니다. 동명이인이에요. 헷갈리면 안 됩니다. 20장에서는 임멜의 아들 바스훌이고, 오늘 본문에서는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입니다. 이 두 사람은 직분도 달라요. 20장에 나오는 바스훌은 제사장이었고요. 오늘 본문의 바스훌은 벼슬아칩니다. 정치인이에요.
그리고 그 뒤에 스바냐가 나오죠. 이 스바냐도 스바냐서를 기록한 스바냐 선지자하고 다른 인물입니다. 이 사람도 동명이인이에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바냐는 제사장 스바냡니다. 히브리인들은 동명이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앞에 붙는 수식어를 잘 봐야 됩니다. 말기야의 아들,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이렇게 앞에 붙는 수식어를 잘 보고,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구분해야 돼요.
어쨌거나 시드기야 왕이 벼슬아치 바스훌과 제사장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보냈는가? 오늘 본문 2절에 이유가 있죠.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
아까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왔어요.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막 공격하니까 시드기야가 부랴부랴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낸 겁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기도 좀 해달라는 거죠. 평소에는 예레미야를 거들떠도 안 보더니,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이제서야 예레미야를 찾는 겁니다.
민족의 리더로서 뭔가 하기는 하는데, 이게 조금 이상해요. 여러분, 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을 찾는 것은 물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데 그 전에 먼저 뭘 해야 됩니까? 먼저 내가 기도해야죠. 하나님의 기업인 유다를 맡아서 다스리는 자로서 본인이 먼저 엎드리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 사람을 보내서 말만 전달을 합니다.
정치적인 실세인 벼슬아치 바스훌과, 종교적인 실세인 제사장 스바냐를 보냈어요. 자신의 최측근인 실세들을 보낼 정도면 굉장히 상황이 급박한 것은 분명하죠. 성전에 대제사장도 있고 제사장도 많은데 굳이 예레미야를 찾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예레미야에 대한 어떤 신뢰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신뢰해서 사람을 보낸 게 아니에요. 그냥 급하니까 여기저기에 손을 다 뻗어보는 거예요. 보험을 여러 개 드는 것처럼, 다른 데도 도움을 요청하고, 하는 김에 예레미야한테도 보내보는 겁니다.
그래서 2절을 다시 보면, 시드기야의 말 가운데 “혹시” 라는 말이 들어있습니다. 2절을 다시 봐 보면,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
혹시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을까? 이 혹시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울라이”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어떤 일에 대한 막연한 추측을 하는 말입니다. 우리 말로 치면 “밑져야 본전” 이 말이 뜻이 잘 맞을 것 같아요. 되면 좋고,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고.
시드기야가 이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기도 한 번 해봐라. 하나님이 혹시 도와주실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도와주시면 땡큐고. 아니면 뭐 어쩔 수 없지.’ 이런 태도로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기도를 안 해요. 기도해달라고 사람을 보내면서 본인은 가만히 있어요.
여러분, 이것은 리더의 모습이 아니죠. 먼저 본을 보여야 될 것 아닙니까? 먼저 기도하고, 먼저 확신을 가지고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선포해야죠. 승산이 없어도, 자신 있게 선포해야 사기도 오르고, 질 싸움도 이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시드기야는 싸워보기도 전에 이미 졌어요. 확신도 없고, 줏대도 없고, 다윗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차이가 나요. 다윗은 전혀 승산 없는 싸움에서도 담대하게 싸워서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맷돌 다섯 개와 막대기를 들고 골리앗에 맞서서 단번에 승리했잖아요. 그 뒤로도 수많은 전쟁을 이기고 또 이겼습니다.
다윗이 담대하게 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 하나였습니다. 군사가 많든지 적든지, 무기가 좋든지 나쁘든지, 보급이 있든지 없든지, 그런 것은 2차적인 문제입니다. 1차적인 문제는 신앙의 문젭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야말로 승리의 비결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들어주시면 좋고, 안 들어주시면 어쩔 수 없고. 이런 마음으로 기도해서는 될 것도 안 됩니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선포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 육신의 질병이 치유되고, 내 가문이 믿음의 기업으로 우뚝 서고, 내 교회가 성령의 불로 부흥하리라!
분명한 비전과 확신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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