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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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6:15-24
“무죄판결”
2023. 5. 10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무죄판결”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예루살렘이 실로와 같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함으로써 사형판결을 받은 것을 함께 봤었는데요. 오늘은 반대로 무죄판결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예레미야 26장 11절을 봐 볼까요? 11절에 이렇게 먼저 사형판결을 내렸습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예레미야가 죽는 것이 합당하다고 선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죄가 무엇인가 하니,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한 죄입니다. 감히 예루살렘이 실로처럼 황폐하게 되리라고 예언을 한 죄로 사형판결을 내린 거예요.
그래서 이 판결에 대해 예레미야가 자기변론을 합니다. 그 내용이 12절부터 15절까지 내용인데요. 요약을 하면 이런 말입니다. “내가 예언을 한 것은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전하라고 주신 말씀이다. 만약에 너희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너희에게 예언한 모든 것을 돌이키실 것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15절에 이렇게 말을 덧붙입니다. 15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너희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반드시 무죄한 피를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주민에게 돌리는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하게 하셨음이라.”
이것이 예레미야의 최후변론입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 만약에 너희가 나를 죽이면 그 책임을 너희가 져야 한다. 이 말을 하고 있어요.
이 말이 사실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너희의 행위에 대해서 너희가 그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그 어떤 저주보다 무서운 말이에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무죄한 사람을 죽인 자는 똑같이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는 거죠. 책임을 지기 싫으니까. 저 사람이 정말로 죄가 있는가 없는가. 그래서 이때 파가 둘로 나뉘는 겁니다. 유죄파와 무죄파, 둘로 나눠져요.
유죄파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무죄파는 고관들과 백성들입니다. 이렇게 둘로 나눠졌어요. 16절을 보면, 무죄파가 예레미야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16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무죄를 주장하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했다는 것이 그 이유죠. 자기 말로 예언을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기 때문에, 죽일 수 없다는 겁니다.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한다는 말이에요.
이것은 이 사람들이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책임을 지기가 싫은 거예요. 무죄한 피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서 죽이지 말자고 하는 겁니다. 굳이 우리가 저 사람을 죽여서 피해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본래 이 사람들은 전부 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었거든요. 예레미야 26장 8절을 봐 볼까요?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붙잡고 죽이려고 했어요. 이게 불과 몇 분 전입니다. 그런데 몇 분 만에, 예레미야의 변론을 듣고는 태도를 바꾸는 거예요. 자기가 피해를 볼까봐, 180도 바꾸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 알겠죠. 자기 기분 나쁘다고 죽이려고 하다가, 자기가 피해를 볼 것 같으니까 입장을 바꿔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정과 손익계산을 가지고 판단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때 장로 중 몇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추가변론을 시작합니다. 예레미야를 변론하는 거예요. 이것도 마찬가집니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할 때는 같이 죽이려고 하다가, 분위기가 바뀌니까 이제서야 발언을 하는 겁니다. 예레미야를 죽였다가 혹시나 피해를 볼까봐 예레미야를 살리려고 한 손 보태는 것이죠.
자, 그런데 어떻게 변론을 하는가 하면, 과거에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했던 두 선지자에 대한 예를 들면서 변론을 해요.
먼저 미가 선지자에 대한 예를 드는데요. 18절과 19절을 봐 볼까요? 18절,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 아멘.
여기서 말하는 미가는 미가서를 쓴 미가 선지잡니다. 미가서 3장 12절에 예언된 말씀을 인용해서 말하고 있어요. 미가서 3장 12절에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하고 있죠. 그런데 미가는 예레미야보다 100년 전의 사람입니다. 이미 100년 전에 예루살렘이 파괴될 것을 예언을 했어요. 그런데 이 때 왕이 누구였는가 하면, 히스기야 왕입니다. 히스기야는 남유다 역사에 가장 훌륭한 왕으로 손꼽히는 왕이죠. 성경은 히스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왕이었고, 그의 전후에 그러한 자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미가의 예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어요.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했습니다. 그 결과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을 장로들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겁니다. 히스기야 왕은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한 것을 듣고 미가 선지자를 살려주지 않았느냐? 우리도 예레미야를 살려주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한 명의 선지자를 예로 드는데요. 이번에는 정반대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선지자의 말을 듣고 화를 내면서 결국에 선지자를 죽인 사건인데요. 2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이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여기서 우리야라는 선지자가 등장하는데요. 여러분, 우리야가 누군지 아십니까? 사실 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오직 오늘 본문에만 등장을 하기 때문에 알 수가 없어요. 다른 데서는 안 나와요. 아마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선지자들이 이 당시에 많이 있었어요. 그 중에 우리야는 기럇여아림에서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레미야가 한 예언과 같은 예언을 했어요. 20절에 보니까,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하매.”
이 성이 황폐하게 되리라고 예언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때 왕이 누구였는가 하면, 여호야김 왕이었어요. 여호야김. 바로 지금 예레미야 시대의 왕이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금 여호야김이 왕이 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예레미야가 예언을 했는데, 그보다 먼저 우리야가 예언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마도 왕이 되자마자 예언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호야김이 그 예언을 듣고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21절에 보니까, “여호야김 왕과 그의 모든 용사와 모든 고곤이 그의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여호야김이 우리야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야가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러면 그냥 놔둘 법도 한데, 우리야를 잡으려고 애굽에 사람을 보내요. 그리고 결국에 잡아와서 죽이고 맙니다. 그것이 22절, 23절 말씀인데요. 22절, 2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냈더니.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왕이 어떻게 했습니까? 애굽에 사람을 보내서 기어이 잡아와서는 왕이 직접 칼로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했어요. 장례도 치르지 못하도록 묘지 위에다가 시체유기를 한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뿐인데 너무나도 끔찍한 일을 당했어요. 그런데 이것이 이 당시에 선지자들이 받는 취급이었습니다.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잡혀 죽는 겁니다. 듣기 좋은 말을 하면 좋은 대우를 받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죽는 거예요.
특히나 여호야김이 왕이 된지 얼마 안 된 시기라서 더 심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여호야김이 어떻게 왕이 됐습니까? 정상적으로 왕이 된 게 아니죠. 애굽 왕 바로 느고가 쳐들어와서 여호아하스 왕을 잡아가고,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어요. 민족의 원수에 의해서 왕이 된 겁니다. 왕으로서 정통성이 없어요. 그러니까 민심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겠죠. 혹시라도 백성들이 왕이 애굽과 결탁한 매국노라면서 들고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부정한 말을 하면 잡아 죽이는 겁니다. 우리야가 그래서 죽은 거예요. 우리야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더 많았겠죠. 우리야를 대표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는 선지자를 그렇게 죽게 내버려두지 말자고 장로들이 일어나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히스기야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해서 구원함을 얻었고, 여호야김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죽였다. 그러면 과연 여호야김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무죄한 피로 인해서 저주를 받지 않겠느냐? 왕은 저주를 받아 죽더라도, 우리는 그 저주를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인 거죠. 그래서 선지자를 죽이지 말자는 거예요.
이것을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듣고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늘 본문 마지막 24절을 보면,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나서서 예레미야를 도와줍니다. 24절에 보니까,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어 그를 백성의 손에 내어 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나서서 상황을 싹 정리를 합니다. 사반의 아들 아히감, 여기서 사반은 요시야 왕 시대에 서기관이었던 사람입니다. 요시야 때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이 돼서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그때 주도적으로 개혁에 동참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서기관 사반입니다. 그리고 사반의 아들인 아히감도 여기에 함께했어요.
그러니까 이 집안이 상당히 신앙적으로도 그렇고, 지위적으로도 그렇고 명문갑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왕을 보필해서 종교개혁을 추진할 정도면 얼마나 왕이 신뢰하는 집안이겠어요? 대단한 집안이죠. 그런 집안이다보니까 아히감의 말에 영향력이 있는 것이죠. 상황을 다 정리하고 예레미야를 보호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겁니다.
사실 백성들이 살려주겠다고 해도 왕이 죽이겠다고 하면 방법이 없거든요. 왕이 죽이겠다고 하면 그냥 죽는 겁니다. 선지자 우리야를 죽인 것처럼 예레미야도 얼마든지 여호야김 손에 죽을 수 있어요.
하지만 명망 높은 가문의 사람이 나섬으로써 왕이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된 겁니다. 이 당시에 아히감은 오늘날로 치면 야당 대표쯤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다보니까 왕도 함부로 하질 못해요. 죽이려면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민심이 바닥을 치게 되겠죠. 안 그래도 왕으로서 정통성이 부족한데다가 애굽에 조공을 바치는 입장이다보니까 민심이 불안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더군다나 지금 고관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결국에 예레미야가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가 잡혀 죽는 시대에, 고관들과 백성들과 장로들과 아히감을 통하여서 예레미야가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두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선지자 미가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구원을 얻은 것처럼, 우리가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돕는 손길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야 선지자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잡혀 죽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그때 누군가 우리야를 위해 변론을 해주고 힘을 써주었다면 우리야도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야 곁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야가 죽은 일이 비밀리에 일어난 일도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다 아는 사건인 것을 보면, 충분히 우리야를 살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왕에게 밉보일까봐 두려워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의로운 목숨이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진리를 위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을 비롯하여 진리를 거부하는 모든 악한 일에 대하여 우리가 나서서 맞서싸워야 합니다. 십자가 군기를 들고 행진하는 군사가 되어서 나아갈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를 위하여서 담대하게 싸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