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엄중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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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3:33-40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
2023. 4. 18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예언의 마지막 단락인데요. 지난 시간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가 꿈을 꿨다면서 예언을 가짜로 만들어내서 전달했다고 했죠. 그런데 오늘은 거짓 선지자들이 정작 전해야 하는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짐짝으로 여기고 망령되이 사용하였음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오늘 본문에 아주 잘 드러나 있습니다. 거짓 예언에는 열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짐으로 여기는 모습이 드러나는데요. 먼저 본문 33절을 보겠습니다. 33절을 같이 읽습니다. 시작,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자, 이 말씀에 보면, 엄중한 말씀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전체를 통틀어 총 8번 나오는데요. 그만큼 이 “엄중한 말씀”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엄중한 말씀”은 히브리어로 “맛사”라는 말입니다. 맛사는 본래 “무거운 짐”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이라는 뜻은 없어요. 그냥 “어깨에 메는 무거운 짐, 의무, 부담” 이런 뜻만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에 맛사를 “엄중한 말씀”으로 번역을 했는가 하면,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거운 짐”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말씀으로 받는 게 아니라, 짐으로 여겨요. ‘아이고, 오늘은 또 무슨 무거운 짐을 주시나? 안 그래도 무겁고 힘든데, 또 뭔 짐을 주신다냐?’ 이렇게 불평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어성경에도 보면, 맛사를 “메세지”로 번역을 합니다. ‘the message from the Lord’ 여호와로부터 온 메세지, 라는 말이죠. 신실한 백성이 볼 때는 분명히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타락한 백성이 볼 때는 그것이 무거운 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맛사’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엄중한 말씀, 오늘 본문에서 8번이나 등장을 하는데요. 33절을 다시 살펴보면요. 백성들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예레미야에게 찾아와서 물어봅니다.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실제로 와서 물어본 것은 아니고, 앞으로 혹시라도 그렇게 찾아와서 질문을 하게 되면, 거기에 답변을 해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나중에 와서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을 해라.” 이런 말이에요.
자, 뭐라고 대답을 하라고 하십니까?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이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이것이 바로 엄중한 말씀이라는 것이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짐으로 여기니까, 아예 무거운 짐을 주시는 겁니다. 이 말씀이 너희에게 무거운 짐이 되리라.
하나님이 너희를 버리신다는 말보다 무거운 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무서운 말씀이죠.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그런데 말씀이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34절에 보면, 엄중한 말씀이 또 옵니다. 34절에 보니까,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안을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여기서 다시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말씀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엄중한 말씀으로 여기는 자들, 다시 말해서 무거운 짐이라고 여기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을 주시면, 아멘으로 받아야 하는데, 노멘으로 받는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또 무거운 짐을 주시는구나. 말씀을 무슨 짐짝으로 여기고, 거부해요.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가만히 두실 리가 없죠.
그러면서 36절에 가서 보면요. 여기도 맛사가 두 번 등장합니다. 36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어 사용함이니라 하고.”
자, 이 말씀에 맛사가 2번 들어갔는데요. 먼저 처음에 한 번 나오죠.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다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맛사’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죠. 다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무거운 짐’이라고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말씀은 짐이 아니기 때문에. 말씀은 곧 생명이에요. 우리를 살리는 구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짐으로 여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여기서 한 번 맛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맛사는 어디 있을까요?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 들어있습니다.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여기서 “중벌”이 바로 맛삽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맛사라고 하는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정말로 맛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가 말씀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면, 정말로 너희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는 겁니다. 중벌이 된다는 거예요.
엄중한 말씀과 중벌, 분명히 쓰여있는 히브리 단어는 똑같습니다. 둘 다 “맛사”예요. 하지만 그 의미가 서로 다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무거운 짐’으로 여겼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는 것은 무거운 짐 수준이 아니에요. 위에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무서운 심판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안을 벌하리라.”
백성들이 생각하는 짐의 수준을 넘어서 아예 멸망의 심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맛사입니다. 분명히 백성들이 말한 “엄중한 말씀”과 하나님이 주시는 “중벌”이 히브리 단어는 똑같아요. 똑같이 맛사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이토록이나 다릅니다. 똑같은 맛사인데, 한쪽은 그저 ‘무거운 짐’이라면, 다른 한쪽은 심판을 뜻합니다. 우리도 종종 이런 식으로 같은 단어를 가지고 서로 다른 뜻을 나타내는 말을 하죠. 예를 들어서 이런 말이 있어요. “너 자고 싶어? 그럼 평생 자.”
이 말에 보면, 잔다, 라는 말이 두 번 사용됐죠. 본래는 이것이 수면을 뜻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너 자고 싶어?”라고 했을 때는 본래 뜻대로 수면을 뜻하지만, 뒤에, “그럼 평생 자.” 라는 말은 무슨 뜻으로 사용된 겁니까? 사망의 뜻으로 사용이 됐어요.
“너 자고 싶어? 그럼 평생 자.” 그냥 죽어버리라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맛사가 이렇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 겁니다. 무거운 짐과 심판.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그렇게 무거운 짐으로 여긴다면, 말씀이 너희에게 심판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위에 29절을 보면, 말씀을 불과 방망이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임과 동시에 사람을 쳐서 죽이는 방망이도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짐으로 여기면 안 돼요. ‘안 그래도 힘든데, 무슨 충성을 하라고 하고, 달란트를 사용하라고 하고, 교회가 왜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냐?’
이렇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올 때는 반드시 그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온 겁니다. 제가 예레미야 말씀을 새벽에 순차적으로 전하고 있는데요. 본문을 선택한 것은 제가 한 거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이 본문들을 선택하고 전하는 겁니다. 제가 전하는 말씀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감동이 없는 메아리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가운데 반드시 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전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무거운 짐이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메아리가 아니라,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발밑을 밝혀주는 등불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오늘 이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메세지라는 것을 믿고, 마음판에 잘 새겨서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