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가지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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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3:5-8
“의로운 가지”
2023. 3. 27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의로운 가지”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선한 목자에 대한 예언입니다. 오늘 본문 위에서 이미 선한 목자들을 세울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는데요. 오늘은 그 선한 목자들 가운데서도 완전하시고 의로우신, 세상에 하나뿐인 참된 목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반드시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봐 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지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가 누구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겁니까?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것이죠.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의로운 왕이 다윗의 혈통에서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늘 본문 위에 22장 30절과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22장 30절을 봐 볼까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보면, 남유다의 19대 왕인 여호야긴의 후손 중에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자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아들이 일곱 명이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들들이 왕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라가 망해버리기 때문에. 나라가 망해서 더 이상 왕이 세워지지 못해요. 그래서 단호하게 말하고 있죠.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여호야긴의 아들뿐만 아니라, 손자, 증손자.. 밑으로 아무리 많은 자손을 낳아도 그 가운데 아무도 왕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게 모순이 되죠? 오늘 우리가 읽은 23장 5절에서는 의로운 왕이 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거든요.
예수님이 여호야긴의 후손이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장 12절에 보면, 분명히 예수님의 족보에 여호야긴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요. 물론 여기에는 여호야긴이라고 써있지 않고, 여고냐라는 이름으로 써있긴 한데요. 이름은 달라도 동일인입니다. 여호야긴이 예수님의 조상이라고 되어 있어요.
분명히 여호야긴의 후손 중에서 다시는 왕이 나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예수님이라고 하는 왕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말씀이 서로 상충됩니다. 왜 이렇게 말씀을 상충되게 기록을 했을까? 의문이 드는데요.
우리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의로운 왕이 누구에게서 난다고 말씀합니까? 다윗에게서 난다고 말씀하고 있죠. 그러니까 예수님은 여호야긴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위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리라고 오늘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니의 마음을 가장 기쁘시게 했던 다윗, 그의 뒤를 이어서 이 땅에 참된 평안과 구원을 가져올 왕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5절과 6절을 보면,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아멘.
의로운 왕, 그 분이 오시면 이전까지의 악한 왕들과는 다르게, 지혜롭게 다스리며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입니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들이 마땅히 했어야 하지만, 하지 않았던 그 일들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으로 인하여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참된 평안이 임하는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일컬음을 받습니까? “여호와 우리의 공의” 라는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아요. 여호와 우리의 공의. 그런데 이 이름은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드기야 왕은 남유다의 20대 왕이에요. 그런데 그 이름이 무슨 뜻인가 하면, “여호와는 나의 공의”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공의. 오늘 본문하고 거의 흡사하죠.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 우리의 공의”, 시드기야는 “여호와는 나의 공의” 뜻이 거의 비슷해요.
그런데 시드기야는 자기의 이름대로 살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의로움으로 여기고, 그 의로움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았어요. 오히려 하나님을 외면하고 악을 행하며 우상을 쫓아갔습니다. 이름값을 못했어요. 이 왕이 바로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반면에, 의로운 가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의 이름이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게 되고, 그 이름대로 살아갑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그 의로움을 그대로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의롭게 살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분은 왕으로 오셨지만, 지배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시잖아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왕과는 차원이 다른 섬김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섬김의 왕, 겸손의 왕, 희생의 왕. 자기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 이리와 싸우고 사자와 맞서는 선한 목자로 오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오심으로 말미암아, 6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평안히 살게 된 줄로 믿습니다. 의로운 가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이 시간도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 따라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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