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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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4:1-10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
2023. 4. 21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남유다의 19대 왕인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 백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예언하고 있는 단락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문맥상 조금 생뚱맞은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뒤에 25장을 보면, 여호야김 왕의 시대에 대해서 예언을 하거든요? 여호야김은 여호야긴의 아버지예요. 본래 시간 순서대로 한다면, 당연히 아버지인 여호야김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아들인 여호야긴이 나와야 돼요. 그런데, 순서를 바꿔서 아들을 먼저 기록을 했습니다.
시간 순서를 따른다면, 예레미야 25장이 먼저 나오고, 오늘 본문인 24장은 저 뒤에 29장 앞으로 가야 순서가 맞아요.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시간 순서대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시간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보다 선명하고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순서대로 기록이 됐어요.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이유로 먼저 기록이 된 겁니다. 아버지보다 아들이 먼저 기록이 됐어요. 과연 어떤 메세지를 주시려고, 먼저 아들을 기록했는지,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지금 말씀을 보면,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가 바벨론으로 잡혀갔어요. 여기서 여고냐가 바로 여호야긴입니다. 여호야긴이 이름이 여러 개예요. 여고냐라고도 하고, 고니야라고도 부릅니다.
어쨌거나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잡혀갔어요. 이것을 역사적으로 “제2차 바벨론 유배”라고 말합니다. 총 3차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데, 1차는 여호야긴의 아버지인 여호야김 시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바로 2차 포로 유배인데요.
방금 1절 말씀에 보니까 왕만 끌려간 게 아니라, 또 누가 끌려갔어요?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이 끌려갔죠. 기술자들이 대거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무기와 방어시설을 확충하기 위해서 기술자들 위주로 잡아갔어요. 이때 선지자 에스겔도 같이 잡혀갑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바벨론에서 포로된 백성들을 향해서 말씀을 선포하죠.
어쨌거나 이 2차 바벨론 유배가 일어나게 되는데요. 이 직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 환상에 보니까, 여호와의 성전이 보이고, 그 앞에 무화과 두 광주리가 놓여져 있었어요.
밑에 2절을 보면요. 한 광주리에는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쁜 광주리가 들어있었습니다. 2절을 봐 볼까요?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극히 좋은 무화과와 극히 나쁜 무화과가 따로따로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밑에 3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3절을 보니까,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무화과의 상태를 강조하고 있죠. 좋은 것은 극히 좋고,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여기서 “극히 좋다”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토브 메오드” 라는 말인데요. 토브는 좋다는 말이고, 메오드는 ‘지극히’ 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극히 좋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토브 메오드”라는 말을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직접 하신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심히 좋았다는 말이 바로 “토브 메오드”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계는 본래 흠이 없었어요. 완전하신 하나님이 심히 좋았다고 할 정도면 얼마나 아름답고 완전했겠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가 볼 때 좋은 무화과가 그만큼 심히 좋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세계처럼, 무화과가 흠도 없고 아주 탐스럽게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나쁜 무화과는 먹지도 못할 정도로 아주 상태가 나빠요. 여기서 나쁘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라아”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라아는 단순히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에요. “악”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가 상태적으로, 성품적으로, 영적으로 악하다는 것입니다.
좀 전에 토브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토브도 마찬가지예요. 단지 좋다는 것을 넘어서 ‘선’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창세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가리킬 때, 선이 바로 토브이고, 악이 라아입니다.
그 두 단어를 오늘 본문에서 무화과에 적용하고 있는 겁니다. 선한 무화과와 악한 무화과. 그러니까 이것은 단순히 무화과의 신선한 상태를 가리키는 차원이 아니라, 영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보기에 한쪽 무화과는 선해요. 그런데 다른쪽 무화과는 먹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악합니다. 이 두 무화과를 하나님께서 각기 다르게 처분하시는데요.
먼저 선한 무화과에 대한 말씀이 주어집니다. 4절부터 7절까지가 선한 무화과에 대한 말씀인데요. 5절을 우리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5절, 시작.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아멘.
하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시는데요. 갈대아인의 땅,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한 유다 백성들을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데 여기서 “잘 돌본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나카르”라는 말인데, 이 말은 본래 “인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돌본다는 뜻은 없어요. 이것은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서 돌보다, 라고 한 건데요. 이것은 사실 맞지 않는 말이고, 인정하다, 라고 번역을 해야 하나님의 뜻을 더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인정할 것이라.” 이렇게 번역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상식적으로 볼 때 유다 땅에 남는 것이 좋게 보일까요, 아니면 포로로 잡혀 가는 것이 좋게 보일까요? 상식적으로 당연히 남아 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잡혀간 것을 좋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잡혀간 백성들을 좋은 무화과처럼 인정하신다는 거예요.
좋은 무화과는 누가 봐도 아름답고 탐스러운 좋은 무화과죠. 누구나 인정을 해요. 하지만 잡혀간 백성들을 누가 인정을 하겠습니까? 더 악하기 때문에 벌을 받아 잡혀갔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잡혀간 포로들을 인정하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잡혀간 백성들을 심히 좋은 무화과와 같이 선하고 좋은 백성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이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그래서 이 백성을 나중에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6절과 7절을 봐 볼까요?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멘.
엄청난 약속이죠. 포로들을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이 땅에서 세우고, 다시는 헐지도 않고 뽑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호와를 아는 마음을 주셔서 전심으로 회개하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는, 엄청난 회복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요. “남은 자”가 주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남은 자에게 반드시 회복이 일어나리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러면 과연 그 남은 자가 누구인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사람이 “남은 자”일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정반대로 말하고 있죠. 포로로 잡혀가는 자가 좋은 무화과이고, 그들에게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잡혀간 자들이 남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남은 자”는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다 땅에 남고, 예루살렘에 남고, 성전에 남고. 이런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영적인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은 땅이나 어떤 장소에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 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있다고 다 믿는 자가 아니죠. 그 가운데 알곡도 있고 가라지도 있어요. 교회 안에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가 믿느냐 안 믿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유다 땅에 남느냐 안 남느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느냐 안 잡혀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일찌기 하나님은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가 살 길은 바벨론에 잡혀가는 길밖에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살고 싶으면 바벨론으로 잡혀가라. 이 말은 선택권을 주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잡혀가라는 말이에요.
이 땅을 내가 진멸해버릴 거니까, 너희는 모두 바벨론으로 가라. 비록 그것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비겁하게 보이고, 구차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너희가 내 말에 순종하면 너희를 내가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분명하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하신 내용을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 번 백성들에게 강조하시는 겁니다.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은 내가 좋은 무화과로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 말씀대로 행했기 때문에. 그들이 가고 싶어서 갔든지, 아니면 강제로 끌려갔든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약속한 대로, 바벨론에 끌려간 자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반면에, 이 땅에 남은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멸망하죠. 먹을 수 없는 무화과를 버리듯이, 이 땅에 남은 백성들도 버림을 당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잡혀가지 않고 남았다는 데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겁니다. 아이고, 살았다. 한숨을 쉬면서 기뻐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에요.
그들은 산 것이 아니라, 죽은 겁니다.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죽은 목숨이에요. 오늘 본문 8절부터 10절까지가 바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초과됐기 때문에 우리가 8절 말씀만 함께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8절 말씀, 시작.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들과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은, 애굽 땅으로 피신을 간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잡혀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바벨론이 아니라 애굽으로 도망을 갔어요. 그러나 도망갔다고 해서 피할 수가 없죠. 그들이 모조리 다 버림을 당하여 멸망하게 됩니다.
그들이 멸망하는 이유는 하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악한 무화과들이라는 것. 반대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이유도 하나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선한 무화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을 시간순서를 뒤집어서 24장에 기록한 것은 바로 이러한 진리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여호야긴 왕은 잡혀간 바벨론 땅에서 나중에 좋은 대우를 받고 평안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비록 유다 땅으로 다시 돌아오진 못하였지만, 일평생 바벨론 왕과 함께 식사를 하며 평안하게 살게 됩니다. 이 내용이 예레미야 맨 마지막 52장 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52장을 한 번 봐보세요. 여호야긴이 마지막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이처럼 하나님은 시간순서에 상관없이 모든 역사와 모든 사건을 통하여 메세지를 주십니다. 그 메세지를 오늘 우리도 받았죠. 순종하는 자는 회복될 것이고, 불순종하는 자는 버림을 당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처럼,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선한 믿음의 남은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회복의 은혜와 구원의 은총을 받아 평안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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