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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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8:5-11
“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2023. 5. 26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나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예레미야와 하나냐가 차례대로 예언을 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예언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반박예언을 했었는데요. 오늘은 반대로 예레미야가 하나냐를 반박하는 예언을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여전히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예레미야가 예언을 하는데요. 5절에 보니까,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니라.”
예레미야가 하나냐에게 말하는 것을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보고 있어요. 왜 가만히 보고 있을까요? 과연 둘 중에 누가 진짜 선지자이고, 누가 가짜 선지자인지 알기 위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죠. 배심원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겁니다. 마치 미스터트롯 오디션 현장처럼, 심사를 하는 거죠. 누가 더 예언을 잘하나.
하나냐가 먼저 예언을 했고, 이제 예레미야 차롑니다. 6절에 예레미야가 예언을 시작하는데요. 6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
예레미야가 먼저 무슨 말을 합니까?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하나냐가 앞에서 예언한 그 일들을 여호와께서 이루어주시라고 요청하고 있죠.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특별히 “아멘”이라는 말을 먼저 하고 있어요. 아멘은 “진실로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예레미야는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같이 행하여 주시기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는 겁니다.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6절에 다시 보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청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하나냐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냐가 앞에서 예언한 말대로,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이 말은 하나냐를 비아냥대기 위해서 하는 하는 말이 아니에요. 이 말은 예레미야의 진심입니다. 진심으로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들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것은 예레미야의 개인적인 소원입니다. 예레미야도 같은 유다 민족이고 한 동폰데, 당연히 포로들이 돌아오기를 소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예레미야의 개인적인, 인간적인 소원이죠. 예레미야는 그냥 한 개인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예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이 있어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돼요. 그것이 진정한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포로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소원이 있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라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지금 이 곳에 남은 백성들까지 다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예레미야의 인간적인 뜻과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다르죠. 그래서 오늘 제목도 “사람의 뜻인가, 하나님의 뜻인가”
여러분,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따라야겠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을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사람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뭐라고 할까요? 그런 사람을 사도 바울은 “육에 속한 자”라고 말합니다. 육에 속한 자.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죠.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 돼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뜻을 따랐어요.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소원이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 내려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그러나” 라는 말로 자신의 자기의 뜻을 뒤집어요. “내가 진실로 모든 백성이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8절에서 하나냐의 예언을 반박하는데요. 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예전부터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그 선지자들이 다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지자들이라는 것이죠. 유다 백성이 점차 좋아지면 괜찮은데, 갈수록 더 영적 상태가 안 좋아지니까 평화를 외치는 선지자는 없고, 다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외쳐요. 이 악한 백성들을 회개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선지자들마다 재앙을 선포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냐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예언했단 말이죠. 하나님이 보내신 다른 선지자들과는 다르게 하나냐 너는 평화를 예언하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뜻이 맞느냐? 라고 예레미야가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9절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9절에 보니까,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이 이루어져야만 참 선지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본래 이 말은 신명기 18장 22절에 기록된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예레미야가 하고 있는 겁니다. 신명기 18장 2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아멘.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선지자가 예언한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선지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어떤 증거나 성취가 있어야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가 맞다는 겁니다. 바로 이 말씀을 예레미야가 하나냐에게 지금 하는 겁니다.
하나냐 네가 평화를 외치고 있는데, 그 예언이 이루어져야지만 네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 말을 하는 거죠. 이 말을 하나냐가 들었고, 또 옆에서 보고 있는 백성들도 같이 들었어요.
백성들이 듣기에 예레미야가 하는 말이 정당하게 들렸을 겁니다. 그렇지. 성취가 있어야 진짜 선지자지. 고개를 끄덕끄덕 했을 거예요.
그리고 만약에 하나냐가 진짜 선지자라면, 하나냐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 겁니다. 자기가 한 예언이 진짜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면, 자신있게 그 일이 성취될 거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돼요. 의심하지 말아야죠. 이 일은 진짜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하나냐는 자기가 예언한 것을 자기도 믿지 못합니다. 선포할 때는 자신있게 했지만, 자기 스스로도 이 일이 진짜로 이루어지리라고 믿지 못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지어낸 예언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죠.
그래서 하나냐가 어떻게 행동을 합니까? 갑자기 과격한 행동을 해요. 예레미야가 목에 걸고 있는 멍에를 빼앗아서 꺾어버립니다. 10절에 보니까,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하나냐가 자기의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까,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예레미야에게서 멍에를 빼앗아 꺾어버렸어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거짓 선지자라서 내 예언이 성취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반대로 예레미야는 진짜 선지자 같거든요. 예레미야의 예언은 성취될 것 같은거예요. 그래서 과격하게 행동을 하는 겁니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자기가 가짜라는 것이 드러날까봐. 과격하게 행동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자신감을 보여주는 거예요. 나 진짜 선지자 맞다. 분명히 내 예언이 성취될 거다. 이런 자신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자기 예언을 반복해서 선포합니다. 밑에 11절에 하나냐가 예언을 다시 선포하는데요. 1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하나냐가 평화의 예언을 다시 한 번 선포하죠. 이 년 안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가 이와 같이 꺾이리라. 자기가 예레미야에게서 빼앗아 꺾은 멍에처럼, 바벨론 왕의 멍에도 이와 같이 꺾이리라는 것입니다.
끝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예언을 계속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지금까지 자기가 쌓아올린 지지기반이 다 무너지게 되거든요. 지금까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언을 해서 인기를 얻고 지지를 얻었는데, 지금 말을 바꾸면 저 사람들이 다 떠나버리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자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겁니다. 내 예언은 진짜다. 내 예언은 성취된다. 내가 진짜 선지자다. 그래서 11절의 말씀이 하나냐가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말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진짜로 이 년 안에 바벨론 왕의 멍에가 꺾일 거야. 진짜로 포로들이 돌아올 거야. 너 의심하지마. 이거 진짜로 성취된다.” 이렇게 자기최면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한다고 해서 진짜로 성취가 되겠습니까? 성취될 리가 없죠. 저것은 그냥 망상으로 끝나요. 허공에서 사라지는 연기처럼 그냥 허망하게 끝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도 더이상 하나냐에게 대꾸를 하지 않죠.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둘 중 한 명의 예언이 성취될 테니까, 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 더 말해봤자, 좋은 꼴 보기는 어려워요. 백성들이 지금은 가만히 있지만, 갑자기 흥분해서 죽이겠다고 달려들 수도 있거든요. 이미 전에 그런 일들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예레미야가 가만히 현장을 떠납니다. 11절에 끝에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여러분 지금 예레미야의 행동이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할 가치가 없으니까 가는 거예요. 굳이 여기서 더 머물러봤자 손해만 있지 유익이 없어요. 그래서 지혜롭게 떠나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어요. 마태복음 10장 14절을 보면,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이 말씀은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않으면 그 현장에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굳이 너희를 환영하지 않는데, 거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사역자는 꼭 필요한 사역에 힘을 쏟기 위하여서 허투루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괜히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쓰면 정작 필요할 때 사역을 못해요. 그래서 항상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예레미야도 더이상 하나냐와 투닥거리는 것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지혜롭게 떠나는 겁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시는 말씀만 전하면 되는 거예요. 예레미야는 할 만큼 했습니다.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다 전했어요.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이제 백성들에게 달린 문젭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하나님 뜻대로 우리 갈 길 가면 됩니다.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뜻이 더 좋아보여도 그것은 결국에 망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한 걸음씩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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