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에를 메면 살리라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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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7:1-11
“멍에를 메면 살리라”
2023. 5. 12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멍에를 메면 살리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유다와 또 다른 많은 민족이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면 살 것이고, 메지 않으면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으리라는 예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21장에서도 봤지만,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두 가지의 길을 제시하죠.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생명의 길은 바벨론에 항복해서 노예가 되는 길이고, 사망의 길은 바벨론과 맞서 싸우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바벨론과 싸우면 죽는 겁니다. 사망의 길이에요. 반대로 항복을 하고 노예가 되면 살아요.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노예가 되는 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번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을 보니까, 이 말씀이 임한 때가 언젭니까? 1절에 보니까,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
언제 임했어요?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 말씀이 임했죠. 그런데 사실, 이 말이 오늘 본문의 맥락을 살펴봤을 때 맞지가 않아요.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 임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27장과 28장과 29장이 연속으로 시간순으로 이어지는 단락이거든요. 예레미야 27장, 28장, 29장이 시간순으로 쓰여졌어요. 그래서 세 장이 모든 같은 시간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오늘 본문 뒤에 예레미야 28장 1절에 가서 보면,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여기는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이에요. 오늘 본문하고 완전히 날짜가 다르죠. 오늘 본문은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니까, 아예 다스리는 왕도 달라요.
그러면 이 둘 중에 하나가 틀렸다는 것인데, 27장 1절이 틀린 걸까요, 아니면 28장 1절이 틀린 걸까요?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27장 1절이 틀린 것으로 봅니다. 본래는 여기도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이라고 해야 맞는 것으로 봐요. 만약에 그렇게 하면, 27장부터 29장까지 맥락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마도 성경을 필사하던 서기관들이 여기 27장 1절을 필사할 때 실수로, 앞에 26장 1절을 잘못 갖다 쓴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26장 1절을 보면, 27장 1절하고 구절이 똑같거든요. 서기관들이 피곤했든지, 아니면 뭔가 실수를 해서 이것을 잘못 가져다 쓴 것이라는 게 오늘날에 학자들이 내린 결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상하죠. 성경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인데 어떻게 오류가 있을 수 있느냐? 물론 성경을 처음 기록할 때에는 오류가 없었죠. 예레미야가 예레미야서를 쓸 때는 오류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서기관들이 베껴서 예레미야서 사본을 만들고, 또 그 사본을 베껴서 또 새로운 사본을 만들고, 또 그 사본을 베껴서 또 사본을 만들고, 이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는 충분히 오류가 일어날 수 있어요.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까 충분히 실수가 일어나고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 생각보다 오류가 상당히 많아요. 그래서 그 오류를 바로잡고, 원본 그대로의 말씀으로 되돌리기 위한 작업을 몇 천 년 동안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도 사람의 실수로 인해서 생겨난 오류라고 봐야 돼요. 그런데 왜 그 오류를 안 고치고 그대로 놔뒀는가 하면, 어쨌거나 우리가 발견한 사본에는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라고 쓰여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쓸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어디 땅속이나 동굴 속에서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이라고 적힌 사본이 발견된다면 그때는 바꿔서 쓸 수 있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까지 발견된 사본 그대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에 사역자들이 이것을 성도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겁니다. 이것은 본래 이것이 아니고, 이러이러해서 이렇게이렇게 된 겁니다. 하고 설명을 해줌으로써 이해를 돕는 거예요. 성경은 반드시 처음에 쓰여진 그대로의 뜻과 의미를 이해하고 읽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돕기 위해 사역자들이 필요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있는 성경책에 오류가 있다고 해서 이 성경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류가 조금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지장이 생기지 않아요.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자, 여기까지 이해가 되셨습니까? 제가 1절 설명하느라고 벌써 시간이 많이 갔는데요. 어쨌거나 오늘 본문 1절을 그래서 다시 해석을 하자면,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4년째 되는 때에, 여호와께서 말슴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 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 그러면 시드기야 4년에 무슨 말씀이 임했는가? 2절을 봐 볼까요? 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메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줄은 히브리어로 “모쎄르” 라는 말인데, 멍에를 묶는 밧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멍에는 히브리어로 “모타”라는 말인데, 멍에의 막대기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모쎄르와 모타가 사실은 멍에의 부속품이에요. 이것들이 하나로 합쳐지면 멍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멍에를 가리킬 때, “모쎄르와 모타”를 오늘 본문처럼 같이 말하기도 하고, 혹은 모타만 말하기도 합니다. 멍에의 핵심이 막대기이기 때문에, 모타만 말해도 충분히 멍에의 의미가 되죠.
어쨌거나 이 멍에를 예레미야에게 메라고 하셨어요. 멍에는 아까 뭘 상징한다고 했습니까? 바벨론의 노예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했죠. 그러니까 지금 예레미야에게 멍에를 메라고 하는 것은 곧, 예레미야 네가 바벨론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선지자도 이 멍에를 피하지 못해요. 하나님이 직접 멍에를 메라고 하시는데 도저히 피할 수가 없죠. 그러면 다른 백성들은 어떻겠습니까. 선지자도 피하지 못하는 멍에를 백성들이 피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못 피하죠. 유다 백성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다른 나라의 백성들도 못 피해요.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다른 나라에서 사신들이 왔거든요. 그 사신들에게도 멍에를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3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주어 에돔의 왕과 모압의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의 왕과 시돈의 왕에게 보내며.”
시드기야를 보려고 여러 나라에서 사신들이 왔습니다. 이 사신들에게 멍에를 주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사신들이 갑자기 예루살렘에 왔는가 하면, 같이 동맹을 맺고 바벨론과 싸우는 일에 대해서 논의를 하기 위해서 왔어요.
바벨론의 역사서를 보면, 시드기야가 다스린지 4년째 되는 이 해에 엘람이 바벨론을 공격했다가 패배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비록 엘람이 패배하기는 했지만, 바벨론의 지배 아래 있던 속국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엘람도 저렇게 공격하는데, 우리도 한번 해볼까? 우리는 따로따로 하지 말고, 뭉쳐서 한번 해보자.”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거죠.
그래서 바로 이 논의를 하기 위해서 사신들이 예루살렘으로 온 겁니다. 동맹을 맺어서 바벨론과 싸워보자는 논의를 하러 온 거죠.
그런데 그 사신들에게 예레미야가 뭘 줍니까? 멍에를 주죠. 바벨론과 싸우자고 온 사람들한테, 너희가 바벨론의 노예가 되라는 말을 하면서 멍에를 주는 겁니다. 사신들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죠. 이 사람은 뭔데 우리한테 멍에를 주면서 바벨론을 섬기라 마라 하냐? 굉장히 불쾌했겠죠.
하지만 예레미야는 사신들이 불쾌해하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써요. 할 말만 합니다. 4절에 보면, 각자 자기 주인들에게 돌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을 내리기까지 해요. 밑에 5절부터 11절까지가 전하라고 한 말씀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종으로 삼고 그에게 모든 땅을 주셨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당대와 아들 대와 손자 대까지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메고 섬겨야 한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을 것이고, 그렇게 하면 살 것이다.”
이 말을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왕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바벨론에 대적하는 것이 다 헛수고니까 헛수고 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고 멍에를 메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레미야가 이렇게 명령한다고 해서 사신들이 듣겠습니까? 얜 뭔데 여기 와서 이상 소리를 하는 거야? 무시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살 길을 주셨는데도 무시하는 자는 죽음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말이 너무나도 이상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말로 들린다 할지라도,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삽니다.
멍에를 메라고 하면 멍에를 메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도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셨어요. 과거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야 했다면, 오늘날에 우리는 예수님의 멍에를 메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의 멍에를 우리가 메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고 낮아져서, 주님의 멍에를 메고, 묵묵히 말씀에 의지하여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생명의 길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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